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세계 - 어느 미술품 컬렉터의 기록
문웅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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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의 기본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모으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p51)

보통 어렸을 때 시작하는 수집은, 친구들이 뭘 모으는 걸 보고 부러워서 따라하거나, 아니면 부친 등이 시작한 컬렉션을 승계하거나일 것입니다. 이 책 저자께서는 어려서 모으기 시작한 펜대들이 그 출발점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환경이 크게 변화해서인지 팬대에 그리 다양한 종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수집의 목표가 되려면 한 개인이 다 커버 못할 만큼 종류가 다양해야 할 듯합니다.

p55에는 석농 김광국이란 분이 내린 "수집"의 정의가 나오는데, 그 뜻이 참으로 깊어서 잠시 직접인용해 보겠습니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이쯤되면)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p53)

모으는 일이 여기에까지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닦는 경지에 가깝겠습니다.

전남 장흥 출신인 저자는 본업이 사업가입니다. 그 수집의 내력은 참으로 오래된 것이어서 책 p259에는 "'빛의 화가' 우제길의 전시회가 5.18 직후에 열렸다"라는 문장도 나옵니다(이 사건은 1980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문예 작품 수집에 일가견이 있으실 뿐 아니라, (예컨대 서예 작품을 수집하려면 일단 글씨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듯) 본인 자신부터가 서예에 소양이 높은 분으로 보입니다. p263에는 아들이 미대에 합격하자 "책이 많은" 홍성담 화가에게 데리고 갔다는 말도 나옵니다.

p34에는 "글씨 공부를 하는 후학으로서"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또 p256 등에는 "감히 내가 일속(오명섭 서예가의 아호입니다)의 서예 세계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 같은 겸손의 표현도 있네요. 거듭되는 말이지만, 존경 받는 수집가는 그 가진 컬렉션의 볼륨으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소양으로 칭송 받습니다. "서예술은 뜻있는 글귀의 문자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다(p257)." 그러니 서예는 단지 글씨를 시원하고 깔끔하게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피카소가 현실의 다양한 형상으로부터 입체를 추상하듯, 엄연히 이데아를 창조하는 예술인 것입니다.

"구매욕을 절제할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과연, 수집이란, 최소한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취미이자 활동이기도 합니다. 또, 재력이 있다면 구태여 구매욕을 절제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재력"이란 수집의 필요조건일 뿐 그 이상이 될 수는 없고, 높은 안목과 인문적 소양이 더 본질적인 요소이겠습니다.

p193에는 허버트 드레이퍼의 유명한 그림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이 나옵니다. 하반신은 물고기인 듯도 보이지만 뱃전까지 거의 다 기어오른 한 세이렌은 이미 인간 여성의 고혹적이고 늘씬한 다리를 다 갖추었는데 이미 유혹에 반쯤 넘어간 인간의 눈에 그리 보일 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그림은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저술로 유명한 고 이윤기 씨도 자신의 책에 도판으로 즐겨 실었지요. 여기서 저자는 오디세우스를 두고 "마음 놓고 수집품을 모을 수 있는 유한계급"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안목은 탁월하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그 답답한 처지를 무엇으로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안타깝지만 이 역시 엄연한 현실입니다.

엘러리 퀸의 어느 단편을 보면 두 수집가가 하나의 아이템을 놓고 다투다, 무한정 가격을 올리지 않으려고 타협(담합)하여 일 년을 절반으로 나눠 "공유"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명대사 중 하나가 "수집가에게는 원하는 물품을 손에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느 가격이었냐도 중요하다."였습니다. 하지만 문웅 저자님의 관점은 이런 류와는 사뭇 다른 듯하며, 수집의 첫째 동기는 "일단 자기가 좋아해서 구입하여 감상하는 것(p269)"이라 하십니다. 그러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 감탄, 존중"이 우선이며, 방대하고 성공적인 컬렉션의 형성은 그 다음 문제인 셈입니다. "미술 감상에는 문외한이면서 투자만을 목적으로 구입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얼마든지 더 좋은 투자처가 있음을 말해 주고 싶다(p269)." 저자의 말입니다.

"왜 돈 많은 사람이 그림을 사들일까? 그것은 예술 자체로서의 가치 외에도 투자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p89)." 앞선 진술들과는 살짝 모순인 듯도 보이지만 저자의 사업가로서 날카로운 통찰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를 포함하여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펴 든 한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p111에는 "이제 막 오르기 시작한 작가의 작품"을 권하는 내용도 있고, p92에는 "G2로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에 눈을 돌려 보라는 권유도 있습니다. 물론 투자건 수집이건 거액을 들여 물품을 소장하는 최종의 선택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겠습니다. 사실 이런 투자의 원칙은 주식이건 코인이건 어느 분야에도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더 큰 보람을 느끼려면 시장에서 이미 거래가 활발해진 작가들보다는 신진기예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p132)." 책에서는 "그런 수집가야말로 메세나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다"고도 하는데, 사실 이처럼 일찍 그 가치를 발굴할 줄 아는 수집가는 투자자로서도 크게 성공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p109 등 책의 여러 군데에서 자신을 "예술경영학자"로 규정합니다. 예술가가 경영의 자질까지 갖추기는 쉽지 않으나, 수집가가 예술 감식의 안목과 경영의 재능을 두루 갖추는 건 오히려 보편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잠재된 그 무엇의 장래 가치를 통찰하는 안목, 또 하나의 대상을 두고 온갖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enthusiasm)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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