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세계경영이 있습니다 - 가장 먼저 가장 멀리 해외로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 2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엮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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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이며, 코로나 진단키트를 전 지구에 수출하는 나라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이런 이른 시기부터 그 보는 시야를 세계로 넓힐 것을 강조하며, 대담하고 창의적인 발상과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영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대우그룹의 창업자 김우중씨입니다(창업 자체는 1960년대로서 훨씬 이른 시기). 1980년대 후반이면 아마 청소년들 사이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읽힐 무렵입니다. 그 즈음 대우그룹은 (이 책에서 보듯이) 세계 곳곳에 지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세워 현지인을 고용하며 "대우"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릴 시절입니다.

"대우맨"들은 그 당시 특히 소속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창업자의 신화적인 행적이 널리 알려졌지만, 제 생각에 대우는 창업자뿐 아니라 그가 거두어 아끼고 키웠던 휘하 사장급 인물들도 그에 준하는 유명세를 탔던 기업인데, 다른 대기업에서는 이런 예가 비교적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삼성에서도 진 모 씨, 현대에서는 이 모 씨(이분이 훨씬 선배지만) 등이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 생각에 그 비결은, 대우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대담하고 어떤 격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사고를 회장부터가 독려(p29)한다든가 하는 게, 특히 삼성 같은 곳이라면 좀 찾아보기 힘들겠죠. 현대도 오너의 그 숨막힐 듯한 카리스마 때문에 자유로운 행동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카길이나 더나번트 같은 원면 메이저가 된다는 꿈을 꾸었다..." 이동근 대화아이앤씨 상무의 회고인데, 역시 저는 이 역시 그 당시(저자가 회고하는 1990년대 초중반) 다른 대기업에서는 쉽사리 갖기 힘든 포부나 다짐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원면 수출입의 경우 더 이상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론 대우가 갑자기 그룹 해체가 된 까닭도 있겠으나, 그간 산업 구조가 크게 바뀐 까닭도 있겠죠. 또 당시에는 대학생들 사이에 MBA 코스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미시간大에서 수료 중이던 저자를 비롯한 여러 대우맨들에게 김 회장이 끝까지 지원을 약속한 점(p28)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 역시 다른 회사였다면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이었을 겁니다.

수단은 현재 남부의 남수단이 독립한 상태지만 한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던 나라였죠. 차백성 필자는 이미 2000년에 퇴직한, 앞의 이동근 필자와는 세대가 다른 분입니다. 책의 특징 중 하나는 필자들이, 자신들이 한창 젊은 열정을 불태우던 시절의 사진을 골라 책에 실었다는 건데, 역시 상사맨들이라 스타일이 깔끔하고 댄디하다는 사실입니다(그 당시 기준으로 ㅎ). 현지인과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라는 주문은 대우뿐은 아니고, 당시 중동에 진출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리 방침을 정해 사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현대 같은 경우 어느 책에 "가서, OOO고 OOO라"란 말도 있었는데 표현이 다소 과격해서 전에 읽던 중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아마 1980년대를 산 어른들 같으면 여행가 "김찬삼씨"를 잘 알텐데 이 책에도 그분 이름이 나옵니다. 당시에는 한국인 여행가가 드물었기 때문이죠(해외 여행 자체가 금지된 시절). 차 필자는 현재 그 김찬삼 씨처럼 여행작가로서의 삶을 사시는 듯합니다. 필자는 또한 "나는 학창 시절 그리 성적이 좋지 못했으나, 호기심은 남들에 결코 못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이런 분들도 기꺼이 품고 그 장점을 살려 주는 게 바로 대우만의 독특한 문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우가 1980년대 말에 동유럽에 진출했던 건 널리 알려졌으나, 프랑스에도 현지 공장을 두었던 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유재활 필자는 당시 로렌 지방에서 근무했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죠. 프랑스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그곳만의 독특한 노조 문화도 하나의 장벽이었을 텐데, 글에서는 그런 부분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언급이 어렵다는 건 대우가 현지인 노조와 아주 잘 융화했다는 뜻도 됩니다. 몇 년 전에도 미국 월풀이 LG와 삼성에 반덤핑 제소를 했습니다만 결국 이들 기업이 현명하게 위기를 넘겼듯이, 1990년대 초에 대우도 프랑스에서 비슷한 곤경을 겪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2003년에 프랑스 대우 공장이 문을 닫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그동안 애써 쌓아온 현장의 암묵지가 묻혀 버리는 게 안타깝죠(p63. 또 저 앞 p29).

