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사실상 "아조변이"는 변이성의 대부분이
수정이 일어나기 전에 영향을 받은 부모 개체의 밑씨나 꽃가루또는 둘 모두로부터 나타난다는 내 견해를 지지해 준다. 어찌되었든 이런 사례들은 일부 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변이가 생식활동과 반드시 관련될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9~10쪽)

어떤 나라에서는 처진 귀를 가지지 않은 사육 동물은 단한 마리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귀가 처지는 것은 이들이 위험에 거의 처하지 않아 귀의 근육을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럴듯하다. (11쪽)

 39. 흰색 털을 가진 수컷 고양이일 경우 유 전적으로 청각장애를 지니는데, 두 눈이 모두 파란색일 경우 60~80% 정도는 청각장애이다. 한 눈만 파란색일 경우에는 30~40%만 청각장애를 지닐 뿐, 나머지는 정상으로알려져 있다.

사육가라면 유전적 경향성이 지니는 견고성에 대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즉,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만든다는 점은 이들에게 원칙과 같은 신념이다. 이 원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이론가적인 학자들뿐이다. 

 어떤형질이는 형질 하나하나의 유전은 규칙에 따르며, 유전되지 않는 형질은 변칙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러한 주제 전반에 대한올바른 견해일 것이다.(12~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한 기회에 우연히 선물을 받게 되었다.
어떤의미에선 일종의 물물교환일 수도 있다.
종의 기원을 완독하고 싶다는 야무진 계획을 가졌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기어코 읽었으되 순식간에 휘발되어 아득해지기도 했다.
다윈이 요약본으로 적어낸 것만도 방대한 양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첨삭되어 초판에 있던 3878개의 문장 중 75% 가 한번 이상 재손질 되었다고 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어떤 로망이었다.
그러나 쉽진 않았다.
책을 읽으며 앞뒤로 해설과 용어를 찾아보는 것도 사실 번거로웠다.
이 책은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마치 참고서처럼 쪽집게 선생의 비급노트처럼 딱 궁금할 부분의 설명과 출처가 바로 옆에 있다.
그래도 쉽진 않다. 다윈이 살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읽다보면 뭔소린가 싶은 구석도 있다.

해설과 참고가 바로 옆에 있으니 읽을 양도 부쩍 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 오래 읽겠지만 그래서 어느 지점에선 머리도 아프겠지만..이렇게 읽으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머리 속에 작은 무엇이 남을것도 같다.
이제 시작이다.
혁명가 다윈을 만나보자.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다름을 알려주고 달라지는 과정을 다윈은 설명한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윈은 혁명가이다. 그래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은 어렵다. 혁명 전후 상황을 알지 못하면 혁명 그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종의 기원』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들이 나오는데 상당수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윈 시대에 사용했던 생물학 관련 용어들이 지닌 의미를 잘 모른다. 왜 다윈이 그런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쉽게 읽을 수가 있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잘 모른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조사 결과가 인용되어 있는데, 사람 하나하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문단 문단은 읽어갈 수 있지만, 문단과 문단과의 연결이 매끄럽지가 않다.

26 변이성은 변이와 다르다. 변이성은 변화하는 상태나 특성 또는 변화하는 정도를의미하며, 변이는 변화하는 사물의 한 가지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혈액형 은 A형, B형, O형, AB형으로 구분하는데, A 형, B형과 같이 하나하나의 사례는 변이라고 하며, 이들 전체를 아우르는 혈액형 모두는 변이성이라고 한다. 다윈은 변이성과 변 이를 『종의 기원』에서 구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것이 바로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빛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 그러니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최단 거리라는 것을 빛이 알고 간다는 것인데, 어떻게 빛이
‘아느냐. 이 문제는 철학적인 용어로는 텔로스Telos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텔로스는 목적,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설명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성에 의존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학적 사고란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전체적인 틀이 형성되어가는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이 언어와 공상이라는 주장 외에 수학이 논리‘라는 주장은 이미 짚어봤습니다. 여기서 수학이 논리학만은 아니고, 대부분의 학문이 논리를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이 관점을 비판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수학자들 자신도 수학=논리라는 관점을 표명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과 상당히 상반되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깰 때는 이 일부터하는 것 같습니다.

