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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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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독일 작센주의 작은 도시, 콜디츠(Colditz). 1046년 처음 기록된 이 지명은 한때 ‘차가운 시내 곁의 마을’을 뜻하는 평범한 단어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이 지명은 전 세계가 기억하는 “감금과 자유, 저항과 생존의 상징”으로 변했다.
독일군은 이곳의 성을 ‘Oflag IV-C’라는 이름의 포로수용소로 개조해 연합군 장교들, 특히 ‘가장 다루기 어렵고 탈출을 반복한 인물들’을 가두었다. 이후 콜디츠는 “영웅들의 요새”라는 신화로 포장되었지만, 벤 매킨타이어의 『콜디츠: 성의 포로들(Colditz: Prisoners of the Castle)』은 그 신화를 정면으로 해체한다.
전통적으로 콜디츠는 ‘탈출의 전설’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그들은 정말 모두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과 허영, 죄책감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평범한 인간이었을까?”라고 묻는다.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완벽한 장교’가 아니라, 두려움과 자존심, 배신과 연대 사이를 오가는 인간 그 자체였다.
탈출을 의무로 여긴 팻 리드, 전후 정치인이 된 에어리 니브, 장애를 딛고 상징이 된 더글러스 베이더, 그리고 감시자이면서도 인간적 양심을 지키려 했던 독일 간수 라인홀트 에거스, 동맹군 내 인종차별에 맞서야 했던 인도 의사 비렌드라나트 마줌다르까지—그들의 이야기는 전쟁보다 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콜디츠』는 “영웅의 신화”를 벗기고, “전쟁은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인간을 드러낼 뿐이다.”라는 매킨타이어의 일관된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진짜 얼굴’을 비춘다. 또한 콜디츠성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전쟁 속의 작은 사회였다.
국적과 계급, 정치 성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인간적인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들은 굴을 파고, 변장하고, 위조 신분증을 만들며 탈출을 도모했지만, 동시에 연극을 공연하고, 언어를 배우며, BBC 라디오를 몰래 청취했다.
탈출은 단순히 ‘감옥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 저항’이었다. 매킨타이어는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감금당해도 상상력까지 가둘 수는 없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의 감옥 대신, 불안과 경쟁, 정보 과잉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콜디츠의 포로들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상상력의 힘’을 상기시킨다. 책 후반부에서 독일 제국이 붕괴하자 포로들은 오히려 심리적 혼란에 빠진다. 해방을 눈앞에 두고, 몇몇은 희망에 무너진다.

저자는 “당신이라면, 그 감옥에서 어떻게 살았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상상을 넘는다. 오늘날 우리 각자도 보이지 않는 ‘콜디츠’ 속에 갇혀 있다—경쟁의 틀, 사회의 위계, 불평등, 두려움 등등.
이 책은 그 모든 벽 앞에서 묻는다. “당신의 자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처럼 깊이 탐구하는 이야기는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과거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권력과 불평등 구조 속에서도 반복되는 인간의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극한 속의 연대와 이기심, 존엄과 타락이 교차하는 방대한 서사는 전쟁을 ‘거울’로 삼아 지금의 사회와 인간을 비추게 한다. AI와 전쟁, 정보와 통제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콜디츠는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콜디츠(Colditz)는 더 이상 독일의 한 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 우리가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벤 매킨타이어는 이 책을 통해 묻는다. “당신의 콜디츠는 무엇인가?”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