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차인표, [사랑을 그대 품 안에]라는 티비 드라마를 보면서 혜성같이 등장한 이 배우를 기억하게 되었다.   날렵한 외모에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 배우를 나는 배우로만 기억한다.   아니, 그랬는데 그가 책을 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담담히 서술한 수필도 아니고 소설이라니, 장편 소설가 차인표는 그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부로 나에게 다가섰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새김을 남기고 만다.

 

  <오늘 예보>라는 이 책에는 절망의 줄 위를 걸어가는 세 남자가 등장한다.   DJ데블은 오늘 자살을 시도하는 나고단에게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 어린 딸을 가진 박대수에게는 딸을 먼저 보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열심히 살아보려는 이보출에게는 그래봐야 말짱 도루묵이라는 예보를 한다.   그의 오늘 예보가 과연 맞을까, 여하튼 이 책 속에서 데블이 소개하고 있는 세 남자의 삶 속으로 가까이 걸어 들어가보고싶다.  무슨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키가 작아 슬픈 한 남자, 작아도 작아도 너무 작은 한 남자, 나고단은 기껏 모았던 돈은 사업을 한다고 하다가 다 날려 버렸고, 아내는 수영 강사랑 눈이 맞아 떠났고, 자식은 불임인 관계로 가질 수 없었다.   결국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나고단의 삶은 정말이지 이름처럼 고단하기만 하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까짓거, 희망없는 삶, 누구 한 사람 자신을 위해 슬퍼해줄 사람도 없고, 단 한마디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던져줄 사람도 없는데 죽은들 어떠하리라는 맘으로 그는 한강 다리를 찾아갔다.   뛰어내리려고 옷도 벗고 구두도 벗고 그런데 다가오는 공익 두 명, 그의 자살을 말린다.   눈물 겨운 감동의 순간이련가싶지만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관할 아래에서 말썽이 생기는 것이 싫어서 나고단에게 다른 자살하기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보출, 단역배우로 살아가면서 누나에게 맡긴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한강 근처에서 드라마 촬영 중인데 카메라 앵글에 누군가가 잡히고 있다.   사극인데 말이다.   사극에 현대인의 모습이 잡히면 안 되는 것은 당연, 이보출은 그에게 가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자살할라고 온 나고단이었는데 이번에는 드라마 촬영 앵글에 잡힌다고 지금 자리에서 사라지라나.....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겨우 드라마 촬영에 방해되니 사라지라는 말만 한다니 이보출도 너무 인정머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는 배고프다는 나고단에게 밥 사먹으라고 5천원을 준다.

 

  박대수, 조폭으로 살다가 한 여인을 만났고 이쁜 딸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죽는단다.   한 달 아니 이젠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나, 자신의 전 재산을 날려버린 후배 이보출을 쫓고 있다.   이보출을 찾아서 돈을 받아내어 아이의 목숨도 살리고 새 삶을 꾸릴 김밥 장사도 하고...하지만 그의 딸은 돈으로도 생명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딸 아이와 맞는 골수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

 

  절망의 줄 위를 걷는 사람들, 더이상 잃을 것도 없을 것 같을만큼 바닥까지 내려온 사람들, 그 세 남자의 희망없음의 삶이 연출되고 있는 하루 하루 아니 오늘이었다.   어쩜 DJ데블의 예보가 맞을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럴 것만 같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데블의 예보가 빗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안도감을 안겨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참을 크게 웃으면서 본 장면이 있다.   박대수를 따르는 김 부장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사오정의 할아버지는 될 뻔한 사람정도로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박대수가 차분하게 앉아서 설명을 해줘도 김 부장은 자신이 믿는대로만 엉뚱한 소리를 한다.   어찌나 웃기던지, 차인표라는 배우에게 이런 유머감각이 있었나 싶어 놀랍고 신기했다.

 

  배우 차인표, 아니 이젠 소설가 차인표라고 말하고 싶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끝까지 흔들림없이 잘 잡아갔고, 간간히 유머를 넣기도 했으며, 세 남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배우라는 직업을 전혀 생각할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던 세 남자, 어제와 같은 오늘일 것 같은 그 절망이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니 내일은 달라져 버린 것이다.   데블의 예보와는 틀리게 말이다.   오늘 그 절망에 숨막혀 온다해도, 오늘에 대한 끈을 놓아버리는 일은 말아야 겠다.   그 오늘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내면 내일은 오늘과 다른 모습의 하루가, 태양이 떠오를테니 말이다.   오늘 절망이라고 내일도 절망이란 법은 없다.   오늘 절망이어도 내일 희망이 올 수 있다.   곁에 절망 위를 걷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의 손을 잡아주자.   그를 위해 위로의 말을 던지자.  그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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