왜 수학자들이 그런 편견을 갖게 될까요?

‘수학은 확실하다‘는 데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는 물론 오류입니다. 저는 수학의 확실성은 그다지 중요하지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학문은 항상 진리를 근사해가는 과정입니다.
과정입니다. 따라서 가끔 오류가 나오거나 나중에 교정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않습니다. 기계에 약간 이상이 있더라도 고치고 개선해면 되는 것입니다. 수학을 선험적인 지식으로 인식하게 되면수학에 약간의 흠만 있어도 다 무너져버릴 것으로 오해하기십상입니다. 확실한 앎‘ 에 대한 집착이 불러들인 일종의 환상이죠. 실제로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수학적인 증명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게 무슨 특별한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학은 공리로부터출발하여 순수 논리만 적용해서 결론을 얻어내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앞에서 강조했듯이 가정에서 논리적인 결론으로 가는 것은 어느 학문이나 쓰는 개념적 도구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처음으로 (공리公理‘ 라는개념을 창안하여 도입한 이론입니다. 이 ‘공리‘ 라는 단어를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증명하지 않고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때, 이를 기초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할수 있다. 공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개될 내용도 전혀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며, 이 공리가 맞다고 상정하면 앞으로 나올 결론들도 맞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이것이공리적인 사고체계입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을 통해 기하학에 대한 5개의 공리를 만들고, 그다음에 그공리만 이용해서 여러 가지 증명을 전개했습니다. 가정과 공리만 사용해서 결론을 이끌어낸 이 책은 당시 서구세계에 굉장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의 신화
쟈크 브로스 지음, 주향은 옮김 / 이학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 인간, 퀴클롭스 그리고 이들이 상기시키는 판 신, 이 3자는 숲과 더불어 인간 세계를 감싸고 있는 야생적 자연의 의인화이다. 따라서 중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무 인간은 나무 신의 마지막 화신인 것이다.

성위베르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대부분이 거룩한 전사들인 브르타뉴의아르모리카 개종자들의 이야기와 유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 받은 사냥꾼의 전설과도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두 이야기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위베르는 성 금요일에 사냥을 한다 - 시작된다 할지라도 그 전개 과정은 같지 않다. 즉, 사냥꾼은 불길한 열정을 포기하고 갑자기 그의 이교도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하느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을 교화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냥꾼들은 생명을 존중하는 야생의 성인들을 자신들의 주인으로 받들게 된다.

그리스어로 포이닉스Phoenix는 페니키아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말은 자줏빛(왕을 나타내는 자줏빛)을 뜻하며, 동시에 종려나무 대추야자나무와 불사조를 가리킨다. 그런데 전설적인 이 새는 그리스 신화의 향료에 관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불사조는 몰약과 향을 가지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불사조는 (자신의 부리로 나른) 그 재료들로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서 스스로를 태운다. 즉, 이 새는 1천4백61년을 한 주기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타 죽는다는 것이다. 1천4백61년이라는 기간은 "한편으로는 태양이 지는 것과 동시에 출몰하는 시리우스(소티스)가 뜨는 것과 일치하고, 또 한편으로는 태양의 출현, 즉 닐Nil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과도 일치" 한다. 
이것은 대년과, 다시 말해 부활과우주의 순환적인 재생의 회귀와 관계된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적절하게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 라고부른 양상들에 따르면, 야생sauvage 이란 말은 "숲"을 뜻하는 실바silva에서유래하므로 나무들은 살아 있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는 민속을 통해 매우 막연한 모습으로밖에남아 있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다소 철 지난 미신처럼 보인다. 그러나 회의주의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것 자체가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