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범 자유문고 동양학총서 51
사마 광 지음, 이영구 옮김 / 자유문고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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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사마광이 맞습니다. <자치통감>은 한국어 번역본으로 권중달 선생 번역본이 유명하지만 최근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고 신동준씨 번역본이 새로 출간되고도 있습니다. 권중달 선생이 한국에서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잘 알려졌으나 신동준 선생도 워낙 한학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 서적에 박식한 분이고 특히 중국 현지에서 이뤄지는 최신 연구 동향에 밝았던 분이라서 두루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지 싶습니다.

家範은, 가정의 모범, 전범(典範)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가정의 모범인가? 바로 이 책에서 저자 사마광이 논한 규범을 다 지키는 가정이 그러하다는 거죠. 흔히들 삼강 오륜을 두고 삼강은 지나치게 봉건적, 가부장적 가치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오륜은 그렇지 않으며 현대적으로 충분히 재해석할 여지가 많다고도 합니다.

오륜 중에는 부부유별이 있는데, 이는 의외로 부부 사이의 평등한 예법을 강조하는 덕목이며, 삼강의 부위부강하고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부위부강은 지아비가 지어미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사실 우회가 불가능한, 빼도박도 못하는 전근대성을 노출하는 한계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유별은 다르죠. 책 p24에는 이 부부유별에 대한 사마광의 상세한 논변이 나옵니다.

"2백 명의 대가족이 한 집안에서 살다" 사실 이런 대가족이 또 집성촌도 이루는 것이며 농경 사회에서는 몇 대만 모여 살아도 이런 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이문열의 단편 <익명의 섬>같은 픽션의 세계에서도, 몇몇 집안 사이의 불륜이 그렇게 큰 문제와 흉이 되었던 것입니다. 별개의 가구라고 해도 몇 사람만 지나면 다 몇 촌으로 연결된 친족 사이라고 봐야 하니....

"곡식 한 말도 방아 찧어 함께 먹는다" 비록 이처럼 우애와 협력을 강조한 농경사회였지만, 필요 이상의 허례허식도 많았으며 이런 읿부 폐단이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고 인간 관계를 곪게 하는 면 없지 않습니다. 또, 이처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나 사유 재산 관계는 또 엄격히 유지되었기에, 공산주의식 협동 농장 체제 도입시 중국이나 멀리 소련 등에서 농촌 공동체가 생산력 면에서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좋은 이름을 얻었는데 죽은들 여한이 있겠는가" 대의명분을 강조했던 유교 사회에서 타인들의 평판은 이처럼이나 중요했습니다. 개인은 그저 개인이 아니며 예컨대 명초의 대문사 방효유가 결연히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후대에 남을 평판을 그토록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십족을 멸하는 참혹한 결과를 감수했던 게, 비록 혈족, 인척은 아니지만 문하의 학생들도 유교 공동체에서 스승의 분신으로 활동하는 이들이므로 그만한 비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건 "총론"이 현대의 저서들과는 달리 책 맨 뒤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어의 의미가 현대에 와서 달라진 게 그 까닭이며 결론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여성에게 그저 굴종만 강요한 게 아니라 가장의 의무, 즉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대하며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비록 천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유효하고울림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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