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그 사람의 눈빛은 분명히 저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를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그의 신뢰를 얻고 그를 유혹하는 일이면 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미인계로 그에게 다가서는 암살단의 일원으로 그 역할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저에게 반지를 사주려고 하는 지금 이 순간, 저는 그의 사랑을 느낍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그의 온전한 사랑을.....

 

그녀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임무를 저버린채, 그에게 위험을 알려주었고 그녀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 그녀를 사랑했을까.  이기적인 사랑을 벗어나지 못 한 그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이 서글퍼졌다.

[색, 계]를 안 것은 영화에서부터다.  그렇다고 영화를 본 것은 아니고 책으로 읽는 것이 그 첫 대면인데 생각외로 무척 짧은 이야기였다.  이 정도의 내용으로 긴 영화를 만들어냈다니 놀라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마치 미국 드라마 24를 보는 듯이 보석가게를 가는 그 하룻 동안의 이야기만이 그려져 있다.  왕지아즈와 이 선생님이 보석가게를 가기 전의 이야기들과 보석가게로 향하는 장면 그리고 보석가게, 보석가게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만이 시간의 흐름대로 그려져 있다.  숨가쁘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여운이 감도는 결말이었다.

 

어쩌면 기다림이 행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그 부인의 이야기처럼 기다리기만 하면 우리의 사랑이 완성될 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아픈 몸을 가지고 있으니깐 그 기다림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 차라리 그 부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샤종위가 위지아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금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지아인 역시 종위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 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독자로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는데, 나는 그들의 사랑을 판단하고 있었다. 

[못 잊어]는 별거 중이었던 종위가 딸아이의 가정교사인 지아인에게 편안함과 사랑을 느끼는 내용으로 그들의 마음의 행보가 그려져 있는 단편이다.  지아인이 선택한 사랑의 결말이 어떠하든 그녀는 아픈 시간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장아이링의 소설집으로 색.계, 못 잊어, 해후의 기쁨, 머나먼 여정, 재회, 연애는 전쟁처럼이 실려있다.  역사의 물결 속에서 주인공인 그녀들이 선택해 나가는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드라마는 끝나지 않은 채 독자인 우리들과 그 끈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신과 함께 중국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장아이링, 이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풍겨오는 그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장미같은 치명적인 향기의 작품을 남기는 저자라기 보다는 잔잔하면서도 오래도록 짙은 향기를 남기는 저자란 느낌이 들었다.  쏟아진 향수의 향기가 짙게 베어진 손수건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