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로 변한 찰리 찰리 시리즈 3
샘 코프랜드 지음, 세라 혼 그림, 도현승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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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변한 찰리" 시리즈 중 세번째 권이라고 합니다. 저는 전작을 하나도 안 읽었지만 재미있게 이 책을 즐기는 데 전혀 지장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유쾌한 이야기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 코드가 따로 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전작 두 권을 안 읽은 독자들에게 은근 권유하는 광고성 멘트도 곳곳에 깔렸는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유머라서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이를테면 머릿말이라든가(티렉스로 변하는 게 제목인 2편에서 티렉스가 안 나와서 독자들이 항의편지 보내옴), p38의 각주에서 "이래도 전작을 읽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찰리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다른 동물(꼭 동물이라야만 하지만)로 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동물로 꼭 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이 셋째 권에서는 p27에 그 조건이 나오는데요. "...찰리는 다시 변신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느꼈다. 열정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겁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면서 웃음보가 터지면 그때 변신이 이뤄지고, 비슷한 조건 하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p18, 아침에 통학 버스를 타기 힘들어진 찰리는 파리로 변신합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고... 앞으로 날며 뒤가 보이니 신기하다"는 말이 있는데 360도 눈을 가진 파리니까 그렇겠죠?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은 파리 등 일부 곤충의 눈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겠네요. p13에는 "콘플레이크 흡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흡입이라는 단어를 안 쓸 곳에 써서 웃음을 자아내는 건 한국도 요즘 마찬가지고, 몇 페이지 뒤에 파리로 변하는 장면 때문에 더 웃겼습니다. 원어로는 뭐였는지 궁금합니다. p19에 파리의 습성이 각주를 통해 설명되는데 이 시리즈는 작가가 쓸데없이 끼어드는 각주들이 본문 이상으로 웃깁니다.

p20에 "맛있고 고소한 똥 스무디"라는 문구가 이 시리즈 전체를 대표하는 웃음 코드인 것 같습니다. 저 뒤 p173에서는 찰리가 선충으로 변하여 다시 똥맛을 보는데요. 이게 그냥 웃기는 상황 설정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자는 유익한 제안 같이도 보였습니다. 찰리의 숙적(?)인 딜런의 대변을 통해 선충 찰리는 밖으로 나오는데 동시에 사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여기서 저는 1999년작 <오스틴 파워>란 영화에서, 어떤 사람이 공중화장실 한 칸막이에 들어가 변기 안에 누가 빠진 걸 보고 거기서 나온 사람더러 "당신 뭘 먹었기에 (이 사람을 싼 거요)?"라고 놀라는 장면이 기억 났습니다(물론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p31에서 선생님이 "세 시까지 안 오면 사육사들에게 말해 악어 먹이로 던져 주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있는데 좀 심하다 싶었습니다. 뒤로 가서 p56를 보면 정말로 던져주지는 않더군요(당연하지!). 그런데... 이 소설은 독자들 웃으라고 터무니없는 장면이 나오다가, 나중에 이게 일종의 복선이 되어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아니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거나요). 찰리는 p54에서 변신 타이밍 잘못 잡아서 정말로 악어 먹이가 될 뻔하거든요.

p22, 딜런의 성냥갑 안에 잡혔던 찰리는 p40에서 사자를 괴롭히는 딜런을 보고 혼내 줘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런데 악어로 변한 찰리는 정말 악어의 본성을 발휘해서(p47) 딜런을 깨물려 드는데, 해도 되나, 안 되나 라며 바다악어 영혼과 사람 찰리의 영혼이 갈등하는군요. 저 앞에서도 아무 생각 없어지는 게 영락없는 파리로 되어감을 느낀다는 대목이 있고요. 만약 악어의 이빨로 딜런을 깨물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죠.

p184에 보면 "그런데도 네가 진정한 악당이야?"라며 딜런을 다그치는데 영화 등에서 악당이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다 털어놓는 클리셰의 패러디입니다. 찰리는 이처럼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딜런을 절대악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찰리는 왜 이렇게 딜런이 자신을 미워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후 오해를 푸는 과정이 나오고요. 아무리 나쁘게 보이는 아이라도, 무심결에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딜런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기특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가 뭘 먼저 잘못했는지는 꿈에도 생각 않고 그저 자기 감정 억울한 것만 중히 여겨 온갖 거짓말과 합리화를 일삼는 게 습관이 된 못난, 못된, 어처구니없는 어른들도 부지기수지요. 그에 비하면 이 동화에 나오는 어린이인 찰리, 심지어 딜런조차도 참 어른스럽습니다. p227에서 찰리는 딜런더러 "다시 친구하고 싶어."라고 하는데 아주 교훈적이네요.

