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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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시적(詩的)입니다. 내용은 더 "시적"입니다. 아이들이 어느날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만들러 "페르세우스 유성군이 찬란한 우주 쇼를 벌이는 광경"을 보러 밤에 몰래 외출합니다. 그날 밤에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범죄자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작품 한참 뒤에 겨우 나오지만) 많이 떨어진 다른 집의 어떤 아이는 평소에 천문 현상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자상한 아버지를 하필 그날따라 곁에 두지 않습니다. 엇갈린 운명은 끝까지 기묘한 장난을 치고, 작위적인 연극 연출자도 일부러 이리 못 만들 만큼놀라운 사연으로 발전합니다. 결말의 반전은 너무나도 충격입니다, 원.

비극을 겪어 내기에 여동생은 아직 너무 어립니다. 둘째인 남동생도 어린 건 마찬가지라서 형사가 묻는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합니다. "센 얼굴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니?(p62)" 형이 다그치지지만 아직 말솜씨나 사고가 여물지 못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아이들은 아동 보호 시설로 위탁되며(이 책에는 고아원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는데 차별적, 비하적 언어의 지양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아들과 별 다를 바도 없는 한심한 인생들의 경솔한 입놀림과는 무척 대비되죠^^), 제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아이들은 그런 나쁜 환경에서 별반 큰 상처를 입지 않았던 듯합니다. 일본의 "그런 시설"은 아마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나 보죠? 하긴 이런 저의 느낌부터가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하지만요. 반성합니다.

아이들이 첫번째 상처를 입은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막내동생인 시즈나는 예쁜 여성으로 성장했는데 오히려 이게 상처를 부르는 빌미가 됩니다. "예쁘시니까 저의 애스테틱 사업 모델로 좀..." 그런 교육생 모집이 결국은 사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형이자 삼남매 리더인 고이치는 p106에서 이렇게 말하네요. "돈은 본래 돌고 도는 거야(그게 그런 뜻인가요?). 내가 사기를 당했으면 나도 남에게 갚아줘야지, 정치인들이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러도 국민들이 폭동 일으키는 거 봤어? 우리도 남에게 당하고만 사는 게 아니라 남을 짓밟는 입장으로 살아야 해." 원 이게 말이 됩니까? 그들의 딱한 사정은 십분 이해가 되지만, 나한테 해코지를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는 건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악행입니다. 이렇게 장레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악을 퍼뜨리는 바이러스 노릇을 자처한다는 게 얼마나 기가 찬 일입니까?

여튼 삼남매는 시즈나의 미모, 다이스케의 놀라운 연기력에 기대어 사기행각을 이어갑니다. "꾹 참는 것 따위는 몰랐던(p37)" 아직 어린 나이의 여동생은 그새 미인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금고 따위는 아무 소용 없어."(p48)라며 평소에 주의 깊게 재산을 간수했던 빈틈 없던 부친, 허술한 듯 하면서도 자신만의 레시피(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를 잘 개발해 손님을 끌어모았던 아버지, 이런 분을 하루아침에 잃고 삼남매는 험한 세상을 합심하여(이들 사이에는 아무 불화가 없다는 게 특이하더군요) 여튼 살아갑니다만 문제는 그 수단이 사기라는 점입니다.

p52에는 "머리가 헤싱헤싱"하다는 편의점 점장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우리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제발 이 점장(그 뒤에도 한 번 정도 더 나옵니다)이 좀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해 줬으면 하지만 그런 기대는 배반당합니다. 현대문학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대부분 양윤옥 선생이 맡는데 저 "헤싱헤싱"이란 단어만 봐도 그 진가를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p81에 가시와바라 형사가 그 부친(읽어보시면 나옵니다)을 만나러 갔을 때 "어림없지!"라며 양육 의무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슨 본인이 큰 손해를 본 양 과장하는 태도라니... 이런 자가 있으니 시즈나가 더욱 부모의 원한을 깊게 새기고 동시에 (사실은 자기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오빠들에게 더 정을 느끼는 거겠죠?

p159을 보면 누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란 말이 나옵니다. 자신은 어려서 양식당을 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그 착한 마음은 그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비록 도박벽이 있었지만 자기 일에는 장인 정신을 갖고 몰입했던 아빠한테 아마도 착한 심성을 배웠을 시즈나. 그래서 이 무대, "양식당"이라는 장소 안에서는 다시 착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죠.

p243에 보면 그 성공한 사장님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그들은 경쟁자이자 전우이지." 저는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일단은 거리 전체를 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입점한 거리 전체가 "긴자나 롯폰기에 손님들을 빼앗기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사람들을 모아온 후에야 우리끼리 경쟁을 해도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런 장사꾼들의 생생한 대화 속 디테일이 살아 있음도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p292에 "체인점를"이라고 사소한 오타가 있습니다.

p269에 우리 독자들이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의심의 눈길은 "그 사장님"에게 쏠립니다. 하필 그 공교로운 시점에, 더군다나 동종의, 아니 완전 동일한 요리 아이템인 하이라이스로 그 유명세를 타고 큰 돈을 벌었겠습니까? 우리 독자들은 이 즈음에 "그래도 무슨 반전이 있겠거니" 기대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니 혹시 그게 아니라 사장님의 눈물 어린 회오, 반성으로 결착하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 되었든 간에 독자들은 작가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정도로 확신을 갖습니다. 그런데...

요리사가 직접 배달을 해야 할 만큼 힘든 사정에서, 무슨 돈으로 레시피를 그냥 산단 말인가, 뭐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흐르면, 결국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닌가, 아마 이 지점까지는 이런 쪽의 짐작이 독자층 대세겠지요? 결말은 2권을 내처 읽어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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