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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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책이 술술 넘어가는데 읽으면서 이게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라는 점을 깜빡 잊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도 "공공의 적" 같은 제목을 단 작품이 있고 미국에서도 조니 뎁 주연의 <퍼블릭 에너미>가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이런 별명이 붙은 가상의, 혹은 실존했던 인물 중에는 이름난 범죄자가 많습니다. "인류 모두의 적"이란 말은 저자만의 규정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에 붙여졌던 명칭인데 당시의 문어 국제어였던 라틴어로 "호스티스 후마니 제네리스"였습니다. 호스티스는 유흥업소 접객원이 아니라 "적(敵)"이란 뜻이며 영단어의 hostile이 저 라틴어에 어원을 둡니다. p248에서 저자는 현대판 "인류 모두의 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예를 듭니다.

육상의 세계는 제도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제도에 순응할 생각은 적고 야심은 큰 이들이 진출할 곳은 (보는 눈이 없는) 바다뿐입니다. 신체적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걸물들이 바다에서 노략질로 큰 부와 세력을 쌓은, 이른바 해적들의 예는 역사상 무수히 많고 그 중에는 드레이크(이 책에서는 p78에 잠시 지나간 역사 한 대목으로 언급)처럼 마침내 제도권에 한 발을 담그는 데 성공한 자도 있습니다.

영국은 본디 해상 강국의 역사가 길어서 제도권의 해군도 강했지만 그곳 출신 해적들의 발호도 무척 극성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17세기에 가장 악명 높았던 해적왕이자, 최초로 전세계적 수배령이 내려진 인물로도 유명한(앞 책날개 中)" 헨리 에브리의 일생을 다뤘습니다.

저자는 "헨리 에브리의 삶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영국의 인도 아대륙 점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p61)"고 합니다. 와우! 역사에 물론 if는 없다고들 하며(이 책 p242에서도 저자가 자기 입으로 이 비슷한 말을 합니다. 또 p278에서는 "대체역사는 픽션과 구분되지 않는다"고도 하네요), 인도 점령은 근 백 오십 년에 걸쳐 이뤄진 점진적 사건이며 수많은 요인과 우연이 개입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악명 높았던 어느 해적의 행적이 이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쉽사리 떠올리기 힘들지 않겠나 싶습니다. 엄청 재밌어집니다.

잉글랜드는 본래 숨막힐 정도로 수직적인 위계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어떤 소년이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평균적인 수명도 못 채우고 끝까지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이, 이 나라에는 바다라는 숨통, 출구,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있었습니다. 마치 천 수백 년전의 로마처럼, 하층민들은 군 입대를 통해 분수에 없던 부를 축적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었죠. 물론 대단히 위험한 일인지라 운 나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혹은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헨리 에브리는 런던이 아니라 데번셔 출신이지만 여튼 그 과정은 비슷했습니다. 지금도 미국 일부 주에서는 부랑자, 노숙자, 구걸 등을 경찰력으로 단속하는데 에브리가 입대한 과정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입장도 있다고 저자는 전합니다(즉 프레스 갱의 "등쌀"에 못이겨서일 수 있다는 거죠). "당시 입대한 초보 수병의 경우 20파운드 미만의 빚이라면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도 받았다(p26)"라는 구절이 있는데 물론 채권자가 독촉하는 걸 시스템이 보호했다는 뜻입니다.

총명한 생존자 타입인 헨리 에브리는 혹독했던 영국 수병 복무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군인으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마련했었던 걸로 보입니다. 적자 생존이라는 건 이런 예를 두고 하는 말이죠. "훤칠한 키에 우람한 체구, 잿빛 눈동자의 30대 후반" 당시의 그를 묘사한 기록입니다. 스페인 난파선 인양을 위한 원정에 일등 항해사로 참여한 그는, 아마 자신도 분명히는 몰랐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일약 잉글랜드 전체, 아니 세계가 주목한 거물이 됩니다. 물론 범죄자로서 말입니다.

선상 반란은 역사상 유명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엄청 많지만 이 찰스 2세호의 사건도 흥미로운 구석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선상 반란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담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p118)"는 게 중론이었겠죠. 투자자나 선원들이 험한 항해에 구태여 몸 담는 이유는 이로부터 큰 이익을 기대해서입니다.

그러나 출항 후 스페인 난파선 인양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바라던 전망이 나날이 어두워졌고 임금 체불의 문제가 심각했으며 심지어 선원들이 노예로 팔릴 것 같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선장은 자제력과 건강을 동시에 잃어 갔으며 일등 항해사 중 한 명이었던 헨리 에브리는 말단 선원들과 다른 항해사들을 포섭 또는 협박하여 선상 반란을 성공시킵니다. 거사 당일 이미 대세가 기울었던 걸로 봐서 평소에 그가 주변에 각인시킨 리더십이 탁월했던 듯합니다. 그 리더십이 바람직한 방향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말입니다.

