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잊혀지지 않을 권리
공혜정 지음 / 느린서재 / 2024년 10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느린서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미안하다... 몰라서... 외면해서... 도와주지 못해서...
우리 모두 아이 앞에서는 죄인이었다.
영화 [미쓰백], [고백], [마더], 그리고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의 공통점은? 바로 아동학대를 다룬 이야기라는 점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8,522건으로 전년 대비 5.2% 증가했으며, 이 중 25,739건이 실제 학대로 판단되었다. 학대 행위자의 85.9%는 부모였고, 학대 발생 장소의 82.9%가 가정 내였다. 또한,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44명에 이르렀다.
<잊혀지지 않을 권리>의 저자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2013년 발생했던 ‘울산 계모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의미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저자는 '하늘로 소풍 간 아이'라는 부제를 단 '울산 계모 사건'을 통해 아동학대의 참상과 가해자의 가벼운 형량에 분노해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연대로 힘을 얻어 10여 년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2018년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활동이 단순한 분노가 아닌, 사랑받고 자라나야 할 아이들을 위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꿈에서 비롯됐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저자는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학대로 고통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런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p.17
2013년 10월 24일 오전 8시 30분경, 이날은 초등학교 2학년 서현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다음 날이면 울산에서 인천으로 전학을 가야 해서 소풍 가는 이날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박상분(가명)은 아이에게 전날 단골 미용실 원장님께 작별 선물로 받은 2만 원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아이가 그중 2,300원을 헐어 젤리 과자를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고 하자 박 씨는 "너 같은 X은 소풍 갈 자격이 없다"며 닥치는 대로 서현이를 때렸다.
p.43
2014년 3월 11일 울산지방법원 101호 법정. PPT를 이용하여 길고 긴 기소 내용 설명을 마친 박양호 검사는 계모 박씨가 앉아 있는 피고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였다. 박 검사는 제자리로 돌아온 후 나지막하지만 힘주어 말하였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울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법정을 뒤흔들었다. 계모 박씨는 비틀거리며 퇴장했다. 우리는 그날 호송버스를 붙잡는 대신 떠나는 버스를 향해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가 죽었다. 맞아서, 굶어서, 부모에게…” 참 서글픈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학대받다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살아 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으로,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당연히 사랑받고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굶어 죽고, 버림받아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실제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외면해 왔나? 이 책은 초등학생 서현이의 사례로 가슴 아픈 현실을 일깨워 준다.
수년간 학대당하다가 결국 갈비뼈 16개가 부러질 정도로 맞아 숨진 아이, 그러나 가해자인 계모는 “죽을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고, 살인이 아닌 다른 죄명으로 몇 년의 형량을 받을 거라는 말이 오가는 현실. 그보다 더 참혹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이 아이의 구조 요청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12년간 아동학대 사건을 추적해온 공혜정 대표의 법정 기록을 담고 있다. 구미, 아산, 울산, 창원 등 전국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아동 사망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에게, 반복적으로 죽어 나가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p.133
2018년 8월 17일 무덥던 여름날, 서울시 관악구의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갓난아기 옆에 짧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허민영. 민영아 정말 미안해. 잘 지내고 정말 미안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줘.
사흘 후 민영이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보육원에서 민영이는 잘 울지도 않았고 혼자 가만히 앉아 그림책을 보거나 스티커를 주면 조용히 잘 노는 아이였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의사 표현도 잘했으며 애교도 많고 잘 웃는 아이였다.
p.134
입양 9개월 후인 2021년 5월 8일 오후 6시. 민영이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뇌의 2/3가 손상된 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민영이의 양부 서 씨는 아동학대중상해죄로 긴급 체포되었다.

2023년만 해도 44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졌고, 가해자의 86%는 부모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법은 여전히 가볍고, 법적인 대응 구조는 너무나 늦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읽다가 여러 번 책을 덮었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진실을 다시 들춰내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잊혀지지 않을 권리>는 아동학대의 참상을 알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고, 그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이들을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처럼, 아이들이 가진 ‘잊혀지지 않을 권리’이지 않을까?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