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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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술이 그 탄생 이래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 받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마도 우리네 인생의 압축된 모습을 90분 남짓한 시간에 선명히 담기 때문이겠습니다. 영화는 물론 "활동 사진"이므로 먼저 시각으로 우리에게 어필하지만, 그 오디오를 통해서는 무수히 많은 명언, 명대사를 우리 귀로 들려 주며 우리 심장을 두들깁니다. 영화는 명장면, 그리고 명대사로 우리 뇌리와 가슴에 자리를 잡습니다. 

 

명장면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재생될 뿐이지만, 명대사는 입에서 입으로 사람 간의 소통을 통해 무한 전파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대사를 추억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공감대와 정(情)을 널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곤 합니다. 영화는 그 제목을 통해 명예를 남기며, 그 명대사를 통해 뭇 인류의 감성을 지배합니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챕터로 구성됩니다. 잠시 각 장의 타이틀을 옮겨 적어 보면

 

1) 꿈과 자유를 찾아 주는 명대사
2) 사랑이 싹트는 로맨스 명대사
3) 인문학적 통찰력을 길러 주는 명대사 
4) 사람의 심리를 파고 드는 명대사
5) 지친 마음을 힐링하는 명대사
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명대사
7)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는 명대사
8) 내 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

 

이상과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영화를 좋아하므로 인생 영화로 꼽는 명작도 각각 간직하겠고 그와 별개로 명대사 역시 기억해 두는 구절이 많겠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범주로 나눠서는 각 한 개씩만 꼽아 보라고 하면 아마 다들 당황할 것입니다. 일단 영화의 명대사를 저렇게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독자로서 부러웠습니다. 살면서 추억과 감동의 원천을 잘 정리해 왔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책을 만났으면, 우리도 슬쩍 남(=저자분)의 앨범에 약간의 추가와 삭제를 가함으로써 우리만의 추억 항아리를 예쁘게 가꿀 수 있지 않을지요. 내용이 너무 풍성해서 누구라도 이 교구(?)로 자신의 작품을 새로 만들고 싶을 것 같습니다.

 

각 챕터마다 25편의 영화가 소개되는데 25x8을 하면 200입니다. 200편의 영화! 그리고 각 작품마다 5구절씩 명대사가 소개되니 책 제목대로 1,000개의 명대사를 읽을 수 있는 거죠. 200편의 명작을 다이제스트로 접하는 것도 행복한데, 명대사 5개씩을 그것도 영어 원문과 함께 읽으니, 아포리즘이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효과도 효과거니와 영어 공부까지도 됩니다. 흐뭇합니다. 


 

영어 대사 영화만 있는 건 아니고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된 영화들도 있으며 여기서의 명대사들은 모두 해당 언어로 인용됩니다. <타인의 삶>, <다운폴>(이상 독일어), <아무르>(프랑스어) 같은 건 영어 번역 대사가 실렸습니다. <기생충>은 영어 번역(자막)이 잘됐다는 평가를 당시에 받았으며 <올드보이>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도 되었으므로 해당 명대사들은 영어 버전도 나란히 실려 있네요. 

 

CHAPTER 1


제일 먼저 등장하는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입니다. 제목이 오역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이미 대중의 뇌리에 굳었으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책에서는 그저 명대사 인용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독자에게 어떤 포인트로 이 말을 이해해야 할지 저자의 교훈, 감상이 덧붙여집니다. 그러니 이 책은 자계서로 읽어도 좋고 인생 독본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Carpe diem이며 이 말 자체는 라틴어입니다. 영화에는 (이 책에 소개된 대로) Seize the day라는 영어 번역 대사도 함께 나옵니다. 

 

<불의 전차>가 다음에 나오는데 요즘 전지현이 "△△△는 묵음이야"라고 하는 TV 광고 중 그 배경음악이 바로 이 영화 음악을 작곡한 반젤리스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One More Kiss, dear>은 이 책 8-6, p313에 나오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오리지널인 <블레이드 러너>의 삽입곡이었죠. "불의 전차"는 기독교 구약 열왕기 하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는 주인공"이라고 책에 나오는데 왜 차별을 받냐면 유대인이라서입니다. 미국도 영국도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 차별이 심했죠. 주인공 역의 벤 크로스는 여기서 정의롭고 선한 인물이었으나 이후 나이 들고 나서는 나쁜 사람 역으로 더 자주 나왔기에 재미있습니다. 목소리가 독특한 분이죠. 