대우하면 또 1980년대에는 VTR이 유명한데, 기기뿐 아니라 컨텐츠를 담은 테이프도 유명했죠. 현재 OCN이란 채널이 있지만, 이게 1990년대 중반에는 DCN이었고 이때 D가 대우의 약자입니다(p77). 그 이야기가 p66 이하에 나오는 우형동 대표의 사연입니다. 재미있는 건  HBO가 이들 대우맨들에게 친절히 사업 분야의 특징이라든가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제가 눈여겨 본 건 이 케이블 채널 설립 과정이 민간 주도가 아니라 1990년대 초 정부가 정책 가이드라인을 먼저 내어놓고 우 저자 같은 분이 나중에 그에서 구체적인 착상을 얻어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그때와는 크게 달라져 민간에서 무엇이든 먼저 시도가 이뤄지죠.

중국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시장이지만 대우를 비롯하여 한국의 대기업들은 당시 덩샤오핑이 갓 개방을 시작했을 때 이미 중국에 열심히들 진출했습니다. 책에는 이미 1987년에 푸저우에 진출했던 대우 이야기(p96)가 나오네요. "진짜 영업맨은 SKY출신도 아니고 MBA출신도 아니다. 오로지 '들이대' 출신이다.(p99)" 바로 이게 바로 대우 정신입니다.

대우는 영업이나 무역, 제조 분야만 있는 게 아니라 금융 섹터도 강했습니다. 한국에서 몇 개 안 되는 대형 IB 중에 "미래에셋대우"가 있는데 박현주씨의 미래에셋도 물론 굴지의 업체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뒤의 "대우(증권)"을 잊으면 안 되죠. "경제와 산업이 몸이라면 금융은 피가 되는 것이다(p105)." 사실 대우는 차입경영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역으로 그만큼 자금 조달 능력이 탁월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증권사관학교"라는 말도 나옵니다(p106).가치투자의 철학으로 지금도 전설로 꼽히는 템플턴 경을 직접 만나기도 하셨는데, 책에도 잘 나오지만 영국은 특히 금융가라는 게 일류 학교를 나와 인맥으로 엮이지 않으면 발도 못 붙이는 풍조로 유명하죠. 이런 곳에서 업적을 이룬 구자삼 필자 같은 분의 역량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단, 책에도 나오지만 대우증권은 본래 대우 계열사는 아니었고 삼보증권을 대우가 나중에 인수한 거죠. 대우는 본래 이처럼 인수해서 경영하는 계열사가 좀 많았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현대중공업이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와 주식시장이 크게 들썩였다가 진정되었습니다. 두산인프아코어가 (현재 모기업인 두산이 크게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알짜기업임이 다시 확인된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 두산인픙라코어, 또 공작기계 등이 원래 대우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1970년대에 정부의 권유(p122)로 대우가 인수한 기업이지만 말입니다.

김우중 창업주가 말년을 베트남에서 보낼 만큼, 베트남과 대우는 매우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p145에 보면 "베트남의 자원, 토지는 결국 베트남인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김 회장의 말이 나오는데, 이런 정직한 철학이 있었기에 베트남에서 대우가 그리 큰 신망을 얻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GYBM은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듯 대우경영 철학의 정수인데(영어학원이 아닙니다) p151에도 다시 이 말이 나오네요. p13 머리말 중에 보면 신장섭 국립싱가포르대학(한국의 서울대를 능가하는 명문대죠) 교수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책좋사 카페에도 이 신 교수와 김 창업자의 대담을 다룬 책이 2014년에 이벤트로 나온 적 있습니다. p400 이후에, 대우의 세계 경영 정신을 현재의 청년들에게도 가르치는 GYBM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책 맨 앞 이동근 필자의 글에서도 주무대였는데 p152 이하의 김상태 필자는 그분보다 몇 년 연상이지만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는 몇 년 후의 사연이고, 분야도 1차 산업이 아니라 IT로 매우 다릅니다. 막심, 비올라, 이고르 등 여러 이름이 나오는데 우즈벡은 구 소련의 영향력이 강해서 이름들이 이렇습니다. 며칠 전 부산에서 패싸움으로 뉴스가 난 "고려인"들도 대부분 여기서 온 사람들이죠. "미스터 킴은 나의 스승입니다." 이처럼 대우맨들은 현지인과 참 잘 융화하고, 모두가 윈윈하는 사업 패턴과 성과 달성에 능합니다.

