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부터 별을 사랑한 쇠똥구리 까지 우리가 몰랐던 곤충의 모든 것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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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EBS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그 주어가 "곤충"으로 바뀌었을 때 아마 많은 분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거나 펄쩍 뛰기도 할 것 같습니다. 당장 바퀴벌레만 해도, 그의 "악함, 혐오스러움"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같기에 말입니다. 알고 보면 이는 우리 인간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익숙한 느낌대로 계속 가길 원하지, 설령 반증이 드러난다 한들 종래의 생각이 바뀌길 원치 않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흥미진진한 과학 교양서입니다.

"교미를 끝내면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사실 많은 동물들에게 있어 성적 교합 행위는 대체로 "슬픕니다." 그 교합이 오래 가지도 않고 대체로는 이 고달픈 릴레이 경주를 끝내는 마지막 바톤 터치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손 번식을 위한 과정에서 그토록 큰 쾌감을 느낄 뿐 아니라, 자손 번식과 무관하게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축복 받은 존재입니다. 때로 이 성적 본능을 제대로 통제 못 해 큰 곤경을 겪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무분별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여튼 "내 아이의 아빠는 내가 고른다"는 이 사마귀의 재미있는 행태를 보면서, 생명체의 진화와 투쟁 이면에 놓인 궁극의 원리가 과연 무엇일지 깊이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 <쥬라기 공원>에도 생태계가 암컷만으로 채워지자 알아서 성별을 바꾸는 개체가 등장합니다만 도대체 번식이라는 게 한쪽 성만으로도 한편에서 가능하다는 자체가 우리 인간에게는 놀라움을 안겨 줍니다. 대체로 유전자 배합의 다양성을 기하기 위해 양성 생식이 생겨났다고 알려졌지만, 단성 생식이 저처럼 편리한데 과연 이 과정, 그 힘든 과정이 어떻게 생겨나기나 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수벌의 고환은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순간 '폭발'한다." 우리 인간에게도 이 비슷한 기제가 작동했다면 아마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 끔찍한 사건들 중 상당수는 아예 상상의 단계에서도 배제되었을 텐데요.

저자께서 여성이셔서 그런지는 모르나, 주도권을 주로 암컷이 장악하는 곤충들의 세계에 대해 특별한 열정과 의미 부여가 잇다르는 대목이 많이 보입니다. 과학자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우리 남성 독자들도 뭐 겸손히 따를 뿐입니다 ㅎㅎ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지어낸 조앤 K 롤링 여사의 통찰력에 대해선 언제나 감탄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여사의 창작 사전 작업의 밀도도 참 만만치 않은 것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토를 펄럭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디멘터"는 암풀룩스 데멘토르라는 말벌의 학명에서 따온 것이며, 그 행태도 서로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퀴벌레의 천적이 세상에 어디 좀 없냐며 만날 불평이지만, 바로 이 말벌이 바퀴벌레에게는 명왕과도 같습니다. 이 말벌이 자신의 "호구"를 사냥하는 모습은 대단히 잔인하고 냉철하기에,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바퀴벌레에게 동정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개미가 농사를 짓는다는 말은 상식으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개미가 "축산업을 영위한다"는 말도 처음 배우게 되었습니다. 진딧물은 자기 방어 능력이 부족한데, 개미는 이 진딧물로부터 일정 이익을 얻으므로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디 가드 노릇을 자청합니다. 물론 공짜 경호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구역으로 옮아가지 못하도록 날개를 물어뜯는 등 이기적인 폭력도 행사하는군요. 그렇다고 개미가 최강자라는 건 아니고, 이들 개미의 지나친 번식도 곰이 나타나 적절히 제한함으로써 식물계 역시 착취를 방지당합니다. 자연계의 신비와 조화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곤충으로 초밥을 먹는다?" 상상만 해도 토할 것 같으며 영화 <빠삐용> 등에서 보듯 사람이 그저 극한상황에 몰릴 때에나 벌레를 주워 먹기 마련이지만 알고 보면 벌레들은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먹어라." 발명왕 에디슨의 시대에도 미국 중산층의 가정에서조차 바퀴벌레가 그렇게 들끓어서 테이블 보에 은박을 입혀 전기를 흐르게 하는 방법으로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지난 세기 영국의 학자 홀트는 "더러운 벌레로 골치를 썩일 게 아니라, 노동자와 빈곤층은 자신의 집에 들끓는 벌레를 요리해 먹으라"는 충고를 했다는군요. 물론 대중이 격분할 만한 말이지만, 저자는 "아마도 수백 년이 흐른 후 사람들은 결국 홀트가 옳았음을 인정할 것"이라 합니다. 곤충 요리는 레시피에 따라 지상에 일찍이 없던 맛까지 지녔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긴, 요즘 웰빙으로 주목 받는 잡곡류의 경우 조선 시대에는 상민들의 식탁에나 오른 품목이었죠. 흰쌀밥이 이처럼 푸대접 받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구더기로 상처를 낫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미신이나 근거 없는 민간 요법, 혹은 픽션 속의 가짜가  아니라 이 책 p205에서 그 원리가 자세히 설명된, 엄연히 효능 높은 하나의 요법이기까지 합니다. <람보 2>를 보면 베트남 군과 소련군이 구더기가 창궐하는 웅덩이에 람보를 빠뜨려 고통과 굴욕을 주는 장면이 있지만, 저자는 사실 구더기는 인간에게 엄청난 효용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구더기는 결핵균의 증식을 막기도 하며, 사실 낚시꾼들에게는 벌써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이런 착하디착한 구더기를 놓고 무조건 침을 뱉거나 혐오감을 표시하는 우리들이야말로 배은망덕한 종족 아니겠습니까. 아니 구더기가 뭐 어때서요? 착하기만 하구만.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종이 생기기까지는 수십만 세대는 아니라도 수천 세대는 지나야 한다." 곤충은 우리 인류보다 훨씬 앞서 지표를 누비던 대 선배들이며, 나중에 출현한 우리와 얼마든지 풍요로운 공생 방법까지 제공하는 믿음직한 존재입니다. 쓸데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살충제나 찍찍 뿌려대는 인간은 반면 다른 종을 말살하는 아주 이기적인 종자들입니다. 곤충에 대해 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부터 벌써 더 풍요롭게 가꿔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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