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내과 의사입니다
이정호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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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은 단연 의사입니다. 의사라고하면 누구나 우러러보며, "결혼 시장(상당히 어폐가 큽니다만 이 또한 현실입니다)"에서 특등 대우를 받는 게 의과 대학을 다니거나 재학 중인 젊은이들입니다. 의사의 자녀라고 하면 일단 가문의 배경으로 최상급의 존중을 받는 편입니다. 이런 신분상의 리스펙트는 돈으로 함부로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이 책은 현업의 내과 의사이시며,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연로한 어르신들을 위해 애 쓰시는 이정호 선생님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내과의사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진솔하고도 심각한 이야기를 펼쳐 놓고 계십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 종일 천태만상의 환자를 진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만 의사가 일단 되고 나서 치르는 과업 역시 얼마나 지난한지에 대해 다들 공감합니다. 개업의로서의 고충 역시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주위 친지 중에 의사가 있다면 잘 알 것입니다.

저자께서는 아주 엄격한 가풍 하에 자라신 듯합니다. 할아버님께서 하루마다 행하곤 하셨던 검열은 가히 군대내무반의 그것을 방불케 했나 봅니다(p46). 조부님께선 그 당시에만 있던 제도로 "공의(公醫)" 신분이셨는데(p31) 이처럼 이 책에는 현대 한국을 사는 우리들이 잘 모를 만한 생소한 이름이나 직역, 제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본디 우리 속언에는 "의술은 인술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이들은 극히 드문데, 저자님의 조부님이야말로 손에 꼽을 만한, "의술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활인지불" 같은 분이 아니셨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군대식의 엄격한 훈육도,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장차 자라나려면 자신만의 이기적이고 초보적인 욕구를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 하에서 나온 게 아니었겠나 짐작합니다. 요즘은 이런 훈육이 너무 드물어서 갖가지 사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지 생각도 해 봅니다.

"자녀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스스로 공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p91) 간단하고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제 생각에도 스스로 책을 펼치고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만큼 뜻 깊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제로 겪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지입니다. 물론 예술작품을 두루 감상하고 건전한 감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며, 합당한 운동을 적절히 행하여 신체가 고루 발달하고 건강을 갖추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진정 쓸모 있고 공동체 성원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역시 공부와 학식이 중요합니다. 이 책에는 오로지 의술 한 길을 파며 배움과 깨달음의 희열과 보람을 온 몸으로 체득한, 실로 대단하신 의인의 인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호남의 고고한 선비, 학자의 모습을 엿보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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