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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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 대통령은 육사 문지기 출신"이라는 말이, 그를 몹시 싫어했던 대중 사이에서 희화화의 수단으로 유행하곤 했다고 전합니다. 육군사관학교의 방호원이 아니라, 그 학교의 축구부에서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맡은 게 팩트인데도 말입니다. 저 농담 속에는 은근 문지기라는 직종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사실은 들어 있으며, 백범께서 청년 시절 상해의 임정을 찾아갔을 때도 "문지기 역할이라도 맡겨 주십사" 요청했던 걸 보면 그 시절에도 해당 직역에 높은 평가가 이뤄지지는 않았던 사정이 약간은 짐작됩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겠습니까? 서양 관용어구에는 "야만족이 문 앞까지 침략해 들어왔다"는 게 있는데, 문 앞이 아니라 원래 적은 먼 발치에서 미리 격퇴를 해야 나와 내 재산,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 안전해집니다. 문 앞까지 적이 밀려왔다면 벌써 위험의 8,9 할은 현실이 된 셈인데, 만약 문에서도 적을 못 쫓아낸다면 이미 운명은 끝난 것입니다. 문지기라는 소중한 직책의 중요성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 우리가 실감을 그저 못하는 중일 뿐입니다.

저자 권문현 선생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6년 근무하고 이미 정년을 마친 분입니다. 그런데도 현업에서 은퇴 않으시고 다시 콘래드로 옮겨 이번에는 지배인으로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가히 한국 호텔업계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하며, 호텔리어의 모범이자 스승이라고 하겠습니다. 호텔의 "문지기"라면 사실 말이 문지기이지, 이모저모로 돌보아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죠. 또, 우리가 저기 강터의 JW 맬메리어트 같은 곳에 가 봐도 알 수 있듯, 호텔의 얼굴과도 같은 직역이 바로 권 선생 같은 분들입니다. 도어맨은 그저 문 열고 닫는 사람이 아니라, 초특급 호텔의 최전선에 서서 "우리 호텔은 이러한 곳입니다"를 간단한 표정, 제스처, 기품, 위엄, 친절함 등으로 표상하는 직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면 저절로 달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네요. "어떤 이들은 이 직업을 감정 노동자라고 하지만 항상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항상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분이라면, 그 웃음이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웃음이란 뜻입니다. 자신의 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일의 파급 효과가 또한 어떠하며, 그 일이 어떠어떠한 이들에게 긍정 부정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 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이런 반응이 가능합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웃음을 짓는다는 건 그저 허공에 대고 웃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직역상 사람들에 대고 그 눈을 보고 웃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즉 그 순간에 (위에서 말한 대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웃음이 되려면, 사람 사람의 특징과 내심과 수양의 정도와 그 사람의 행복한 정도가 가늠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숱한 사람들을 접하고 또 접한 분이라면, 사람을 한번 보기만 해도 그 내공과 선함과 직분과 사회적 위상이 바로 감 잡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달인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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