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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평점 :
#1. 목차
황정은 - 상류엔 맹금류 (황현경 - 터프해라)
조해진 - 빛의 호위 (박인성 - 감각의 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금정연 -with or without 쿤)
최은미 - 창너머 겨울 (전소영 - 창 안쪽 상흔)
기준영 - 이상한 정열 (이재원 - 뛰고 또 다시 뛰는)
손보미 - 산책 (신샛별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
최은영 - 쇼코의 미소 (양재훈 - 그들은 다시 만나야한다)
각 작품 뒤에 작가의 말과 해설.
작품을 낳은 작가들의 필력이야 더할나위없이 건강하고 뜨겁지만, 그 작품의 해설을 적어내린 이들의 역량 또한 대단했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특히나 금정연의 해설과 전소영의 해설은 잘 쓰여진 수필이거나 간질거리는 편지같아서 웃음을 지은채 읽어내리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렵지 않은 말들로 작품의 정서나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 쓰여지는 해설은 잘 만든 브라우니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해설자들의 역량을 운운하다니, 좀 우습지만 사실 작가들의 작품은 기대감과 어느정도의 가늠치가 있었다면 해설자들의 해설은 뜻밖의 당첨선물같은 느낌이었으니 더 생생하게 남았는지도 모를일이다.
우리 문단은, 참 건강한 작가들과 쌈빡한 평론가들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한껏 뻐근했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2. 밑줄
- 답이 없다고 질문을 버리면 그 보통의 존재는 마침내 괴물보다 더 위험해진다. 그런 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도 만드는 게 다름아닌 '나'들이다. (p41 황현경의 황정은 해설)
-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p49 조해진 빛의 호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소문자 역사 (history)의 형태로만 기록될 수 있는 삶에 다가서기 위한 최소한의 입구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가. 문제는 그 입구에 들어서는 자의 불안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 서술자 '나'의 두 눈이 집안의 어둠 속에서 그저 암순응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그러한 희미하고 불확실한 감각에 스스로를 내맡길 때에만 비로소 구체화되는 삶의 순간이 존재한다. (p72~73 박인성의 조해진 해설)
- 오래전 내가 쿤을 만난 날도 꼭 이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를 모두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날, 거울에 비친 나는 잘못되어 보일 만큼 불완전했고, 그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108 윤이형 쿤의 여행)
- 상흔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지닌 가장 진솔한 공감의 장소라는 것을 말이죠. 고통(passion)이 공감(com-passion)의 가장 순수한 매개라는 건 외롭고 슬프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예요.(p169 전소영의 최은미 해설)
- 사건의 진실이 하나일 때에도 사람의 진실은 여럿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만들어낸 관계에 오해와 의심과 해명이 끼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36 신샛별의 손보미 해설)
-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p224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다. (p260)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p261)
-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p271)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p286)
# 3. 영양가 없을 댓글
*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 황정은에 대한 기대감은 늘 크다. 그의 이름이 주는 즉각적인 느낌은 거침없음이다. 감추고 숨기며 말랑하게 돌려 이야기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스러움이 보인다. 황정은의 ettitude인 것이다.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녀의 것으로 두는 것이 예의이다. 물론 그 영역을 깨뜨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기대감은 곧잘 실망이나 질투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잔영이 너무 깊에 남은 까닭에 기대감은 더없이 커졌고 사실은 살짝 질낮은 숨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저급한 독자의 조급한 기대감인것이다.
CREEP을 불렀던 RADIOHEAD를 떠올렸다. CREEP의 성공으로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고 아마도 오래도록 같은 노래를 불렀을게다. 자신에게 명예를 안겨준 노래..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High and dry나 Just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노래의 주인으로서 어떤 평가도 없이..상류엔 맹금류를 쓰는 황정은의 모습과 톰 요크의 모습이 부채의 앞뒷면처럼 번갈아 펄럭거린다. 시리다.
*조해진 - 빛의 호위.
:조해진, 이 책을 읽으며 이름을 적어놓은 젊은 작가다. 눈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 마치 내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투영된 내 표정을 읽어낼 줄 아는 것처럼..그는 자신의 작품의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대단하고 위대한 삶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였다고요.'
