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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먼지가 쌓이고 쌓여서 뭉텅이를 이룬 모양마냥 오랜 옛적에 우연하게 만났던 책이 작가 김주영 선생님의 <홍어>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어린시절 읽은 책이었지만 구들장의 따스함처럼 다가왔었던 책이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저자의 책은 그 하나만을 접해 보았었지만 싫지 않은 기억이었기에 그가 우화집을 내놓았다고 했을 때, 이번이야말로 그와의 재회를 맞이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나라 도둑이라는 제목부터가 무척 맘에 든다. 그리고 낯설지만 유명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이 쓴 우화집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우화라 하면 이솝만 생각했었는데, 소설가가 쓰는 우화집은 어떤 맛을 낼 것인지 입맛을 다시게 된다. 저자 스스로 우화적 지혜가 부족하여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하며, 저자의 꿈과 상상력의 자서전이라고 표현한 이 책의 그 첫 장을 펼쳐본다.
곰쥐와 금 항아리 이야기가 우선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다. 꼬부랑 할머니의 집 천장에서 편하게 살아가고 있던 곰쥐는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할머니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할머니 집에서 금 항아리를 발견하게 되는 곰쥐, 이 기쁜 소식을 할머니에게 빨리 전하여 부자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 그래서 앞뒤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기쁨에 겨워 할머니에게 뛰어가 귓엣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주의함은 곰쥐에게 불행을 안겨주게 되고만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아주 악질적으로 산 친구가 있는데, 15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누구나 그가 당연히 지옥에 갔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가 천당에서 전화를 걸온 것이 아닌가. 어라, 놀라운 일임에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악질적인 친구는 처음엔 지옥에 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악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천당에서 교육차원으로다가 지옥에서 초빙하여 데려왔다는 것이다. 하여, 천당에서 14년 째 악질이 무엇인지를 교육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친구에게 천당에서 만날 것을 이야기하지만 친구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고 만다. 그런 친구를 본 악질적 친구는 연민에 찬 목소리로 너는 반면교사가 될 자격도 없는가 보다며 말을 건넨다.
10년간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진 여자의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사랑을 잃고는 남은 모든 인생이 반쪽만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근무도 반만하고, 식사도 반만하고, 책도 반만 읽었다. 그리고 삶도 반만 살다가 이르게 죽음을 맞는다. 이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구절은 그녀만이 자신을 반쪽 인생이라고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온전한 한 몸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녀가 깨닫지 못 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의 어린시절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꿈과 상상력으로 빚어 만들어진 이 우화집을 읽으면서 생각의 파도가 물결쳐 온다. 우리도 이젠 우화하면 이솝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김주영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인상적인 구절]
내 운명은 내가 다스리고 내가 만들어낸 유장한 삶의 열정 위에서만 후퇴하고 또 전진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나는 백 번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