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 주식.채권에서 M&A.LBO까지 단숨에 이해되는 금융의 논리
김지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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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 하면 사실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수학, 통계 쪽이라면 고급과정에서 그 배우는 학생이 머리가 딸려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죠. 반면 상업(예금)/투자은행이다 모기지다 OTT다 선물이다 하는 건 그저 제도에 대한 설명일 뿐인데, 가르치는 이들의 설명이 부실해서 학생들이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가르치는 사람의 잘못인데, 한국에 없는 제도를 억지로, 경험도 못 해 본 걸 자기 식대로 이해해서 가르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죠. 그래서 이런 항목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이에게 배워야 하며, 가르치는 이가 좋은 커리어까지 갖춘 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예금(상업)/투자은행의 구분은 전형적인 교과서식 앙상한 설명으로 끝나는 항목인데, 그 중에서도 대체 투자은행이 뭔지는 대부분이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의 증권회사와 비슷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이 "(그것은) 잘못된 것(p20)"이라고 아주 콕 집어서 바로잡습니다. 후자는 듣는 사람도 이상하게 느끼는 게, 아니 그럼 왜 구태여 그걸 투자은행이라고 부르며, 왜 한국에는 굳이 증권회사라고 하는 게 발달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을 평소에 가져 온 이들이라면, 아마 이 책 한 권 읽고 싹 해결되지 싶습니다.

일단 투자은행은, 한국에서도 몇 군데의 증권회사가 약간 포맷을 달리하여 이제 명색이 "투자은행"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특히 증권 섹터에서, 보다 제고된 전문성을 발휘하리라는 기대인데 우리 일반 소비자들은 본격 가동된 투자은행이 (원래는) 뭘 하기로 된 곳이었는지, 나아가 선진 금융이 나래를 펴면 현재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겠으며 바뀐 환경에서 나의 투자 전략이 어떤 변신을 꾀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적어도 저는 평소에 갖던 의문이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주식이란 무엇이냐? 보통 한국인들은 "도박 비슷한 것.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특히 p28에서, 이런 가치투영적 관점, 나아가 무슨 선악을 가르는 듯한 이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주식이란 그저, "소유권에 대한 지분"을 표창하는 게 원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증권 형태로 되어 있으니 유통이 자유롭고, 유통이 자유로운 건 그저 부차적인 모습일 뿐인데 이걸 메인으로 착각해서 "도박꾼들의 장난감" 같은 누명을 씌우는 거죠.

그러면 회사의 지분 소유에 중점을 두고, 가치 있는 회사에 내 돈을 투자하여 적당 시기에 배당을 받게 해 주는 수단인가. 물론 그렇죠. 책에서도 이와 같은 원칙론, 원래의 모습에 포커스를 둡니다. 그런데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의 부차적 기능인 "투자 수단,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모습도 덩달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 책 제목을 보죠. "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뭘 보라는 걸까요? 주식의 실체? 혹은 성공적인 투자 방법? 투자 섹터의 작동 원리? 그 모두입니다. 투자은행이 본래 금융의 본고장에서는 증권 발행과 유통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 투자 은행만 칼같이 정확히 이해해도 이 분야 전반에 걸친 눈이 새로 띈다는 소립니다.

어떤 사업자가 무슨 사업을 론칭한다, 혹은 이미 론칭된 사업을 보다 큰 덩치로 키운다, 이걸 위해서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다른 회사에 흡수되거나 흡수를 하거나, 아니면 일정한 비율로 합치거나 할 수 있겠죠. 투자은행은 이 모두에 간여하는 전문가들의 집단입니다. 특히 저자는 투자은행이 하는 일 중 "인수합병"을 강조합니다. 인수합병은 1990년대 이래 M&A라 하여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적어도 그 이름만큼은) 사항입니다.

