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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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언제나 마피아가 등장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폭력을 미화하거나 떠받드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깡패, 해결사, 더 큰 폭력으로부터의 보호자 역할은 사실 필요악이라서 아주 근절을 하질 못합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도저히 조직 폭력배들의 등쌀로부터 배겨낼 방법이 없다고 시민들이 아우성치고서야 비로소 공권력 차원의 단속이 이뤄졌는데 이 역시 FBI는 1960년대까지 마피아라는 거대 조직의 존재를 부정하고 들다가 꼼짝 못할 증거가 발견되고서야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체제가 어느 정도 용납하거나 조장했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마피아는 역사가 매우 깊으면서도 구조적 뿌리가 튼튼한데,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에까지 두 갈래로 번성하여 서로를 먹여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 여주 라우라는 어느 마피아 가문의 젊은 후계자 마시모(이름과 캐릭터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에게 사실상 감금, abuse를 당하는 처지인데, 그렇다고 뭐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범죄자에게 심정적으로 완전 동조하는 건 아니고 진취적이고 똑똑한 여성답게 상황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키려 분투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독자로서의 큰 재미이나, 사실 읽으면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라우라가 마시모(사실상 남주)에게 너무도 크게, 치명적으로 매혹당하는 점이 객관적으로(?) 봐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라우라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스펙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직장에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해 보이는 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작중에서 스스로의 표현으로 그리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 마시모는 비록 범죄자의 추악한 가문이라고는 하나 어려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랐으며, 이 흔적이 그 화려한 외모와 호방한 스타일에 그대로 남겨졌으니 뭐 나름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런 남자에게 혹하는 여자들을 보면... 저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골빈" 타입들이 많았는데, 라우라 같은 여자가 그런 감정에 빠져든다는 건 사실 좀 그랬습니다. 물론 (거듭되는 말이지만) 라우라는 매우 똑똑한 여성이므로 전적으로 상황에 매몰되지는 않습니다.

p65에는 마시모의 대사 중에 "이것은 제안이 아니야, 넌 거부할 수 없어."라는 게 나오는데, 이거는 1971년작 미국 영화 <대부>에의 오마주이겠습니다. 그 영화에는 a proposal that you can't refuse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너무 좋아서 거부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폭력과 강요에 의한 것이므로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역설성, 반어성, 중의성이 재미있어서 큰 인기를 끈 표현인데 사실 문자 그대로 강요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면 그건 이미 "제안"이 아니죠. 마시모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p79에 "파미글리아"라고 나오는데 이탈리아어이므로 비음으로 발음되어 "파밀리아"가 맞겠습니다.

만약에, 딱히 내세울 것도 없고 현재의 삶이 팍팍한 젊은 여성이라면 차라리 확 돈 많고 젊은 깡패한테 납치라도 당해서 당장 궁한 처지는 모면하고 기깔나게 살았으면 하는, 일종의 판타지를 잠시나마 가질 만도 합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런 소설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탈리아 깡패와 치명적인 운명에 빠져드는, 유럽의 먼 변방 폴란드 출신 젊은 여성의 사연! ㅎㅎ 남자가 읽어도 재미있었네요. 약간 19금 묘사가 자주 나오니 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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