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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을 알면 주식이 보인다 - 채권쟁이의 주식 투자법
신년기 지음 / 아라크네 / 2025년 11월
평점 :

이 포스팅 아라크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20년 넘게 IT 분야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최첨단 기술이 흥하고 지는 일들을 지켜봐 왔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도래하고, 플랫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주식 투자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개별 기업들의 기술적 가치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예견했지만, 그 기업이 속해 있는 거대한 ‘시장’의 흐름, 즉 돈의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주식 초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채 경제 서적들만 뒤적이다 새로운 책을 발견했다. 《채권을 알면 주식이 보인다》는 마치 복잡하게 꼬인 스파게티 코드 속에서 핵심 알고리즘을 발견한 듯한 명쾌함을 주었다. IT 기자의 시선으로 본 이 책은 단순한 재테크 서적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OS(운영체제)를 설명하는 매뉴얼에 가깝다.
흔히 주식을 ‘고위험 고수익’의 꽃이라 부르고, 채권은 은퇴자들이나 하는 지루한 안전 자산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 책은 첫 장부터 그런 편견을 깨며 시작한다. 20년 차 베테랑 채권 운용자인 저자는 “채권은 주식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선언한다.
IT 업계에서 서버의 트래픽을 모니터링하듯 금융 시장에서는 금리(채권 수익률)를 수시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뜻이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시중의 자금은 위험한 주식 시장을 떠나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채권 시장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금리가 내리면 돈은 다시 수익을 쫓아 주식으로 몰린다.

채권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은, 일기예보도 보지 않고 우산을 챙기지 않은 채 폭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채권이라는 ‘돈의 신호등’을 읽는 법을 알려 주며, 시장의 방향성을 먼저 보는 안경을 씌워 준다.
시중에는 수많은 주식 책들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접근성’이다. 보통 채권이나 금리를 다루는 책은 전공 서적처럼 딱딱한 공식과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어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 책은 ‘부자(父子)간의 대화’라는 독특한 구성 덕분에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금융 전문가인 아버지가 투자의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형식이다.
신입기자 시절, 선배에게 기사 작성법을 배울 때처럼 저자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질문을 던지고 답을 건넨다. “아버지, 금리가 오르는데 왜 제 주식은 떨어지나요?” 같은, ‘주린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질문들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덕분에 채권 가격과 금리의 역의 관계,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의미하는 경기 침체의 신호 등 다소 복잡해 보이는 경제 메커니즘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복잡한 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해 전달하는 IT 저널리즘의 미덕을 텍스트로 구현해 낸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막연한 투자 조언 대신 구체적인 지표를 근거로 제시한다. 단순히 “지금은 주식이 싸다”라고 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과 채권의 기대 수익률 차이를 나타내는 ‘일드 갭(Yield Gap)’ 같은 명확한 데이터 지표를 활용해, 지금이 주식을 담아야 할 시점인지 아니면 현금을 확보하고 채권으로 피신해야 할 시점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알려 준다.
《채권을 알면 주식이 보인다》는 주식 책이면서, 역설적으로 주식 차트만 들여다보지 말라고 가르치는 책이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심어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조언을 곁들이는 셈이다. 오랜 시간 기사를 쓰면서 팩트를 체크해 온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이 제시하는 투자 원칙은 단기 유행이 아닌 구조적 ‘팩트’에 가깝다.
늦가을, 찬 바람이 불어오면 배당주를 찾듯, 시장이 크게 흔들릴 때 중심을 잡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보시라. 채권이라는 렌즈를 끼는 순간, 비로소 주식 시장의 흐름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