왜 M&A가 그리 중요한가? 당사자(회사)끼리 일을 추진하면 본래의 목적이 잘 달성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잘 마무리되면 서로가 윈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세하게나마 자신만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신경전이 벌어지며, 이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으로 일이 틀어지기 쉽죠. 뭐 거기서 그치고 없던 일로 돌아가기나 하면 좋은데, 이 과정에서 상대 회사의 기밀이라도 누설되면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내다봤다면 "저 회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아예 일이 추진되지도 않을 수 있죠. 이건 당사자들에게도 손해이며, 신뢰가 구축되지 않아 바람직한 결과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빚어지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내 회사와 상대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작업은 애초에 당사자들끼리의 협상만으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중간에 나서야 하며, 그 실사(가치 측정)도 쌍방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기관의 사회적 공신력과 전문성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건설적 M&A가 잘 안 벌어지는 이유는 이런 명망 있는 투자은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이 과연, 어느 한쪽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불공정하게 일을 추진할 동기는 없을까? 경제학에서는 이를 모럴 해저드 이슈로 다루죠. 사실 모럴 해저드(함정)는 괜히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게 아니라서, 어떤 부패의 유인이 있으면 좀처럼 이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듯, "사회적으로 공신력 있는 투자은행"이 떡하니 있고 활발히 가동되어야 하는 겁니다. 투자은행에서 커리어를 키워 가는 스페셜리스트(예를 들면 이 책의 지은이 같은)는, 내가 어느 투자은행에 근무하며 이 (유명한) 거래를 성사 시킨 사람이다 라고 경력 사항을 만들어나갈 "유인"이 충분히 존재하며, 이런 유능하고 명예욕 넘치는 이들이 또한 기존 저명 투자회사의 평판을 계속 이어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건, 미국에서는 상업(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준별이 아주 엄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책에도 나오듯이, 1990년대 후반에 그 오래된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어, 한 기관이 투자은행과 상업(예금)은행 업무를 혹 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시기에 보험과 은행이 겸업 가능해지는 등 이른바 방카슈랑스가 등장하기도 했죠. 이 모든 추세는 특히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내세운 "규제 완화, 폐지"와 맞물려 급속하게 추진되었고 경제 활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짙기 마련이라, 2008년에는 이런 거품이 드디어 부실의 누적과 더불어 터져 버렸습니다. 글래스-스티걸 법이 오래 전에 제정된 취지는, 일반 서민의 저축을 취급하는 은행이 "위험성 다분한 기업 투자"에 나서면 결국 서민 살림, 나아가 국민 경제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결과였고,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어떤 과정을 통해 파국으로 치달았는지가 이 책에 소설처럼 아주 자세히 설명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한데, 책에는 이를 위해 파악해야 할 여러 개념들이 잘 설명됩니다. p186에서 저자도 재미있게 설명하듯, 아니 왜 "현금"이 회사 가치 파악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어려워할 이들이 있겠죠. 답은, "회사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집에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누가(은행이라든가) 실사를 왔는데, 집주인이 "내가 가진 현금이 이 정도요" 라며 금고를 보여 주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되겠죠(집에 저당권을 설정한다든가 할 때를 생각해 보면). 건물 자체, 혹은 회사 자체의 가치를 알아야 하니까요.

"비지배주주지분"도 별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회사 A가 자회사 B의 지분 70%를 갖고 있다면, B에게 비지배주주지분이란 30%가 되겠죠. 이때 A가 소유한 (B의) 70%는 당연히 회사 A의 것이지 B의 것이 아닙니다. 반면 30%야말로 B에 남겨진 온전한 가치죠. 이는 어느 국가가 연결회계 원칙을 채택하느냐 아니냐와는 무관하게, 그 회사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한다는 점에서 타당합니다. 이거는 사실 영어로 읽으면 아무 헷갈릴 게 없는데 한국어로 번역이 저리 되어서 이해에 혼란이 오는 겁니다. 이 저자의 잘못은 아니고 한국 학계의 관행이 그런 거죠.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분히 따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제 한국 고유의 특성보다는 이런 보편성에 모든 게 수렴해 가는 과정입니다. 여태 한국에 없던 "투자회사"의 개념을 속속 파악함으로써, 역으로 투자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 지평선을 통해 다져 나가는 게 이 책의 취지이겠습니다. 요즘은 거의 전 국민이 주식하는 세상인데, 금융깨나 잘 안다는 분들도 이 책으로 (말 그대로 투자은행의 관점에서 풀어낸 설명을 통해) 모르는 부분, 이해가 미진했던 부분을 명쾌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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