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보 로토의 ‘다르게 보기’의 과학
보 로토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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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 위함하고, 적어도 부담이 됩니다. 회사에서도 남들이 예스를 외칠 때 홀로 노를 말하는 이는 경계,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죠. 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조차 혁신을 강조하는 세상입니다. 루틴에 젖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며, 그걸 떠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면 다르게 보기를 습관으로 길들일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신경과학자 보 로토 교수의 이 책은, 대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어느 정도까지나 우리 자신의 것인지, 혹은 그저 길들여지는 과정일 뿐인지 우리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화하며, 뇌는 어떤 식으로건 이를 해석하고 정보를 정리해야만 합니다. 쉼 없이 어떤 판단을 행하는 우리이지만 그 기초가 되는 정보는 "눈으로 본다"고 여기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 생각과 다른 판단을 말하면 "그거 내 눈으로 분명히 본 거거든?"이라며 길길이 뛰기도 합니다. 본인은 본인 눈으로 본 명백한 "팩트"를 부정당하는 게 참을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야얄팍한 자존에 상처를 입었을 뿐인데도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 "정의(착각입니다)"의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집니다. 이성과 논리에 의해 세상사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말입니다.

"러브 스토리"는 그저 에릭 시걸의 픽션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색질의 대뇌 피질(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내세우던 모토이기도 하죠), 그리고 시상은 우리가 사물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환상적인 "러브 스토리"라 성격 규정합니다(p113).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하여 세상 자체가 끊임 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성격임을 강조하며, 동시에 피질과 시상(세포) 역시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그 의존, 상호 관계를 진화시켰음을 주장합니다.

과연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 세상이 날이면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가꿔지는 원동력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증명될 만한 명제는 아니지만, 과학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아니겠습니까.

편향과 가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관적 뿌리(p240)는 어찌 보면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든 이미 뇌 속에 익숙하게 자리한 것을 근거도 없이 진리로 규정하고, 그 반대의 것을 그르다며 폭주를 일삼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객관은 그런 우리 마음 속의 불건전한 요동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약한 신경 더미들이 채 따라잡기도 전에 그 모습을 바꿉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에서 긴장을 풀고 종래의 확증 편향 속에 나태하게 빠져든다면 아마 판단의 착오는 임계를 넘어 위험 수위에 치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아마도 파멸의 결과뿐이겠습니다.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 내며 생존을 위해 유익한 예측을 해야 하는(p337) 과제는 사실 진화의 기본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려면 "의식적 사고"가 필요하며(p167) 그런 사고는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이 책은 참으로 멋진 표현들을 담습니다. 진화는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특히 사람처럼 뇌 부분을 별나게 진화시킨 종이 한사코 기피하려 든 건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며, 우리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처럼이나 탁월한 지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의식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 답은 "그 불확실성 속으로 결코 두려움 없이 밀고 들어가는" 선택과 결단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 전통 속담처럼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 법"이니 말입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까요? 뉴턴 같은 과학자도 결정된 미래를 그저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뿐이라며 암울한 결론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반대로, 미래가 자유의지에 따라 설령 바꿀 수 있더라도 우리의 의지가 기여하는 바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자는 그저 의지만으로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라며 정직한 확률을 말해 줍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진실과 객관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있고, 그것은 아름답다고도 일러 줍니다.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유력한 가설 하나도 일러 줍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친 세상에서 하루를 버티며 생명의 불꽃을 틔우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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