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 나의 삶이 너희들과 닮았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
황정미 지음 / 치읓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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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을 전공, 수많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넘어 '엄마'로서 함께헸다.(책날개 중)"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많이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넘어 "엄마"로까지 불린다는 건 그저 학습에의 도움을 주는 존재를 넘어 그들의 아픔과 고민에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자란 뜻이겠죠. 더군다나 선생님 본인 역시 아픔을 안고 살아오신 분으로서, 이 책 저자께선 한 사람 몫도 힘든 인생(우리는 누구나, 타인은커녕 우리 자신의 아픔도 온전히 감당하기 힘듭니다)을 두 사람 세 사람 몫을 살아내신 초인이라고 할 만합니다.

"생각이 깊거나 부모님과의 마찰이 있는 아이들은 나와의 관계가 싶어지면 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p57)." 바로 이처럼, 능력 있는 선생님들을 보면 아이들의 내면이 살짝 문을 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통에 성공하는 게 공통점입니다. 물론 아이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는 의지와 열린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고요. 하율이는 이 책 저자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나와 닮은 아이"인데, 또래가 읽지 않는(너무 어려워서) 책들을 읽고 공부를 등한히하는(?) 아이이며, 이 때문에 어머니와 자주 갈등을 빚습니다. 아니, 어쩌면 원인과 결과가 반대로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선생님은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어려운 책을 읽는 동기와 그만의 능력, 관심사는 무엇인지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합니다.

하율이는 왜 이런 행동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이 하율이와의 에피소드는 책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데, 선생님 역시 이 수업을 통해 아이의 마음과 대화하는 "차원이 다른 교사"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 챕터는 펼칠 때부터 독자인 저를 궁금하게 만들었는데, 이 까다로운 아이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선생님께 마음을 열게 될지 짐작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 읽어 보니 과연 어떤 사연이 있긴 했습니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이 책은 감동 수기로 술술 읽히기도 하지만 그를 넘어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미션을 결국 해 내는" 주인공(선생님)의 동선이 무척 궁금해지는 진행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숙제, 과업을 신실하게 해 내는 분의 삶은, 어찌 보면 장르소설 못지 않은 몰입감을 독자에게 주기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율이는 "누구"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었으며, 이 상처는 다시 선생님에게 오래 전 과거의 어떤 아픔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상처가 있다고 언제나 (비슷한 상처를 지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릇이 크고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만 이를 소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겠죠. 저자는 그런 분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들과 소통을 더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본교과인 영어 외에도 심리학 등 소통 자체를 위한 공부를 따로 하셨다고 합니다. 진지한 소통에 있어 심리학 등의 베이스가 꼭 필요조건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간의 경험 덕에 무엇이 소통에 필요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셨을 저자였기에 교과서를 보는 족족 이해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아이들은 별 생각을 다 하는 법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친구와 함께 "위에서 아주 큰 존재가 내려다 보고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는데 이런 게 영화나 소설 따위를 보고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이라서 그 감정, 정서가 마구 파도를 탔을 수도 있습니다. 큰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심리를 투명성 착각이라 한다(p91)." 민호의 경우는 마치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책 중의 표현입니다) 어머니가 데려온, 부유한 동네에 사는 특별한 계층의 표본 같은 아이였습니다. 엄마 말로는 "착한 아이"였지만, 사실은 과외방이나 학원에서 매번 사고를 치고 밀려난 부적응자에 가까웠습니다. 특별하게 받은 혜택과 편의도 때에 따라선 사회에의 원만한 적응을 막는 족쇄 노릇을 하는 법이죠. 이런 것도 상처라면 상처지만, 여튼 위의 하율이하고는 경우가 다릅니다. 이 민호를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길들이는" 과정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물론 진정성과 성의, 오픈 마인드, 선의 등이 모두 결합한 결과입니다만 사람 대하는 스킬로 봐도 참 유용했습니다. 속물적인 분석이 아니라 결국 사람 마음 사로잡는 궁극의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도와줬기 때문이죠. 영어의 "정직은 최상의 책략이다." 같은 금언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아이들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정신적, 감정적으로도 아이들일 뿐이라고 여기지만, 아이들은 몸만 작을 뿐 어른들과 독립적인 자존을 갖춘 존재이며 어른에 결코 못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과는 달리 예측 불허의 면이 있습니다. 이래서 아이들 상대하는 게 어렵다는 거죠. 아이들을 잘 다루는 선생님은,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어른들과도 막힘 없는 소통을 이루고 상대의 마음을 훤히 읽어낼 것입니다. 조금 더 읽어 보면 민호 어머니도 저자 선생님 앞에서 다른 비밀 하나를 더 털어놓는데, 읽어 보니 참 그럴만했구나 싶더군요. 이 과정도 마치 저자만의 마법이 펼쳐지는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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