소설 성철 1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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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는 만석꾼의 잘생긴 아들이었고 유학의 엄격한 가풍 아래서 자라났습니다. 모친은 마산 출신 강상봉이라는 분이었는데 이 어머니께서 불교를 믿었습니다. 청년 이영주는 일본까지 가서 불서를 얻어올 만큼 다소 늦게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소설에는 이런 말이 일절 없지만, 독자인 제 생각에는 끝내 일제의 마수로부터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유림, 유교의 가르침에 대한 일정 부분 실망이, 불교 입문에의 한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권 중반부 p139에 보면 중이 되겠다고 한 아들에 대해 너무도 실망이 컸던 나머지, 그 부친은 며느리(즉 이영주의 처) 덕명을 향해 놋재떨이를 던졌고 이 사고로 엉뚱하게도 모친 강상봉이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p18에 보면 부친이 제전 제자였다는 말이 있는데 이때 제전은 祭田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국어 사전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p30 이하에는 이영주의 처 덕명이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부분 묘사가 아주 생생하고 다소 무섭기도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산파는 전라도 사람인데 지리산과 소백산맥이 험하긴 해도 전라도와 인접한 지역이 이 소설 초반부 배경인 경남 산청이므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독자인 저도 경남 산청 출신인 어느 선배님한테 이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 선조 연간에 사림이 대거 등용되고 동서 분당을 거쳐 사색당파가 생겼는데, 그 중 동인의 한 분파인 북인의 학문적 종조가 바로 남명 조식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 초반부에 꼬장꼬장한 유림의 분위기, 그 중에서도 남명의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간혹 나옵니다. 

 

이 1권 중반을 넘어가면 이영주는 불가에 입문하여 성철이라는 법명을 받고 나서도 내내 교(敎)와 선(禪)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동산 스님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는 중이니 당연히 그는 선불교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아 도를 터득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도, 이단시되는 교종 불교의 가르침을 내내 기웃거리는 겁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p15에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고 사서삼경에 통달한 책벌레였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남명의 제전 제자라 통했던 부친 밑에서 엄격한 유교 가르침을 전수 받은 그입니다. 또 산청 지역은, 이곳 서부 경남 일대가 모두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공부를 매우 중시하는 지역입니다. 성철 스님의 유년기만 그러한 게 아니고 심지어 21세기인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데 서울대 합격자가 그렇게도 많죠. 판검사 출신도 많고 저 경남도지사를 지내는 중인 친문 핵심 김경수 씨도 이곳 산청에서 멀지 않은 고성 출신입니다. 고성도 그렇게나 수재가 많이 난다는 고장입니다. 청년 성철이 교과 선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 이런 배경을 알아야 잘 이해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산청 출신의 그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성철 스님은 주먹으로 일어섰어도 능히 한가닥 했을 분"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그런 대목 묘사는 없지만, 대신 경허 스님의 제자로서 그에게 불만을 품고 음식에 소금 대신 비상을 뿌려 독살하려고 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의 주인공 관섭을 찾아가 무작정 우기며 궁금한 걸 물어 보는 장면(p70)에서 그런 분위기를 살짝 풍깁니다. p237에는 스승인 동산 스님더러 "순 짐승 같은 영감"이라고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처럼 배포가 좋은 청년 이영주도 생전 처음 살모사를 보고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는 걸 보면...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p81에서 막상 살모사 고기 맛을 보고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격으로 아주 신이 나서 술과 함께 흡입해 대는 장면입니다.

 

머리도 밀지 않은 청년이 혼침의 고충을 호소하는가 하면, 참선에 든지 사십여 일만에 동정일여를 이뤘다 하여 소문이 파다히 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영주는 이때 동산 스님을 만나고, 그에게서 취모검과 그의 스승 용성 스님(백용성, 전북 장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p98 이하에 취모검 전설이 재미있으므로 읽어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p184 이하에 용성 스님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기미독립선언문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대목이 그의 솜씨라고 합니다. 손자 제자뻘인데도 성철에게만은 꼬박꼬박 "스님"이라며 존중합니다. 

 

"그래서 교승과 선승은 서로 다른 것이다. 교는 알음알이이므로 알음알이를 통해 깨치려고 하지만 이는 깨달음에 불과하지 진정한 깨침이 아니다. 알음알이를 모두 토해냈을 때 비로소 너의 심신이 거울같이 되는 것이다."

 

"그럼 팔만대장경 같은 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여기 해인사에 버젓이 모셔 놓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뜻을 알라고 모셔 놓은 것이다."

 

"그건 모순입니다."

 

영어에 lucus a lucendo라는 숙어가 있습니다. 라틴어에서 온 어구인데, "숲이라는 말은 '밝지 않음'에서 유래했다"는 뜻으로, 말도 안 되는 견강부회를 비꼴 때 쓰입니다. 숲이 만약 환한 장소라면 저 어원 설명이 그럴싸할 텐데, 그렇지 않고 어두운 곳이죠. 그러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밝지가 않으니 이름이 그리 붙었다"고 한 건데 이런 식이면 세상에 설명 못 할 이치가 없습니다. 뭐 그렇다고 동산 스님이 궤변론자라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튼 성철은 이런 동산 스님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p188에는 춘성 스님이 등장하는데 욕쟁이로 유명한 분이고 어느 사모님의 밍크코트를 불쏘시개로 던져 버린 일화로 또 유명하죠. 또 영부인 육영수에 대한 이야기도 p196에 나옵니다. 

 

임제 스님(먼 예전 중국 선불교 태두 중 한 명)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 내 밑씻개만도 못하다(p247)."고 했습니다. 이 말이야말로 동아시아 대승 불교, 그 중에서도 선불교의 호방함을 잘 알려 줍니다. p198에는 청년 성철과 탄허 스님과의 역사적 만남이 나옵니다. 저 앞 p182를 보면 전북 김제 출신인 탄허택성의 전설적인 일화가 소개됩니다. 국보로 불리던 양주동을 무릎 꿇게 했다거나, 함석헌으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거나 하는...

 

1권의 마지막에는 그 유명한 경허 스님의 양대 제자 중 한 분인 만공 스님과의 극적인 만남이 묘사됩니다. 이처럼 이 소설은 그저 성철 스님 1인의 일대기에 머물지 않고, 일제 강점기부터 대한민국 성립 초창기에 걸쳐 한국의 불맥을 좌우했던 거물급 스님들의 전설적인 일화가, 작가분의 빼어난 필력에 얹혀 두루 소개되는 게 무척 큰 재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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