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 - 꼰대의 일격!
조관일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신세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과 잘 소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책은 자주 접합니다. 구세대는 그저 시대의 뒤안으로 퇴장해야 할 이들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저 "혁신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니네들 꼰대 맛을 알아?"라며, 꼰대의 미덕과 당당함을 설파하는 책은 극히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구세대가 앞장 서서 이만큼이나 길을 닦아 놓았기에 신세대가 그 바탕에서 더 진화하고 더 세련된 감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뉴턴 역시 갈릴레오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어른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나라의 구세대들은 다른 나라에 좀처럼 없는 특별한 분들입니다. 고도 성장의 숨가쁜 시대를 그들처럼 치열히 산 세대는 아마 세계 역사를 놓고 봐도 드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놓고 "꼰대"라 비칭하는 것도 이미 대단히 부당한 처사입니다. 스스로를 꼰대라고 부르며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면 그는 이미 꼰대가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런 "꼰대 아닌 꼰대"가 니네들 젊은 세대는 이런이런 게 아쉽다며 거침 없이 충고를 던지는 책입니다. 그러니 나이 든 세대는 그간 구닥다리라며 주위에서 받은 시선의 서러움을 이 책을 읽고 떨칠 수 있으며, 젊은 세대는 속으로 품어 온 "어떻게 하면 선배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숙제를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IT에는 능하지만 멘탈이 약한 요즘 애들!" 저자는 과감하게 이런 편견은 편견이 아니라, 일말의 강력한 진실을 담고 있는 강력한 진단이라고 합니다. 신입 사원에게 한 소리를 했더니 그 부모한테서 전화가 왔다거나(p86), 더 심한 건 군대에서 "우리 아이가 신발 끈을 잘 못 묶는데..." 같은 호소, 민원을 받는 장교가 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을 겪는 고참 간부, 군대의 장교는 마치 "유치원 교사가 된 듯"한 느낌이라는데, 이 책의 제목("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가 전달하는 바도 같은 취지 아니겠습니까. 그 뒤에 더 쎈 말도 나옵니다. "철 없는 젊은 날은 죽어야 한다!(p88)"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고, 나중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한 조직의 리더가 될 젊은이라면 일단 강해져야 합니다. 강하지 못한 자는 결국 남에게 짐이 되고 민폐만 끼칩니다.

"사람은 많고 할 일은 없다(p107)." 이 비슷한 제목, 아니 어찌 보면 정반대되는 구절로 책 제목을 단 김우중씨의 예도 있었지요. 조선 시대에도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어떤 고관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다고 합니다. "조정에 사람은 이미 많고, 자리는 부족한데 유생들은 이 점을 모른다. 글 잘 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세상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 바 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내가 세상 최고의 인재인데, 세상은 관심도 없습니다. 세상이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그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제 주제 파악이 덜 되어서입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어느 교수님, 고시 채점, 출제위원을 지내신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니 세상이, 어른들이, 무슨 자네들의 부형(父兄)이 아니라고!" 이런데도 누울 자리를 못 보고 발을 뻗는, 아무데서나 미친 어리광을 부리는 이들이 꼭 있습니다. 대접은 받고 싶고, 정작 지는 남들 대접 해 주기 싫고, 참 답이 없죠.

p140 이하에는 "꼰대"에 대조되는 "빤대"가 있습니다. 주인정신이 없고 하인 노릇만 간신히 하다 조직을 떠나는 군식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저 역시 읽으면서 "이게 꼭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될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께서도 혹 오해 하지 말라는 듯 "빤대는 나이와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고 책 중에서 말씀 하시네요. 그래도 1) 빤질거린다(p142 이하에서 저자가 직접 쓰는 표현들입니다) 2) 괜히 삐딱하고 반항적이다 3) 기존 질서를 무시한다 같은 특징들이, 아마도 나이 든 세대에서는 좀 찾기 힘든 특징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뒤에 나오는 4번, 5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요. 여튼 저자가 하는 말은, 너희들은 신세대가 되어야지 "빤대"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어른들도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어서 안 되는 이유가 같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놓고도 요즘은 쓰는 사람마다 그 숨은 의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자는 p149 이하에서 이를 두고 재미있는 분석을 시도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어쩌라구? 나이만 먹으면 다냐?"라며 대드는 뜻으로 해석하며, 시니어들은 반대로 "난 아직 죽지 않았어. 연부역강,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기력도 강성해지고 의지도 굳어지며 일처리 솜씬 전혀 녹슬지 않았거든?" 라는 뜻으로 이 말에 기댑니다. 후자의 태도는 사실 젊은이가 보기에도 좋습니다. 이런 시니어들을 보면서 "야 나도 정말 정신 차려야겠다. 난 나이 먹고 저 정도가 과연 나올 자신 있나?" 싶을 때 진정한 자기 계발도 가능하니 말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이 젊은 건 자랑이 아니다."라며 젊은이가 경각심을 갖는 "세번째 의미"라고 말합니다(p149).

이 책에는 방탄소년단, 특히 그 중에서 김남준에 대한 일종의 저격도 있습니다. 특히 이 대목이 재미있어서 주의 깊게 읽었는데요. 전 전혀 몰랐는데 "난 세상에서 자기계발서가 제일 싫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개소리들" 같은 가사를 그가 읊조린다고 합니다. 비교적 젊은 편인 저도 전혀 모르는 사항을, 요즘 가수들 랩이든 가사든 참 알아듣기 힘든데 그걸 찾아가며 들어는 보신 그 열정에 일단 박수를 보낼 일입니다(관심 없으면 이런 시도도 못합니다). 더 읽어 보면 저자는 사실 김남준을 저격한 게 아니라, "같은 말을 해도 BTS가 하면 감동이고, 우리가 하면 꼰대질이냐?(p194)"며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에 더 집중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김남준의 메시지에 대한 부분 긍정이기도 하기에 그의 팬이라도 별로 불편해할 건 아닌 듯합니다만 여튼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은 대책 없는 꼰대 예찬론이 아닙니다. 책 말미에는 "꼰대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며 일종의 자성론까지 전개됩니다. "리더가 되면 왜 꼰대가 꼭 되어야 하나?(p251)" 근거 없는 자기 확신, 자기 도취가 이런 현상을 낳는데 이는 나이와는 사실 무관합니다. 젊은이는 가진 게 없고 아직 성취한 바가 부족하므로 이런 폭주는 잘 않지만, 사람 나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에 헛바람만 든 미친 광대, 리더 코스프레를 하는 미친 녀석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라(p240)"는 충고를 베풀 필요가 있죠.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저런 충고도 훈계처럼 해 주지 말고 "제안하듯(p286)" 하라고 합니다. 심판하지 말(p267)고, 말허리를 자르지 말(p280)고, 자신의 청년 시절을 돌아보라(p265)"고 합니다. 책 뒤에는 YQ테스트가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젊음지수를 잴 수 있다는군요. 결국 이 책은 "꼰대가 되라"는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되 그들이 배울 게 있는 멋진 선배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