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 아들과 엄마의 17년 성장기
마쓰나가 다다시 지음, 황미숙 옮김, 한상민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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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속으로 낳은 아이가 혹 어디가 아프다면, 어머니 입장으로서는 그보다 더 큰 시련과 죄책감이 또 없을 터입니다. 그래서 아픈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모두 영웅이시며, 그런 시련을 용케 피해간 다른 이들에게 과연 생의 목적과 존엄이 어디에 있을지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하게 돕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생각 자체를 극복해야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고요.

"웃기도 하고 눈도 그럭저럭 마주칩니다!" 의사에게 반론을 가하는 엄마는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특별학교 교원)도 갖춘 분입니다. 그러나 비록 보통의 유형과 다를망정 의사는 그녀의 아이가 자폐증임은 확실하다며 가슴 아픈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엄마는 그러나 의기를 잃지 않고, 우리 소중한 아들에게 어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할지를 고민, 연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영웅은, 부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현실에 대해 결코 도피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특히 요즘 자주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 아이는 단지 특별할 뿐이다." 그래서 지적 장애가 있는 분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을 (패러림픽과 달리) 스페셜 올림픽이라고도 부르죠. 어떻습니까? 우리는 일상과 깊은 심리 속에, "특별하다"는 어의 중 과연 그런 뜻을 담고 생활합니까? 생각해 보면 정상인이라 자칭하는 우리 모두의 "정상성"은, 고작 유전자 배열의 우연적 장난 그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인간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의 재능을 두고는 "우연의 산물"이라 폄하하며, 반대로 이처럼 우리한테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이웃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을 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폄하 자체가 없어져야 하겠으나, 구태여 그런 부당한 폄하가 간신히 올바른 대상을 찾는다면 바로 저런 비뚤어진 심뽀의 소유자들이 그 목표 지점이겠습니다.

"우리 훈이가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런 자녀분을 둔 어머니들이 맨먼저 믿고 의지할 곳은 그런 특수 교육기관입니다. 무사시노히가시교육센터는 훈이가 그나마 주변에 조금 관심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했습니다(p87). 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세상이라는 게, 이 못된 세상이라는 게 특별한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배려, 아니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습니다. p107에는 천주교회의 어느 신도가 훈이에 대해 가정 교육을 똑바로 하라며 어머니에게 면박을 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교인이라면서 이런 한심한 처신을 하는 인간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이며, 동시에 일본식 친절과 예의라는 게 사실 그 한계가 뻔한 위선이기 쉽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했습니다. (좀 비약인가요?)

훈이는 자폐증세도 있지만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도 있는데 알레르기라는 게 결코 우습게 볼 질병이 아니죠. 여튼 이런 이중의 어려움 때문에 엄마는 훈이를 맡기고 교육할 만한 시설과 학교를 찾기가 더욱 힘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는 훈이보다 훨씬 몸이 아픈 아이들도 보게 되는데, 그를 통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도 특별한 상황이 있음을 확인하셨나 봅니다. 우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 텐데, 이 책에 나오는 가슴 아픈 사연은 그저 다른 세상 일일 뿐이더군요.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같은 의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질 필요가 있어요, 분명.

도호대학의료센터에서 엄마는 좀 다른 진단 결과를 듣게 됩니다. "훈이의 행동은 자폐의 집착이 아니라 강박성 장애인 것 같습니다(p147)." 그런데 세상 누구보다 훈이를 잘 이해하는 엄마였기에, 의사의 이런 진단은 금방 납득이 갔죠. 리스페달, 데프로멜 등을 처방 받았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훈이의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TV에서 인지행동요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고, 도쿄 대학 병원의 최고 권위자를 만나고서야 약물 치료가 아닌 대면 요법으로 효과를 봅니다. K 의사를 특별히 잘 따르는 훈이를 보고 엄마는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은, 아픈 아이들이 서로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마는 게 아니라, 정말 각각의 방법으로 힘든 투쟁을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증상 하나를 치료하고 호전시키면, 그대로 낫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증상 하나가 새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과잉교정의 일환이라고도 보이는데, 훈이가 자신이 새로 들인 습관을 엄마에게도 막 적용하려고 든 겁니다. 사실 어린 아기를 키울 때 말을 잘 안들어서 얼마나 엄마들이 고생을 합니까. 그 어린 심성이 몸이 커서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든 없든 그 아이를 키우며 엄마는 부모가 된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요즘 광고를 보며 "나를 엄마가 되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장면을 봤는데,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명언이 아닙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자체가 여간한 시련이 아닌데, 그걸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엄마들이란 영웅을 넘어 성인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치료에 대한 정보 공유가 좀 체계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아이를 그나마 좀 낫게 할 수 있는지 일일이 엄마가 발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게 더 막막해 보이더군요. 사회가 이런 특별한 아이들의 길 하나를 온전히 마련 못 한다면, 그 성원 모두가 사실 죄를 저지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의 존엄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의 평안과 권익도 결국 어느 순간에서는 침해되게 마련입니다. 무관심도 때로는 죄악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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