 

<아마데우스>에서 "왜 신은 나에게 재능을 주지 않고 그 재능을 알아 보는 안목만 주셨는가?"라며 울부짖는 살리에리 역의 머레이 에이브러햄 연기가 일품이었죠. 사실 그가 말하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이요 후원자"라는 대사(이 책 p32. 명대사 번호 053)는 반어적 저주라서 그리 좋은 뜻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이 말이 우리 관객들 마음 속에 오래 남습니다. 저자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 드셨는지 명대사가 많은데도 이 라인을 1000개 안에 넣었습니다. 꼭 교훈적이라서가 아니라 여튼 명대사는 명대사입니다. 우리 영화 <타짜 2>에서 "너는 나에게 구땡을 줬을 것이여" 같은 것도 명대사는 명대사 아니겠습니까. ㅎㅎ

 

<리틀 미스 선샤인>은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어순이 약간 바뀌어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원제대로 바로잡고 있습니다. 명대사 058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잠깐, 패배자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해 보는 사람이야. 
You know what a loser is? A real loser is somebody that's so afraid of not winning, they don't even try it.

 

사실 이 원 대사는 문법적으로 안 맞습니다만 해당 캐릭터의 개성과 분위기가 생생히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본 분들에게는 분명 명대사입니다.

 

CHAPTER 2


<사랑과 영혼>은 특히 당시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친 흥행작입니다. 번역도 잘된 편이죠. 이 영화에서 명대사라면 많은 이들이 ditto(동감이야)를 기억할 텐데 책에서는 그보다는 더, 우리에게 교훈이 되거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사 5구절이 제시됩니다. 이 챕터 제목이 "사랑이 싹트는 로맨스 명대사"이니 말이죠.

 

<물랑 루즈>는 아주 예전 고전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니콜 키드먼과 유언(=이완) 매그리거 주연의 그 잡탕 뮤지컬 영화를 소개합니다. 잡탕이라고 한 건 이 영화가 독특하게도 오리지널 아리아가 아니라 기존 명곡들을 재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남주는 가난하고 여주는 불치병에 걸렸기에 보는 내내 관객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와중에 주고받는 절절한 사랑의 대사는 슬프기에 더 달콤합니다. 

 

<중경삼림>은 지금의 중년 세대가 젊었을 적 감미롭게 봤을 만한 걸작입니다. 별 내용도 없는데 여튼 우수 가득하고 폼 나고 도회적이면서 달달합니다.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명대사 번호 224번. p87)

 

CHAPTER 3


<다크 나이트>를 소개하며 저자는 "다른 히어로물처럼 단순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고 합니다. "정의를 지킨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이겠는지 생각해 보자"고도 합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에는 누구도 혼란에 빠지지 않아. 그 계획이 아무리 끔찍해도 말이야."

 

과연 다시 봐도 명대사가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평범한 대중이 역사상 그처럼 많은 악행에 공범으로 가담해 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감독이 <메멘토>도 좀 이전에 만들었었는데 이 역시 명대사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후자 아닌 전자로 착각하기에 그토록 많은 다툼과 오해가 빚어집니다. 

 

CHAPTER 4


<처음 만나는 자유>에는 그야말로 환히 빛나는 청춘 위노나 라이더가 나와 그 청순+퇴폐미(?)를 동시에 풍깁니다. 사람이 자신의 꿈을 너무도 사랑하면 이른바 광기의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여놓는다는 건데, 그렇다면 미친 사람은 우리들 중 가장 순수한 마음을 잘 간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광인은 위노나처럼 예쁘지 않은 경우가 많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 영화의 명대사들을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범주에다 넣습니다.

 

"프릭쇼"는 몇 년 전 휴 잭맨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였는데 데이빗 린치 연출의 <엘리펀트 맨(1980)>은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존 허트의 분장이 무섭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이 저토록 비참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나 싶어서 맨정신으로 영화를 보기가 힘듭니다. 저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라 말합니다. 이 영화의 명대사들 역시 4장에 배치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지 저는 더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규칙과 화합, 피와 야만,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어?" 

 

이것은 <파리 대왕>에 나오는 명대사이고 동시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원작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 비해 덜 유명하고, 책에 소개된 1990년작보다는 그로부터 십 수 년 전에 만들어진 흑백물이 더 유명합니다. 1990년작은 화면이 아름다우며 진행이 깔끔하기는 합니다. 저자가 이 작을 챕터 4에 넣은 이유를 독자인 저의 멋대로 짐작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척 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약육강식의 무정부상태가 닥치면 모두 잽싸게 짐승으로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냐는 잔혹한 질문을 이 영화(와 원작)이 우리에게 던져서가 아닐지...