보통 도적떼들의 무리는 가장 독재적이고 폐쇄적인 상명하복관계가 지배합니다. 미국의 이탈리안 마피아 등도 예외가 아니죠. 정말로 특이한 건, 헨리 에브리가 선상 반란 후에 일종의 미니 헌법을 만들고, 자신의 무리들에 대해 일종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적용하여 가장 탈권위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이어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으로부터 곧바로 해당 인물의 도덕성이나 탁월함이 증명되는 건 당연히 아니며 해적이 무고한 이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조직의 효율성 추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듯 보이는 그의 선택에 어떤 상황적, 심리적 배경이 있었는지에 더 관심이 쏠리는 거죠. 책 말미인 p345에 인용되는 찰스 존슨 같은 연구자는 리베르탈리아라는 해적 민주 국가, 지상 낙원의 존재를 주장하며, 이것이 이후 유럽 계몽 사상가들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놀라운 결론마저 제시합니다.

앞서 1부 3장(p50 이하)에는 영국과 한참 떨어진 무굴 제국의 역사 몇 대목이 잠시 소개됩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나오나 하겠으나 헨리 에브리가 저 멀리 인도 아대륙과 엮이는 대목이 있어서입니다. 묘하게도 아우랑제브의 즉위 연도와 헨리 에브리의 탄생년이 서로 같다고 합니다.

1840년대의 아편 전쟁도 사실 영국의 對淸 무역 적자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이때로부터 200여년 전 자한기르(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부황)가 다스리던 무굴 제국도 은화를 먹는 블랙홀과 같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타 세계보다 경제력이 우월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대한 생태계와의 무역에서 서유럽이 이길 가망이 없었죠. 상인들은 원래 독재자와 결탁하기를 좋아하며 자한기르의 시대에는 윌리엄 호킨스가 아대륙 황제의 특별한 호의를 얻어 영국 동인도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대외무역 기득권자였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강력 반발했으나 이미 국세가 기울던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죠.

자한기르, 샤 자한을 이어 아우랑제브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때 동인도회사는 저 야심만만한 군주와 더욱 관계를 다져 독점 무역의 이익을 제고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여기에, 동인도회사를 둘러싸고 잉글랜드 내부의 계급 갈등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왕과 일부 귀족은 동인도회사를 강화하려 했으나 하원은 반대했고 스캔들이 커지자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한편 선상 반란 후 서아프리카 앞바다의 케이프베르데에 체류하던 에브리는 아프리카 대륙 반바퀴를 빙 돌아 마다가스카르를 거쳐 인도양으로 진입할 생각을 품었습니다. 마치 한니발이나 나폴레옹 등이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정을 성공시켜 정복자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모험은 그저 배짱 좋고 체력만 월등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도중에 전혀 예상 못 하던 난관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여 이를 돌파하느냐 같은 순발력과 임기응변 대처력이 중요한 겁니다. 예를 들면 좀벌레나 따깨비 등이 선체를 위협할 때 에브리는 뭘 배운 바도 없는 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기술적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리더가 이처럼 능력이 있으니 나중에는 덴마크 사략선 패거리마저 "될성부른" 해적 항해에 동참하여 무리가 제법 커지기까지 합니다.

20세기 말 현지 정정 불안을 틈타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인근에 해적이 출현했고 한참 후에는 우리 선박들도 피해를 봤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해적이 나올 수 있느냐고들 했지만 책 p176에는 그곳이 예나 지금이나 최적의 사냥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헨리 에브리도 전환점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칭기즈칸이나 티무르는 잔혹한 무력 행사로 상대(다른 유목 부족들)를 복속시켰으나 헨리 에브리는 무슨 수완이었는지 협상을 통해 아덴 만에서 자신보다 훨씬 경력(?)이 오래된 해적들을 제 휘하로 끌여들였습니다. 앞서 선상 반란 때도 그는 가급적이면 피 안 흘리는 작전을 구상했다고 하니, "Blood is a big expense"라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가 생각도 나네요.

저자는 에브리를 평가하기를 일단 "탁월한 지도력을 갖추었으며" "기존 규칙을 깡그리 무시하기보다는 (자신이 주도하여) 새 행동 규칙을 빨리 마련하고자 하는 편"이었으며 "유동적인 민주 체제의 선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양에 진입하여 미리 동인도회사에 경고하기를 가급적이면 충돌을 피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는 주적에 집중하고 강한 무력을 지닌 상대를 회유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여튼 그의 사고가 합리성에 의해 지배됨을 보여 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티무르 같은 이는 광기의 사내였죠.

