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래보고서 2035-2055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6월
평점 :
예약주문


미래를 예측하는 건 역사상 언제나 우리 인류에게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앞으로 발생할 일을 정확히 내다보는 사람은 집단의 존경을 받았고, 미럐 예측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진화를 촉진했습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스케일의 위기라 해도 발생 시점과 진로를 정확히 예측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또 성공적으로 그래 왔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번영을 누리며 살 고 있는 거죠.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그렇지 않은 이들도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연 이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근심이지만, 설령 극복이 된다 해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never be the same)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특별한 다른 전략이 필요한지도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뜩이나 한국 독자들에게 그간 큰 도움을 줘 온 이 시리즈가, 이런 시국에 더 반갑고 더 각별한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변하지 않은 질서가 무너지다(p67)." 사실 그 이전에도 예컨대 30년 전 소련이 붕괴했다든가, 12년 전 금융위기로 미국의 위상에 큰 손상이 생겼다든가 하는 일로 기성 질서는 심상치 않은 요동을 맞아 왔습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생겼고, 이들 나라가 세계를 향해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심지어 자국의 사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점을 특히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은 (진짜 내막이 어떠했든 간에) 뭐 엄청난 희생을 통해 초기에 사태의 확산을 막았다느니, 현재 확고하게 사태를 통제하고 있다느니 하며 적어도 자국 내 리더십이 선명이 작동 중임을 대외적으로 선전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의 헤게모니가 바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세계사는 이보다 더 어이없어 보였던 사소한 계기로도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던 사례가 드물지만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또 그 결과가 인류에 행운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도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통제의 시도로 그 신뢰가 떨어졌다"며 중국을 비판하는데 일종의 중립 기어 박기로 보입니다.

큰 시련이 닥치면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현명한 대처를 보였는지(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지표를 디디고 서 있지도 못하겠죠)를 참고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도 유익한 대처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가, 저자들이 그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에 기대어 과거의 유용한 사례를 언제나 적절히 리뷰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잘 알려진 예와 그렇지 않은 예를 두루 섞어가며 독자들에게 설시합니다. 이런 건 그저 이야기로만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책은 특히 전반에 걸쳐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의 연구 결과와 진단을 광범위하게 인용합니다. "결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p80)"도 특히 이분이 한 언급입니다. 대체로 이 매츨이란 분은 (1990년대부터 지속되어 온) 세계화 트렌드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 훨씬 이전에 설립된 각종 국제 기구의 효율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긍정적 역할도 있다며 부분 긍정의 스탠스를 취합니다.

흥미롭게도 예전 공산주의 이론가인 그람시는 "구질서는 무너져 가나 신질서는 아직도 태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는 괴물의 시간"이라 했다는데, 이 말을 반 세기가 지난 지금 메츻이 다시 인용(p81)합니다. 메츨은 "우리가 이 싸움에 가져 가는 도구는,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고 하는데, 책의 저자들도 이 점에 공명합니다. 예전 같으면 전파, 내면화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을지 모르는 지식과 정보 들이 지금은 발생 후 수 초만에 공유되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지금이 "우리가 함께 모일 시간(p86. 메츨의 말 재인용)"이며, 어느 때보다도 높은 문해율, 강한 인맥(=네트워크), 성취 동기 등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가뜩이나 무의미한 직업일수록 급여가 높았던 풍조가,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해할 이들이 많겠는데, 금융인이니 광고업자니 컨설턴트니 하는 직업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직업이 아니며, 농부, 공장 노동자, 쓰레기 청소부 등은 그것이 없어질 시 개인과 공동체가 즉시 생존 위협을 맞닥뜨리게 될 직업이라고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체계는 정반대로 책정되었죠). 물론 사회에 이런 양극단의 분류만 있는 건 아니며 그 중간지대도 폭 넓게 존재할 것입니다. 또, 저 "무의미한 직종"이 과연 의미가 없기만 하겠냐며 저자들과 (저자들이 인용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무엇이 본질인지"에 대한 성찰은 한번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죠.

일찍부터 애덤 스미스 같은 이들은 가치의 양분화를 지적하며, 사용가치와 교환 가치가 따로 노는 현실의 모순을 짚었습니다. 이 관점을 "교환 가치 중심이 된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시킨 이들도 많으며, 저자들이 이 책에서 취하는 문명 성찰 스탠스는 주로 이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영국, 스페인, 덴마크 등은 "국가 자본주의"의 예로 파악하며, 그 예를 명시적으로 들지는 않으나(중국이라고 명언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국가 사회주의"의 패턴도 거명하는데, 단 후자의 경우 권위주의를 내세우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합니다. 이 둘(혹은, 그에서 비롯한 현실)이, "두려움에 대한 근거 못지 않게 희망의 근거도 남겨 놓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p102)

위기는 물론 많은 구성원들을 불확실성 속에 몰아넣지만,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게 하고 낡은 체제의 유효성에 대해 집단적 회의를 부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도 수행합니다. 자급자족 산업이 부상하고(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 책은 교환가치를 대체로 부정하고 사용가치 중심 사회로 복귀하자는 쪽입니다) 태양광 발전 도입이 촉진되며, 드론 기술의 발전, 기본 소득 지급 확산, 원격 산업, 분산형 프로토콜(인터넷 등에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 코로나 베이비 붐, 노 코드 웹 플랫폼 등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의 경우라면 태양광 도입은 이미...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어느 부자의 이야기가 엊그제 기사로 나왔는데, 저자들이 벌써 이 책에서 "외로움에 대한 재평가"를 거론했네요. 그래서 로봇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인간이 그리움과 정을 무생물에게까지 투사함에 따라 환경 보호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진단, 예측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습니다.

