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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의 가격 - 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박지성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이 포스팅은 월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요즘 연일 35도를 웃도는 극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가 져도 30도가 넘고 한밤중에도 25도를 넘는 더운 날씨는 다음 날 뜨거운 열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우려했던 기후변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박지성 교수는 『1도의 가격』에서 "기후변화가 실존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미 닥친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라고 진단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재난 중심의 기후 서적과 달리, 통계에 기반한 경제적·사회적 분석으로 숨겨진 비용들, 즉 '느린 연소(Slow Burn)'에 주목한다.
산불, 폭염, 태풍 등 눈에 보이는 재난 뒤에 우리가 놓치는 것은 연기로 인한 피해, 경쟁 심화, 정신 건강 악화 같은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은밀한 피해다. 특히 산불 연기로 인한 노인 사망자 수는 공식 통계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어느 날의 폭염이 학생의 시험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기대 소득까지 낮추는 '인적 자본 손실'로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대규모 자연재해로 물적 자본 피해가 1인당 500달러 발생하면 평균 1,520달러 정도의 인적 자본 손실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해당 국가의 1인당 GDP는 약 8% 감소하며, 공장 내부 온도가 상승할수록 생산성이 2~4%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경고에 해당한다. 특히 폭염 일수가 하루 늘어날 때마다 미국에서는 약 3,000명의 사망자가 추가되며, 29도를 넘는 날에는 범죄 발생률이 평균보다 약 9% 증가한다는 통계도 제시된다.
문제는 폭염이나 산불의 피해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경험하고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가 경제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빈곤층은 기후 위험이 높은 지역에 몰리게 되며, 이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고착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적응 자금 문제뿐 아니라, 정확한 정책 목표 설정과 효율적 자원 할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를 갖는다. 하지만 기후 위기로 인한 종말론적 프레임 대신, 박 교수는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EU, 미국, 인도 등 여러 지역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탄소 감축이 진행 중이며, 특히 EU의 탄소배출량은 최근 30% 가까이 감소했다는 데이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1.5도 목표 달성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1도 또는 0.5도라도 지구 평균 온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너무 더워서 시험을 망쳤다"라는 말이 핑계가 아닐 수 있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험 성적, 노동 생산성, 건강, 범죄율, 학습 능력 등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 시나리오나 극단적 재난을 넘어 작은 변화가 반복되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느린 연소' 개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다만 우리가 아직까지도 이를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수출과 중공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발전해 온 한국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다. 부산의 경우 최근 10년간 평균 기온이 1.9도 상승했다는 사실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국가 단위의 정책 수립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수준에서의 적응 전략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경고다.
박 교수는 경제학자답게 비용-편익 분석 기반 정책 설계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시민과 독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치 참여가 실제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1도의 가격』은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바라보는 책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경제·교육·건강·정치·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드러내고, 통계를 통해 숨은 비용을 밝혀낸다. 극단적인 경고도, 무감각한 낙관도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희망'을 제시한다. 기후변화는 '누군가의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