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카하라의 아내가 간 밤에 길거리에서 살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자수를 하러 나타난 늙은 노인이 있었다.    아니, 나카하라의 아내가 아니라 전 아내라고 해야한다.    그들 부부는 오래 전, 아내가 잠깐 슈퍼에 간 사이에 들어온 도둑에 의해 어린 딸아이가 살해를 당한 후, 그 일로 둘은 결국 이혼의 절차를 밟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 아내와 소식을 주고받지 않은지도 몇 해가 지난 터라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 했다.   그렇지만 전 아내의 죽음 소식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그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해 당하기 전의 일들을 따라 밟으며 단순 노상 강도 살인이 아니라 그녀가 살해 당하게 된 진짜 이유와 마주하게 되었다.


  살인자에게 어린 딸을 잃었던 그들 부부는 한동안 살인자의 사형을 위해서 재판을 하면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결국 살인자는 사형이라는 처벌을 받게 되었지만, 이혼을 하게 된 이후, 그녀는 살인피해 가족모임을 다니면서 사형제 폐지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의견을 담은 책도 집필 중이었는데, 나카하라는 그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현재 그녀가 직업을 가지면서 도벽을 가진 네 여성에 관한 기사를 적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 네 여성 중의 한 여인, 그녀의 고향이 하필이면 전 아내를 죽인 남자의 사위 고향이기도 했다.    과연 우연일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장인어른의 잘못에 대한 사죄를 대신 유족들에게 편지로 쓴 사위를 만나러 나카하라는 간다.


  후미야는 소아과 의사로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자신의 장인 어른이 한 여인의 살인자가 되었고, 그래서 그의 친가에서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아이 역시도 그의 아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상태의 여인을 아내로 맞은 것이란 걸 친가에서 알게 되었기에 더욱 이혼의 요구는 강했다.    그러나 절대 아내와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후미야는 지금, 장인 어른이 죽인 한 여인의 전 남편을 만나고 있다.


  전 아내는 자신들의 딸아이를 살해한 살인자의 변호사를 만나 왜 그를 변호해야만 했는지를 들으려 했다.    살인자들의 사형을 강력히 원하는 그녀는 살인자의 사형을 반대하는 그 변호사의 입장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변호사는 말한다.    그 살인자는 자신의 사형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렸다고, 그 어떤 속죄의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서 사형제도는 무력하다고 했다.     공허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살인자들에게 사형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사형제도에 대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죄의 십자가를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허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과연 사형제도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굳이 사형이라는 것이 아니라도 어떤 사람은 이 십여년을 속죄의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살아왔지 않던가.    사형제도라는 것이 속죄를 유도하지도 않고, 속죄한다고 그 살인의 잘못이 용서받아지는 것도 지워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살인자의 사형만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겠지만, 또 하나의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진 않을 것 같다.    공허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사형수에게 사형이란 결국 이에는 이라는 단순한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    속죄의 끝이 과연 죽음이어야 하는 것일까, 책임이란 것은 죽음으로 용서받거나 끝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속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기회를 주는 것, 사형제보다는 더 살인자들에게 죄의 대가를 받아낸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한 순간의 죽음보다는 평생의 절대 떨쳐낼 수 없는 속죄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 사형제는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할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 속죄의 시간을 가진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 그것은 엄천난 무게의 짓눌림일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지 않겠는가.   공허한 십자가보다는 진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해야한다.    살인자들을 용인할 수는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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