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이야기 -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나중에 떠나는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
한종수.김상순 지음 / 미지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병대는 보통 미국에서 Jarhead라고 불립니다. 특유의 머리 모양 때문에 그리 불리며 해병대 출신들은 육군을 가리켜 그저 army라고도 부르는데 한국식 감각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Jarhead는 딱히 멸칭은 아닙니다.

오늘이 현충일인데 물론 인천상륙작전은 9월 중순에 있었고 현충일에 이 일이 있은 건 아닙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마자 서울이 불과 며칠 만에 탈환이 되었으니 이 작전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사실 당시 한국 정부의 지나친 무능 때문에 북한군이 빈집 털듯이 내려왔고 딱히 전략적 탁월성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해군다운 해군은 16세기에 스페인의 아르마다를 깨부순 영국 해군이었겠으며(드레이크의 프리바티어가 결정적 노릇을 했습니다), 해군과는 구별되는 별개 병종이 해병대인데 이는 2차 대전 당시 혁신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최초 창설은 무려 18세기 미 독립전쟁 당시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재미있게도(?) 대원군 집정기인 1871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에 책임을 물으러 이 땅에 쳐들어온 미군 역시 해병대였습니다. 자헤드(그때도 자헤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가 조선 포병들과 한판 붙었다고 하니 생각만으로도(조상님들께는 죄송하지만) 흥미롭습니다. 물론 신미양요는 엄연히 조선이 이긴 전투이며, 다만 실익도 없고 보급도 힘들다고 생각한 미군이 일찌감치 철수한 까닭이 있기는 합니다.

2차 대전의 향방을 뒤집은 전투 중 하나로 미드웨이 해전이 꼽히고, 그 중에서도(위의 전투도 물론 태평양 전쟁의 일부이지만) 태평양 전쟁의 향방을 뒤집은 전투는 과달카날 전투가 꼽힙니다. 어차피 물량이나 전력으로 보아 승패가 정해졌다고는 하나 전쟁이란 사소한 실수로도 큰 방향이 완전히 뒤집히는 게 예사이니 만약 과달카날에서 미군이 큰 피해라도 입고 전쟁에 졌다면 역사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종래 맥아더 원수의 개인 작품이고, 그의 개인적 특성(자기과시욕이 강하고 모험을 즐김)에 맞게 승산이 아주 불투명한, 잘못하다가 부대원이 전멸할 수도 있는 리스키한(하이 리스크 베리하이 리턴) 작전을 감행하다가 우연히 상대방(김일성)의 멍청함과 무능을 틈타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 정부, 육군 수뇌부의 치밀한 검토를 거쳐 안전빵 위주가 아니라 필승의 승부수로 고안된 게 이 작전이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이 책도 해당 주제를 다룬 챕터에 그런 시각이 일부 반영됩니다.

여담이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건, 중공군에서 이미 린뺘오(임표). 팽덕회(펑더화이) 장군 같은 이가 이미 이 수를 내다보고 김일성이한테 조언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전장에서 평생 잔뼈가 굵은 이들의 독특한 안목은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