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인, 아마조니언 되다 - 삼성, 아마존 모두를 경험한 한 남자의 생존 보고서
김태강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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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삼성을 다닌다, 혹은 경력 중 한 줄로 이력서에 들어간다고 하면 최고의 인재로 평가 받습니다. 그런데 삼성뿐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성장세를 보이는 아마존닷컴에서도 근무했던 분이라면, 더군다나 요직을 맡은 경력이라면 정말 돋보이는 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분의 조직 분석서입니다.

삼성과 아마존은 여러 모로 구별 되는 조직입니다. 일단 삼성은 기업 문화가 빡세기로 유명한 한국 기업 중에서도 특히나 직원 문화가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율뿐 아니라 업무 강도도 세계 어느 기업에 뒤쳐지지 않을 만큼 강합니다.

그에 반해 아마존은 일단 이런 한국 기업들에 비해서 직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폭 넓게 보장됩니다. 물론 아무리 형식이 자유롭다고 해도 생각 없는 멍청이가 무슨 봉이나 잡은 듯 날로 먹을 분위기는 아닙니다(아마존 아니라 세상에 그런 회사는 없죠). 널널한 듯해도 직원이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독특한 그들만의 비결이 있겠고, 이런 점은 두회사를 모두 다녀 본 분이라야 우리 독자들에게 정확히 일러 줄 수 있겠죠.

책 p67에는 의외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마존은 다른 테크 회사들과 다르게 삼성과 굉장히 비슷한 회사다." 즉 부하 직원 몇 위에 이들을 관리하는 이가 있고, 이들 위에 다시 상위 관리직이 있어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것과 비슷하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저자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고 하네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삼성과 같은 결재 시스템이 없다"는 겁니다.

예전 신문 연재 만화 <무대리>에서는 상사한테 깨질 때마다 "내가 그저 못난 탓이거니 여기라"는 주문이 독자들에게 호응 아닌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대부분 "깨진다"는 게 결재 과정에서 깨지는 겁니다. 상사에게 칭찬 받고 기안이 다 승인되면 회사 다니는 게 회사 다니는 게 아니라 고차원 놀이터에서 즐기는 겁니다. 결제를 못 받고 면박을 당하니까 회사 다니는 게 죽을 맛이라는 건데, 아마존에는 세상에 이 결재 시스템이 따로 없다는 거죠.

요즘 회사의 트렌드는 바로 창의성입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신이 나서 즐겁게 일을 해야 그 일의 성과가 양질이 됩니다. 죽지 못해 일하고 밤낮으로 모멸을 겪고 까이는 회사 직원들 머리에서 나온 성과는 전근대에나 알맞은 판에 박힌 진부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모토는 첫째도 최대 자율, 둘째도 자율입니다. 물론 이런 자율과 재량을 부여 받으려면 그 직원 자체가 충분한 능력을 지닌 인재라야 가능하겠습니다. 저질의 멍청한 꾀쟁이한테 재량을 줘 본들입니다.

"내 자리가 없는 아마존(p133)" 우리 나라 회사에서 이런 일 생기면 그날로 죽는 겁니다. "짤렸다"는 말의 제유법은 바로 "책상이 사라졌다"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은 본래 직원 개개인의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군요. OUR PLACE라고 해서 일정 영역에서 자기가 적당히 앉으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새벽에 무리지어 버스로 출근하시는(사실은 그냥 새벽 마실) 할머니들 보면 버스에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종의.... 기득권? 혹은 고정된 포지션에 대한 강박은 현상 타개를 심리적으로 어렵게 만들죠. 아무것도 아니고 사무실도 그 자리인데 때론 다른 자리에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고 새 착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워 플레이스 안에서 내 자리를 유동적으로 정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팀웍을 공유한다는 겁니다. 마이가 아니라 아워인 공간에서, 나는 다른 팀원과 자리를 바꿔(비유적으로건 물리적 의미 그대로이건 간에) 앉아 봄으로써 그와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웍인들, 팀 스피릿인들 고양되지 않겠습니까? 아마존의 자리 배치는 이런 것 하나도 세심하게 고려한 것입니다.

저자는 아마존에서 시니어 제품 담당 매니저로 봉직한 분입니다. p149의 일정 대목을 잠시 그대로 인용하면 "... 삼성에서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제품 성능 평가를 통해 양산 여부를 결정했다"는 건데, 이는 사실 예사 능력으로 감당 가능한 직분이 아닙니다. 여튼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경력으로 지원 가능한 게 그 분야뿐이라서"인데 일반 독자의 기를 상당히 죽이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여튼, 아마존에서 구태여 대학 전공을 보지 않고, 오히려 MBA 코스 수료자(엄연히 문과)를 우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술적 지식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어떤 비전을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고 높이서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재의 본질입니다.

삼성이건 아마존이건 동료의 신뢰를 얻는 건 무척 중요합니다. 이는 사람의 심성, 인성 따위에 대한 신뢰일 뿐 아니라 능력에 대한 신뢰이기도 합니다. 삼성, 아마존에서 근무할 기회를 갖는 행운(혹은 타고난 능력)의 인재가 과연 우리 나라에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이런 조직에서 성공한 인재의 충고를 듣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자기 회사 안에서 성공할 수 있고, 요즘은 첫 출발이 안 좋아도 이직을 통해 자기 경력을 처음보다 훨씬 알차게 가꿔 나가는 게 가능하더군요.

p204에는 그런 신뢰를 얻기 위한 저자만의 비결이 나옵니다. 첫째는 소통입니다. 저자는 일단 회의록 자체를 충실히 작성하면서 혹 자신이 잘못 알아들은 부분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다고 하는데 말은쉬워도 상사에게나 동료에게나 이렇게 워딩의 정확성을 확인 받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 문제도 있고 번거로워서라도 못 하죠. 다음으로는 솔직한 매너인데 이는 앞선 1번 항목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셋째로 저자가 꼽는 건 메일 회신을 비롯해 가급적이면 시간에 맞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겁니다.

Step out of your comfort zone. (p230) 사람은 자신의 익숙한 알을 깨고 나오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어떤 자는 자신이야말로 더러운 요람 안에 머물러 나올 줄을 모르면서 남더러 자신의 한계 안으로 들어오라며 적반하장격 헛소리를 합니다. 이런 것 역시 미숙한 인격체가 보이는 퇴행의 반응이죠. 반면 자신이 이미 익숙한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을 활개치는 사람이라면 그런 헛소리에 이미 신경이 쓰이지조차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깊이 새긴 가르침이라면, 자신의 좁은 틀 안에서 벗어난 경험을 한 사람이 멀리서, 높이서 내다 볼 수 있는 여유와 "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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