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미 에브리싱
캐서린 아이작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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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해야 세상에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들도 다 마찬가지지요. 사정이 있어서 엄마나 아빠 두 분 중 한 부모에 의해 양육되는 경우가 간혹 있어도, 여튼 태어날 때는 두 분이 모두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헤어짐은 성장기의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책임 있는 부모, 아니 제3자라고 해도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걸 방치할 사람은 없습니다. 남이라고 해도, 본래 이어져야 할 관계의 이음은 누구나 도우려고 합니다.

어제 반가운 뉴스가 하나 나왔습니다. 모든 세포를 (여태 겪어온 노화를 리셋하여) 어린이의 단계로 되돌리는 기술이 나왔다는 거죠. 세상에 나쁜 사람, 극악무도한 인간들도 많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은 오래오래 젊은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누구나 가집니다. 안타깝게도 엄마 제스는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려 아들과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서양은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관념이 서로 많이 다릅니다. 우리 상식으론 납득이 안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기도 하죠. "저렇게 아이를 방치하는 걸 보니 아주 비정한, 나쁜 부모인가 보다."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윌리엄의 아빠 애덤을 향헤서도 전 처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뭣 때문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쌩뚱맞지만 전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자신이 오래 못 살 걸 알고 아이를 위해 유학자금을 마련해 주고, 남편도 혹 정년퇴직 후 먹고살 거리가 막연할 까봐 상가 하나를 주선해 주는 등 죽기 전에 온갖 채비를 다 하는 과정을 다루죠(뒤에 상당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이 소설에 반전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상하던 대로, 잔잔히 마무리를 향해 달려갑니다(아니, 천천히 걸어간다고 해야...)

소설을 다 읽고 여러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아일랜드 남성 노감독이 만든 <로지(2018)>가 바로 떠올랐는데 영화 속의 로지나 이 소설 속의 제스나 조금 처지가 비슷합니다. 로지는 경제적인 면에선 제스보다 훨씬 열악하지만 대신 제스처럼 건강이 안 좋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스는 윌리엄 하나만 돌보면 되지만 로지는... 또 제스는 여튼 제 앞가림은 하는(저는 끝까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남편이 있고, 로지는 전혀 그렇지를 못하죠. 여튼 부모로서의 삶, 특히나 엄마의 삶은 "여성으로서의 삶"과 더불어 남자들이 상상 안 되는 어떤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모성애, 책임감 등을 넘어선 어떤 그 무엇이죠.

작가는 기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기자란 남의 삶을 자주 들여다볼 위치에 놓이는 직업이죠. 내가 어차피 살 날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다른 이(아무리 남편, 자식이라고 해도)들의 남겨진 삶을 위해 저렇게까지 많은 신경을 써야 할까? 이런 의문은, 의문만 가진다고 그에 대한 답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 처지에 놓여 봐야 (무려 소설 한 권 분량의) 이런 답이 나오기 마련인데, 작가 역량으로 이런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감상적이지 않을까, 최루성 진행 아닐까 지레 선입견 갖지 마시고, 적어도 "가족이 있는 분"이라면 주저 없이 펼쳐 읽어 보십시오. 아, 가족과 사이가 안 좋으시다고요? 그럼 정말로 읽어 봐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방치할 생각이십니까? 언제가 되었든 마무리는 지어야 할 문제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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