"처음 듣는 말과 글을 익히며 잘 적응해 준 아이들이 무척 고맙고 대견했다. ... 그때는 그것이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가족 모두의 워라밸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도 가슴에 이슬이 맺힌다(p167)." 이처럼 대우맨들의 회고에는 어떤 비정함, 각박함이 없고 한결같이 인간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책 말고) 생산직 근로자들의 추억에도 대우맨이라는 회고에 반드시 모종의 따뜻한 자긍심이 담겨 있습니다.

"자율권을 존중하고 도전의식을 북돋는 기업 문화는 때때로 기적 같은 일을 많이 만들어내었다(p211)." 조봉호 두인코 부회장의 회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벨기에에 거점을 구축한 그는, 점-선-면의 전략 구상에 따라 차근히 현지를 공략합니다. 그는 또한 "오너나 경영자처럼 장기 변화는 모르지만, 중단기 전략에 관해서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며 자긍심을 표현합니다. (당시) 젊었던 사원이 이 정도로나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역시 대우만의 기업 문화 강점입니다.

유태현 필자도 저 앞의 차백성씨와 비슷하게 해외 건설 파트에서 근무하신 분인데 "당시 너무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월급을 많이 받으려면 해외 현장 근무를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중동 건설은 익히 잘 알아도, 저 먼 중남미 에콰도르 키토에까지 한국인들이 진출했었나 싶은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때 공사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중단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실무에 대해 크게 배운 바가 많아 보람이 있었다는 회고가 인상적입니다. 이후 이분은 (우리가 잘 아는) 사우디, 리비아 등으로 다시 현장 근무를 합니다.

대우세계경영 하면 바로 폴란드가 생각나죠. 현지인들에게는 "대우"라는 발음도 어렵고 DAEWOO라는 철자는 더 어려운데 오히려 이걸 역이용해서 TV 광고를 만들어 동네 꼬마들까지 "대-우-대-우"를 중얼거리게 한 일화가 아주 유명합니다. 대우는 비교적 사원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문화가 잘 알려져 있는데, 권오정 과장(필자)에게 당시 현지 CEO였던 S사장님은 굉장히 무섭게 대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상무께서 찾아와 달래 주었다는 사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기업에선 좀처럼보기 어려운 모습 아니겠습니까.

"대우는 기술력 측면에선 삼성에 버금가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메이텍이 가져갈 수익성도 좋을 것이다.(p276)" 인천 제물포고를 졸업한 전영석 필자는 특히 대우전자가 어려울 시절 맹활약한 분입니다. ODM이 OEM과 어떻게 다른지도 나오는데, 생산자가 설계까지 책임지는 게 ODM이며, 금형 기술 수준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이후 동부를 거쳐 위니아에 매각되었는데, 필자의 말씀은 "큰 책임감을 느낀다"이지만 저는 독자로서 이 대목을 읽으며, 모기업이 공중분해되는 와중에도 이처럼 생명력을 (현재에까지) 이어가는 그 놀라운 흐름에 경의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부터, 모르는 분야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정신을 강조하는 "후츠파" 이념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낯선 히브리어를 쓸 게 아니라, 이미 1970년대부터 적극적 도전 정신을 내세우고 이런 창업자의 DNA를 임직원에게 보급한 대우의 멋진 사례를 먼저 들어도 좋겠습니다. p186에는 명품 고가 자동차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마티즈를 판 최안수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패기와 도전 정신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청년들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가 아니라 벤처 창업을 독려하는 나라가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 이미 1960년대부터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김우중의 대우 정신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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