 

CHAPTER 5


<맘마 미아!>는 원래 뮤지컬이며 뮤지컬이 히트를 치자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등을 기용해서 영화로 만들었죠. 혼성 4인조 아바의 1980년대 히트곡을 아리아로 썼는데 곡들이 워낙 좋고 내용도 힐링이 차분히 되는 내용이라 저자도 "힐링용으로 추천"한다고 책에서 밝힙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20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내용도 중노년의 정서를 타겟으로 삼았고 올드 팝을 써서였는지...

 

"당신의 감정을 다른 곳에 허비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사랑을 나에게만 주세요."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내 사랑을 줄 사람을 언제 어디서 만나냐는 게 문제입니다. 제때 만나기만 하면 낭비, 하라고 해도 안 하죠. 쓸데없이 감정 낭비할 대상을 인생에서 요리조리 피하기만 해도 그 사람은 운 좋은 사람입니다. 

 

CHAPTER 6


<아메리칸 뷰티>는 진행이 코믹하고 화면이 따스하지만 내용은 좀 무섭습니다. 반전 가득한 결말은 슬프고 말이죠.  

 

"오늘은 당신 남은 인생의 첫번째 날이에요." (명대사 645번)

 

주인공은 그야말로 번아웃된, 대체 뭘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지 완전히 목적을 잃어버린 불행한 가장입니다. 좋은 일자리 다 걷어차고 잘나가는 부인도 방치하고 어디서 맥잡을 얻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때늦은 반항을 벌이던 중 딸의 친구를 만나 불측한 관계를 맺기 직전이죠. 과연 이렇게 해서라도 생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태울 필요가 있을까요?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지. 좋든 싫든 간에."

 

이 대사는 <그린 마일>에 나옵니다. 원작 소설은 스티븐 킹이며 이 사람도 명언 제조기이죠. 커피라는 거대한 체구의 흑인 사형수는 알고 보니 일종의 메디슨 맨이었다는 건데... 주인공인 교도관은 더 큰 도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엄중해야 할 행형 규칙을 어깁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과 교도소장은 자신들에게서 시간이 서서히 앗아가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절망하고, 커피의 기적(!) 후에 새로이 성찰합니다. 

 

CHAPTER 7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아빠는 아이(공주님이 낳으셨습니다)에게, 악마(나치 등)들이 행하는 "사람으로 비누 만들기"가 거짓이라며 필사적으로 연극을 합니다. "넌 어쩜 그렇게 바보니? 그걸 믿어? 사람으로 어떻게 비누를 만들겠니?" 그런데 이걸 실행에 옮기는 미친 녀석들이 역사에 있었죠.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정말 슬퍼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폐하를 위해 싸웠고 로마를 위해 죽습니다."

 

존귀한 장군이었으면서 이제 검투사로 전락한 막시무스는 죽음의 결전장에서 필생의 원수를 다시 만납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생의 목적을 잊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 애씁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구이도가 아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막시무스의 아들은 죽었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의 의지와 혼은 꺾이지 않습니다. 

 

CHAPTER 8


"의심은 좋은 거에요.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주니까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은 망망대해에서 맹수인 호랑이와 죽음의 동거 항해를 이어갑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현재의 극한 상황을 극복하려 드는데... 결말에 가서 밝혀지지만 이는 소년의 상상에 의한 현실의 우화적 치환이었던 거죠. 


 

명대사 1,000개, 영화 200편을 책으로 일별하고 나니 마치 꿈나라에 다녀온 듯 뿌듯하고 황홀합니다. 영화사 백 년을 한 권의 우표첩으로 감상한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13년 전 <쿵푸 팬더>를 보면서 옆자리의 커플 중 남자가 해당 작품의 명대사 하나를 미리 외워 와서 귓속말로 여친에게 들려 주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야 물론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추억 속에 그날 그 시각의 영화 관람은 해당 명대사와 함께 죽을 때까지 남을 것입니다. 이 책 한 번 죽 읽고 나서, 셋톱이나 OTT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 한 편 같이 "땡기면" 어떨까요? 아름다운 순간은 원래 명대사라는 BGM이 깔려야 제맛이니 말입니다. 

 

(아, 혹 그게 힘들면, 나 혼자서 유익한 인문적 성찰에 빠져들 수도... 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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