스마트 시티 테크놀로지는 이미 수 년, 십 수 년 전부터 논의가 이뤄졌고 발달도 빨라지는 경향입니다. 특히 책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를 모범 사례로 듭니다. "개인 정보는 보호하고 위치는 추적(p185)"한다지만 이런 분별과 자제가 어느 단계까지 잘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적지 않죠. 

"과학이 매번 1년씩 당신의 삶을 연장한다." 최근 장수 시너지 세포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가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제 노화는 치유 가능한 질병 정도 수준으로 여겨지기 시작(p214)했으며, 노화가 만병을 초래하는 만큼 노화 하나를 잘 공략하여 만병을 다스리는 식의 획기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또 이제 질병의 치유보다는 빅데이터나 IoT를 통해 예방의 관점에서 의료 서비스가 이뤄지며, (이 책 전체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원격 진료도 관련 규제의 벽을 넘어 전향적으로 접근됩니다. 과연 그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더 나이 먹기 전에(이 책 p283에서는 "그저 20년만 더 살라"고도 합니다).

트랜스휴먼, 즉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없어지는 건 예전 사이버네틱스에서도 널리 암시되었고 십 수 년 전 커즈와일 같은 사람이 대담하고 구체적인 가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기계와 인간의 작동기제와 언어가 다르며, 칩 등을 인간의 신체에 심을 때 부작용이나 위화감 없이 얼마나 일체적으로 작동하겠냐에 있겠는데, 이른바 신경 인터페이스 이슈 역시 최근에 큰 발전을 보았다고 하는군요.

단백질 접힘 현상은 "슈퍼컴퓨터로도 에측할 수 없"기에(p281) 연구에 장애를 더합니다. 요즘은 항암제도 표적형이 대세이며, 정확한 지점에, 적시에, 해당 물질을 전달할 수 있다면 모든 과제가 풀리는 셈입니다. 코로나 19 백신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도 결국 이 이슈와 연관이 있다는군요.

항생제의 발견은 인류에 큰 축복이었지만 이는 우연의 산물이었고,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은 사실 이 정도를 큰 난관으로 여기지 않는 듯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니 인류는 성급한 승전보를 울린 셈입니다. 그러나 빅데이터, 또 이를 이용한 인공지능이 (개발자들도 채 예측 못한 방법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결국에 더 맞춤형의 효과를 내면서 부작용도 적은 물질이 나오리라고들 본답니다.

3D 프린터의 개발로 만인 생산자의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이 예전부터 나왔는데, 이제는 이 장비가 음식도 "인쇄"한다는군요. 농업은 이를 통해 더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하며 동시에 친환경의 과제까지 달성합니다. 비행 자동차는 교통 정체와 환경 파괴라는 악재를 동시에 돌파하며, 저자들은 "그저 규모의 문제가 남았을 뿐 이미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다(p333)"고까지 말합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집속과 이용의 시대 도래"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p381). 이것이 소유 패턴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자동차 소유를 기피하고 공유 트렌드를 이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래는 "구독(,subscription) 경제"가 될 것이라고 하며, 넷플릭스는 이의 서막을 열었고, 로봇 역시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일부에게는 혜택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에는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생계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이뤄지며, 일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로 변화한다고도 합니다(p385). pp.391~495에서는 새로 탄생하는 일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들 일자리들이 과거 인간소외를 낳았던 고강도의 비인간적인 노동이 아닌, 자아 구현에 기여하는, 보다 인간적인 일거리가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비건인들이 늘어나는 건 체질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육식을 위해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가혹한 처우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하겠죠, 그래서 최근에는 배양육이라 하여, 고기의 특정 부위를 먹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지 않는 분야가 발달한다고 합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고기"인 셈인데, 어느 정도나 인간의 식감과 취향을 만족시킬지는 두고 볼 일이며 GMO 이슈는 어떻게 피해갈지도 관심사입니다.

양자컴퓨터는 인류의 오랜 불가능성 한계였던 "동시에 두 곳에 존재" 이슈를 극복하게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건 "무엇이 인간 존재와 본성의 실체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배신하지 않게 돕느냐"의 고민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술과 인도주의는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발전했고, 이 둘의 괴리가 모든 비극을 낳았습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소외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이 영역의 상호 통합을 지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