이 작품은 곳곳에서 작품의 액자를 넘나들며 유머코드를 내뿜는데 p51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혼을 해고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 글자를 넣었다고 기분이 나빠져서랍니다. 그런데 몇 페이지는 코플랜드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사라 혼을 다시 오라고 청합니다.

한편, 악어로 변한 찰리를 빗자루로 쳐 가며 딜런을 구하려는 윈드 선생님은 참 용감하죠. 기자들이 몰려올 만도 합니다. 악어로 변한 찰리는 아마 "왜 선생님이, 나쁜 아이를 혼내려는 나를 오히려 혼내는 거지?"라며 갈등했을 만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는 거죠.

p69에는 "찰리의 온 세상은 산산조각났다"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님의 별거 때문입니다. p171에는 딜런의 뱃속에서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자 느닷 이혼하려는 부모를 떠올리며 다시 분노를 표출하는 찰리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불화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알 수 있습니다.

p75 각주에는 옥토퍼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작가는 "문어+고양이"로 이 단어를 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octo(8)+pussy(고양이 말고 다른 뜻)이 그 영화 제목 풀이로는 더 정설에 가까우며.... 아 뭐 여튼 작가는 자신이 이 드립을 못 치는 게 007 제임스 본드 영화가 선수를 쳐서라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이 셋째 권은 위대한 고츠비가 갑자기 사라진 게 중요 사건인데, 찰리의 친구들인 우건, 플로라 등이 마치 <코난>에서 어린이 탐정단처럼 활약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만화에서 아이들은 코난 정체를 모르지만, 여기서 친구들은 찰리의 사정을 훤히 알고, 찰리보다 훨씬 상황 파악이 빠르다는 겁니다. 딜런이 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 든다는 걸 독자보다도 더 빨리 알아 내죠. 반면 엄마는 찰리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도통 모르는데 대화를 엿듣다가(p113) "뭐가 네가 아니야?"라고 묻는 게 엄청 웃깁니다.

p132에는 드디어 펭귄 떼가 등장하여 "우리는 안 귀여워!"라고 외치는데 사실 펭귄은 전혀 귀엽거나 순수한 마인드를 가진 애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이 그리 감정을 투사할 뿐이죠. p222에는 "냉혹하고 잔인한 눈"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지 않나요? p135에는 "생선 먹는 것만 빼면 채식주의자"라고 하는데 그럼 채식주의자의 의의가 대체 뭐라는 건지요? p221에는 "펭귄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라고 하며 웃겨 줍니다(원문이 뭐였을지). "왜 도난이라고 할까? 훔쳐서 이불 밑에 숨기면 도란도란?(p136)" 같은 말도 우습습니다.

p158 각주에 보면 "선충은 눈이 없는데 어떻게 선충으로 변한 찰리가 뭘 보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며 누가 묻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서는 작가 스스로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내놓아 웃겨 줍니다. p202 에 "슈퍼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라며 드디어 매머드로 변하여 드디어 작가가 약속을 지키는 줄 알았는데(제목으로 낚기 그만)... 더 지켜볼 일이더군요. p205의 각주에서 애들이 서로 이마를 쳤다는 게 아니라고 일부러 설명하는 데서 빵터졌습니다. 작가는 "혹시나 해서" 설명해 봤다고 하네요. "윈드 선생님이 폭발했다. 귀에서 연기가 펄펄 나왔다.(p207)" 같은 문장도, 아이들의 감성에 잘 맞는 해학입니다.

p236의 각주에는 에필로그의 정의가 나오는데 일종의 자학 개그입니다. 바로 이런 게,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어른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유머 코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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