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어나려 흔들리는 당신에게 - 해낼 수 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양소울 옮김 / 멀리깊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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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보유한 철학자입니다. 한국에서는(일본에서도 상황이 비슷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개론서 수준의 프로이트 관련서적만 봐도 아들러의 이름은 언제나 언급되곤 했죠. 지금 이 저자 덕분에 동아시아의 대중은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부모님이 이상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머리가 굵어 가며 부모님과 의견 충돌도 빚게 되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게 되고, 어쩌면 그렇게 부모님께 실망을 느끼면서 사람은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이 생각만큼 완벽한 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며, 그 빈 부분은 차라리 내가 메우자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만의 인격과 세계관이 무르익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영어로 pers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persona에서 왔는데 이 말은 가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삽니다. 이는 남을 속이고 떳떳지 못한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와 상대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목적이 더 많을 겁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솔직하겠답시고 대뜸 인상을 쓴다거나 욕설을 한다면 어디 사회 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은 그래서 그 의도가 무엇이건 상황이 어떠하건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게 그 숙명과도 같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저자의 책은 언제나 독자의 현실적 니즈를 고려한 실용적이고 친절한 충고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에서도 p112에 건강에 대한 주제로 유익한 말씀을 들려 줍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내 맘대로 언제나 움직여 주는 게 내 몸입니다. 내 몸에 대한 의식이 특별히 시작될 때는 바로 신체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이상을 가능하면 조기에 발견하라, 이상이 생겼으면 괜히 무시하지 말고 이건 정상이 아니다, 병원에 갈 필요도 있다며 빠른 인정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5년 후면 연세가 칠순이 됩니다. 어떤 기준으로도 고령자이죠. 이 나이 또래의 어르신들이 항상 걱정하는 건 첫째가 자신의 치매, 둘째가 배우자의 치매입니다. 치매가 시작되면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닦기, 샤워하기, 식사 등 가장 간단한 걸 헷갈려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거죠. 옆에서 간호하는 이가 명심할 게 있다고 합니다. 본인이 자녀이건 배우자이건 간에, 환자 곁에서 먼저 자신이 행복해하라는 겁니다. 간병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간병자가 마음이 불편한 건 다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나 봅니다. 간병자의 불편함을 눈치 챈 환자가 병이 낫기란 더 어렵다는 거죠. 늙은 부모님 구완하는 분들은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는 게 진정한 효도란 점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죽음은 도착지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어디로 가기는 가는데 앞으로 향할 곳이 어디일지 알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고 "방랑 감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게 꼭 불안감이겠습니까? 저자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감정의 고양(高揚)을 느낀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 것입니다.

죽음을 우리가 앞에 두고도 꼭 우리가 좌절과 공포에 떨어야 할까요? 우리는 갑자기 용무가 생겨 잠시 먼 곳으로 떠날 때도 친구, 부모님과 헤어진다며 울음을 쏟기도 합니다. 아니 어디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돌아올 일정이 뻔히 정해져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막상 길을 떠나 뜻밖에 보람되고 재미 있는 체험을 하면, 이거 돌아가서 전해줘야지 라며 더 신이 날 거면서 말이죠.

물론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겁니다만 혹시 사후세계에 뜻밖의 무엇이 마련되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죽음 후에 완전한 존재 소멸, 절망, 고통만이 예비되었다 해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담담히 현실을 직면하는 게 건전한 생의 태도일 것입니다. 괜히 확실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레 좌절하고 슬퍼하며 미리 영혼을 파괴할 필요는 없습니다.

p172에는 영화 <만추>가 언급됩니다. 한국인인 남자는 하오[好]라는 중국어가 "나쁘다"는 뜻인 줄 잘못 압니다. 중국인인 여자는 이를 바로잡으며, "나쁘다"는 하오가 아니라 "화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 글자는 흙 토(土) 변에 아닐 불(不)을 쓰는 글자인데 윈도에서 기본 제공되지 않네요. 우리 식으로는 언덕 배, 무너질 괴라고 읽는데 현대 중국어뿐 아니라 전통 한문에서도 "나쁘다"라는 뜻을 갖고는 있습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과연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 모든 선악의 문제는 결국 개개인이 살면서 선택을 하는 과정이 아닌가? 내가 혼자서 선이고 악이라 우기는 그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나도 편하고 타인도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말이죠. 누구에겐가는 하오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화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확실한 건, 개인의 하오와 화이를 남한테 강요하는 그 사람만큼은 확실하게 "화이"라는 겁니다. 또, 저자가 "절대의 선"이라 단언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입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관계를 끊고 혼자 사는 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솔직히 공감이 잘 안 돠고 그런 환경에서라면 꼼짝없이 적응에 실패한 후 죽을 것만 같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서 매우 자주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이 되는 프로그램이죠. 그 이유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다들 지쳐서 그렇겠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매우 심한 편에 속하는 사회입니다. 어제도 주한 외국인들이 기어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하는 뉴스가 나왔죠. 외국인들이 한국 특유의 정에 끌려 한국에 정착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면이 있습니다. 특히 직장 내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 책 p199에는 그런 독자들을 향해 저자가 "타자의 도움 없이는 살아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며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합니다. 그 도움이라 함은 공짜로 주는 도움도 많을 테고(실제로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 해도 지나가다가 한두 번쯤은 대가 없는 도움을 받고들 살지 않습니까?), 돈을 주고 얻는 도움도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대가를 분명 지불했는데도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한국 같은 사회에 산다는 건 조금 축복이기도 합니다.

독일어에는 참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mit는 영어로 with 같은 전치사인데, Mitmenschen이라고 하면 여러 뜻이 있겠으나 저자는 "연결성"을 강조하여 아들러의 책 중 이 단어를 "동료"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원어의 뉘앙스는 다소 깎여 나가죠. 이래서 철학(서)의 완전한 번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철학 제대로 공부하려면 원 언어를 배워 원서로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미트멘셴으로 대해야지, 게겐멘셴(gegen은 영어로 against라는 뜻입니다)으로 대하면 타인이나 나나 똑같이 지옥이 됩니다. "고독은 관계의 당연한 일부"이기는 하나 그게 일상이 되면 안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했을 때 받았던 도움에 대해 상기하는데 사실 이 저자분께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건 이 일이 큰 계기가 된 면도 있죠. 타인의 도움 없이 개인은 생존이 불가능하니 어떻게 타인을 적으로 돌리겠습니까. 타인 속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사회인으로 거듭납니다.

책장에 꽂는 책이 정해져 있는 편일까요, 아니면 가리고 가려서 꽂는 편일까요? 책은 어떤 편이라도 자기 취향대로 관리하면 되지만, 추억과 기억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나쁜 기억도 그것을 설욕하려 들며 자꾸 책장에 꽂아 두면 안 됩니다. 잊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걸 기억하고 절치부심하면 그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까? 갚을 수 있다고 치고, 그 후폭풍은 뒷감당할 수 있습니까? 엉뚱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까요? 현실이 이렇다면 먼저 내 자신을 겸허히 반성하고 유한한 인생 알차고 행복한 체험으로 더 채워 나갈 일입니다.

인생은 찰나와 같이 짧습니다. 그런 인생을, 좋은 사람들과 체험, 감정을 공유해 가며 알콩달콩 채워 가도 모자랄 판에, 분노와 회한, 집착, 통분 등의 건설적이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혀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면 되겠습니까?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목표, 아릅답게 가꿔야 할 추억과 대상이 무엇인지를 언제나처럼 확실히, 그리고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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