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방대한 저작을 남긴 경영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경영에 "사상"이 개입할 여지나 있을까 의심을 갖는 게 더 흔한 인식일 텐데요. 드러커 박사님은 이런 인식이 오히려 그릇된 속물적 태도임을 분명히 계몽이나 하듯, "혁신"이라든가 "사회적 책임", "동반 성장" 같은 개념을 그 이른 시기부터 명확히 규정하며, 대중과 CEO 모두에게 상생과 건전한 성장에 대한 이상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 타당한 지표를 가르쳐 준 그의 저작이라 해도, 한 권의 분량에 압축된 내용을 독자가 접하거나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도 적잖게 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음 이 한 권으로 드러커를 마스터했다"라는 생각보다는, "확실히 오늘날에는 드러커(의 가르침)란 이렇게, 혹은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오긴 했습니다.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21세기에 재조명되는 드러커의 교훈에선 이런 지점들을 눈여겨 봐야 한다"라든가, "여태 못 읽고 지나친 드러커의 함의 중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종래 고도성장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쉬웠고, 마냥 편한 보장이 제공되는 건 아니라도 "평생 직장" 개념이 (일본처럼) 자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은 우리들에게 낯설기만 한 단어이며, 지금도 노동계에선 "모두의 정규직화"라는 의미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기도 합니다. 헌데 그렇게나 예전에, 드러커 박사가 "비정규직의 중요성"을 논한 적이 있었을까요? 서구나 북미에선 그때부터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비중이 컸었기에 (우리 막연한 인식과는 달리) 이 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긴 했을 것입니다. 저들의 고용 환경에서 일상화된 패턴 중 하나이기에 이런 한 마디가 나왔던 게 당연하지만, 그런 사정(비정규직의 보편화)이 아직도 낯설고 적대적인 우리로서는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드러커는 "비정규직도 분명 소중한 지적 자본 중 하나"라고 규정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가 당신을 실망시킨다면 과감하게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는 길을 택하라."고 권유까지 하시는 저자님이지만, 독자로서 꽤 망설여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4대 보험은 있어야죠.

아무리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주권의 시대라도, 회사에서 민주주의가 절대 보장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뿐만 아니라 사장님들은 종종 그 직원들의 "부족한 인성"까지 교정하려 듭니다. 회사는 특히 한국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 모인 파트너쉽이나 2차 집단이라기보다 원칙 없는 학교 같은 느낌도 줍니다(요즘은 학교라고 해도 선생님들 자의가 지배하지는 않죠). 보통 경영 관련 서적에서 가능하면 지배적인 리더십을 따르라고 충고하지 이런 문제적 상황을 지적하는 태도는 보기 힘든데요. 저자께서는 "CEO가 선의의 계몽군주는 아니다.'라며 드러커의 주장을 정면 인용합니다. 사실 이 (드러커의) 한 마디는 올해 초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김종인 씨의 전횡을 지적하며 조국 교수가 꺼낸 표현이기도 합니다. "군주는 선의건 악의건 현대 조직에서는 필요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민주화한 조직에서 개인의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고, 조직 소기의 목적을 보다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직원의 연수가 아니라 경영자 개발이다" 드러커의 한 마디 중 이것보다 파격적인 언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에 따르자면 소위 "목적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MbO)"의 관점에서, 당면 과제에 효용을 제공 못 하는 모든 자원은 다 낭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저자께서는 재미있는 비유로, "드러커"라는 이름은 중세 네덜란드어로 인쇄업자라는 뜻인데, 이때만 해도 인쇄업 기능이란 평생 한 번만 배워둬도 그 자손들까지 쓸 수 있는 기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러커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노동자나 경영자라도 지금처럼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휴짓조각으로 급속히 변하는 시대는 겪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러커의 대안은 "지식을 배우지 말고, 배우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드러커는 생전에 일본의 "개선"이라든가, "온 더 잡 트레이닝"에 주목하고 구미의 경영자들에게 적극 도입을 추천했죠. 노동자들, 직원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현장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무엇을 배울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게 경영자가 아니라 노동자, 직원임은 또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자율권, 참여권을 주고 혁신을 스스로 이뤄나가는 주체로 키우는 기업, 경영자 스스로가 무지를 인정하고 함께 기업을 꾸려 나가는 기업이야말로 이 혁신의 시대에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겠습니다.

블룸버그에서 혁신 지수 1위로 한국을 올려 놓았다는 뉴스는 저도 몇 달 전 웹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드러커가 파악한 혁신의 개념은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는 첫째 혁신은 위험하지도 않으며, 둘째 뛰어난 아이디어나 기적적인 행운에 의하지도 않고, 셋째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며, 넷째 내부에서만 일어나지도 않으며 업종의 현황에 반드시 밝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다섯째 (개인적으로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영리 기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여섯째 공무원이든 학자든 누구라도 일으킬 수 있는 게 혁신이라고 합니다. 혁신은 심지어 어린 청소년의 반짝하는 아이디어에서도 유발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는군요. 혁신의 이런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혁신이 그저 근로자나 사회 다른 섹터 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욕을 꺾는 데만 구호처럼 동원된다면 우리 나라는 곧 보잘것없는 변방의 활기 없는 소국으로 전락하리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드러커의 가르침이나 혁신에 대한 이런 통념이, 보다 실질적이고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경영 목표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잘 확인할 수 있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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