이미 선상 반란을 통해 범죄자, 수배자가 된 그였으나 가급적이면 이후 항해에서 "영국의 법"은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앞선 선상 반란은 임금 체불, 선원 인신 매매 시도에 대응한 일종의 정당방위로 (혹시나 영국 법정에 서면) 항변할 생각(p239)이었던 듯도 합니다.

헨리 에브리가 타깃으로 삼은 건 "무슬림 보물선"이었습니다. 무굴제국 역시 외부에서 침입해 온 무슬림 세력이 왕조 개창자였습니다. 상선뿐 아니라 훨씬 역사가 오래된 대상(카라반)도 누구 못지않은 무장 집단이었으므로 어설픈 해적질은 오히려 나 좀 죽여달라는 자폭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에브리에 자진 투항한 토마스 튜 같은 해적은 전투(에브리는 모르고 불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튜를 죽인 "보물선"은 얼마 후 에브리에게 포획당합니다.

에브리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오래 전부터 점찍어 둔 건스웨이 호를 마침내 대파하여 막대한 부를 거머쥡니다. 건스웨이는 이름이 서유럽에 그리 알려졌을 뿐 아우랑제브 황제가 직접 관할하는 배수량 1500톤의 엄청나게 큰 상선이었으며 정식 명칭은 "간지-이-사와이"였습니다.

아무튼 이런 일이 생기자 아우랑제브는 대체 동인도회사에 독점권을 줄 이유가 무엇인지 회의할 법도 했으며(p231에 "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 모독"이란 말이 나옵니다. 아우랑제브는 처음에 동인도회사와 영국 해적들을 구별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도 합니다), 한편으로 영국 본토에서는 특히 토착 양모 기업들이 인도산 수입품과 경쟁해야 했으므로 (주가 조작 스캔들을 떠나서도) 이 동인도회사를 좋게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국내외에서 모두 위협을 맞은 셈이었이며 따라서 저 헨리 에브리라는 해적을 반드시 절멸(p241:16)해야만 했습니다.

저자는 필립 스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워서 알듯 1757년에 클라이브가 프랑스와 한판 붙은 플라시 전투에서 이긴 후 동인도회사가 이른바 "자주권"을 획득했다기보다, 그보다 60여년 앞선 지금 이 시점(혹은 그보다 이전)에 이미 반(半) 국가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여튼 이제 동인도회사는 회사 존립을 걸고 해적을 찾아 약탈물을 회수하며 범죄자를 심판하고 재발을 방지할 숙명을 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건스웨이를 털어먹고 크게 한몫을 챙긴 에브리는 신대륙(아직은 영국의 식민지였던)까지 가서 일부 현금화를 하고 대담하게도 아일랜드까지 와서 나머지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가장 험난한 신혼여행(p283)"이라 말하는데 건스웨이의 전리품 중에는 아우랑제브의 손녀도 있었고 평소 궁중의 풍습에 불만이 적지 않았던 그녀를 에브리가 신부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서는 p345 이하에서 저자가 전혀 다른 가정, 예를 들면해적들에 의한 윤간이나 이후 病死 등 다른 전개들도 제시합니다). 에브리의 부하들도 큰 부를 바탕으로 신대륙 나소에서 현지의 여인들과 맺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해당 지역의 인구 분포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까지 합니다.

에브리의 이야기는 영국 본토에 시가, 이야기 등의 형식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p138, p292 등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런 낭만적 과장과 윤색은 대중 사이에서 에브리의 인기를 비정상적으로 높였으며, 이를 우려한 영국 정부는 해적행위를 해사(범죄)법정에서 관습법법정으로 관할 이전하는 법개정을 단행합니다. 일단 해적들 중 일부(에브리는 붙잡히지 않았지만)는 해적행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다시 선상반란으로 기소되어 결국 처형됩니다. 이 법정다툼은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제30장에 재미있게 묘사되며 저 앞 p91의 "다섯 명의 선원은 해적 처형장에서 교수형이 처해지며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기술은 사실 그 죄목이 선상반란이었던 거죠. 제31장(p327 이하)에 처형 관련 서술이 자세히 나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18세기에 해적 이야기는 문예, 연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으며 동인도 회사는 "새로이 얻은 권한을 바탕으로 결국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p339)"고 합니다. p61에서 처음 독자에게 던진 규정이 여기서 그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거죠.

큰 재산을 챙긴 헨리 에브리는 끝내 종적이 묘연해졌으나 영국 정부도 죄목을 바꿨을망정 해적들을 처단하여 국제 사회에 반(反) 해적 스탠스를 명확히하여 이미지를 개선했고 동인도회사는 저자의 규정대로 그 세력을 더 키웠으니 손녀(와 재화)를 뺏긴 아우랑제브만 제외하고 모두가 승자가 된 셈입니다. 책에는 호메로스부터 페르낭 브로델까지 다양한 전거가 인용되는 등 학문적 바탕도 충실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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