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김환영 지음 / 싱긋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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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는 건 비웃을 때 쓰는 말이지만 때로는 내가 못 느껴 본 경지까지를 엿보고 싶을 때 책에 기댈 필요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못 해 본 사랑의 단계나 못 느낀 감정이 없고 전부 몸으로 배웠다고 하는 사람은 그게 이미 셰익스피어이지 일반인이 아니겠습니다. 만약 사랑을 하다가 크게 다치기라고 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책으로 "미처 못 나갔던 진도를 마저 나가고"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달달한 감정과 다른 세상에나 간 듯 황홀한 느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인문 교양 상식이 많이 느는 깊이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깜짝 놀라는 게 성경, 특히 <아가>나 시편 같은 데서 꽤나 절절한 애정의 정서가 묻어난다는 점이고, 이 책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가씨는 왜 가뭇했을까?(p76)" 하긴 대체로는 순백의 피부를 뽐내는 아가씨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그 반대가 아닌데 성경의 해당 구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에 대한 중의적 표현인가? 여기 나온 사람들은 "모두 관계를 마친 후에" 그 절절한 느낌을 표현하는 건가? 저자는 그런 해석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옳고 그르고를 따지면 이미 문학의 해석이나 감성이 아닙니다. 며칠 전 어느 프로그램을 보니 어느 원로 전문가가 "우리 때 트로트는 청중의 해석과 감정 이입이 가능한 여백이 있었다(요즘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던데, 해석은 진짜 독자의 특권입니다. 설령 "야설"로 읽는다고 해도 그 역시 독자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특히 성경의 경우 그게 가능하려면 "내용적 동등성"보다는 직역(가능하면 원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국과 부왕을 버린 비정한, 아니 너무도 다정한 여인입니다(나중에는 싸이코패스가 되지만 여튼 처음에는). 이런 분은 우리 한국에도 그 한 원형이 있어서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가 또 오래 전해지죠.

얼마 전에 리니지 M이라는 게임이 새로 나왔는데 그 광고 배경 음악이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이게 왜 배경으로 쓰였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가 대학 다니면서 이 노래를 부를 시절에는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분위기를 잡는 필수 아이템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에디트 피아프 개인(그 "개인" 아님)도 그렇고 노래도 왠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대목은 악에 받친 것 같기도 하고 욕설을 내뱉는 듯도 하고... 그런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솔직하고 공감 가는 평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여튼 사랑의 이야기 주인공 중에는 저런 메데이아 같은 원형이 있곤 해서 뭔가 찜찜한 느낌도 주는 게 사실입니다. 에이.

"성적인 우정"이 있을 수 있나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을 두고 저자는 이 이슈를 끄집어냅니다.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도 결국은 이런 이야기인데 베네핏이 바로 그 뜻(?)입니다. 사람 사이의 친밀감이 무슨 장벽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선을 넘지 말고, 지켜야 할 건 지키는 중에" 더 흐뭇한(므흣한이 아닌) 관계의 보람을 얻습니다. 어떤 성적인 거리낌을 애써 쌓을 필요야 없지만, 반대로 모든 걸 성으로 귀결시키는 것도 우습습니다(사드 후작처럼).

문학에서의 모든 체험은 간접적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걸 직접 겪을 수 없기에 간접으로 백신을 맞고 겪어도 겪어 보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혹 사랑이라는 게 직접 만져 보기엔 무서운 불 같은 것이라면, 그냥 안전하게 책으로 배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짜릿한 걸 못 해 보고 죽는다면" 너무 아쉽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확 줄어들겠죠. 과연 그런 건지 아닌지도 여튼 책에서 확인 가능하니 한번 도전은 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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