대단하고 위대하지 못한 삶들의 부딪힘과 그 산란이 엮어가는 빛의 세계, 그 대단하고 위대함을 그는 보고 있는 것일까? 야무지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은, 냉철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작가를 만나게 된것이 더없이 좋다.
누군가 몇권의 책 제목을 말해주며 "참 좋다~"는 내 말에 격하게 동의해주어 더 좋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은 때는 이렇게 보석같은 작가를 발견하는 일일게다.
오래도록 입안에 굴리는 말..디아스포라..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 참신한 이야기. 윤이형의 서사력. 마치 기담인양 현실인양 현실과 은유의 미묘한 간극을 오가며 적절하게 끄집어내는 내면의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쿤'은 무엇일까?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정체불명의 단어. 단순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뭔가 하나 안풀리면 골똘히 생각을 꽂아두고 꼼짝을 안하게 되는..바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쿤은? 언제쯤 만난거지? 나는 쿤을 떼어내야하는건가? 이녀석을 떼어두고 휘적이면서라도 내 힘이란걸 믿으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이사람 좀 용감한데? 이런 생각들이 문장을 따라 흐른다.
마치 잘 쌓여진 산성의 담을 따라 기어가는 오래묵은 구렁이처럼 스멀스멀..
* 최은미 - 창 너머 겨울
:장난기였겠지만, 산울림의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한참을 흥얼거리다 책을 폈다. 책 속의 온도는 낮다. 건조하고, 햇살이 쨍하다. 북서계절풍이 부는 그런 느낌.
아주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작품을 위해 적절하게 쓰이고 자신이 쓰임받은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빛나는 글이다.
억지로 안간힘을 써서 짜낸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은 서늘하지만 쨍한 햇살 덕에 서럽기만하지는 않는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피식 웃음이 터지는 대목까지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떨잠을 사고 싶어졌다.
*기준영 - 이상한 정열
: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담담하다는 건, 담백하다는 건 이런것이겠구나 했었다. 감정의 과잉이나 너절한 감정의 소비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는 힘. 자칫 맥이 풀려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단단히 조여 쥐는 이야기의 긴장. 기준영의 글은 그렇다. 노련한 사공이 젓는 호젓한 나룻배처럼 한창 일렁이기도 하지만 뒤집힐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뱃사공이 어찌할 것인가가 가늠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노하우는 비범한 무엇이니 말이다.
다만, 그를 믿고 그의 배에 오르는 것,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비경에 감탄하며 혹은 눈물을 찍어내며 그의 풍경을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쌈빡하다는 말..이럴 때 쓰는거지 싶다.
*손보미 - 산책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책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된다. 여러 리뷰어들이 그녀의 경쾌하고 맑은 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듣는다. 호기심은 생겼으나 그다지 호감을 갖진 않았지만, 이렇게 만나는 손보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에 해설을 맞은 신샛별은 '손보미가 누구보다도 관계의 속살을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딱 떨어지는 평이다. 진부하거나 식상한 관계의 설정이 아닌 관계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투영해내는 힘이 있다.
어정쩡하게 펼쳐놓은 관계 속의 갈등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펼쳐놓고 조목조목 짚어가는 느낌이다. 이거는 이거랑..저거는 저거랑..그래서 말이지..하는 식으로..
그래서 화려하거나 거창한 문장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좋을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담요'를 읽고 많이 울었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손보미의 글을 읽고 싶어졌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단정한 진실과의 마주서기란 얼마나 깔끔한 자세인가..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와 쇼코와 나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할아버지와 나의 엄마.
거의 대부분의 글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아니 읽어냈다. 정말 잘 짜여진 구성과 관계.
쇼코의 미소를 필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번이고 다시 되짚어 읽게 되는..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다 읽은 것 같지 않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쇼코와 나의 이야기가 책갈피 어딘가에 전달되지 못한 편지처럼, 엽서처럼 꽂혀있을것만 같아서 말이다. 최은영을 알게 된것은 아주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4.
젊은 작가라서 다행이다. 노련함을 뽐내지 않고, 글 속에서 보여지는 매너리즘도 없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그러나 매끈하지는 않게 그려낸다. 매끈하지 않다는 건 숙련이 덜 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고민하고 품고, 다시 고민하고 글과 함께 살아낸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는 것이다.
축축한 흔적이, 서러운 눈물 자욱인지, 긴 하품 끝에 나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설움과 잠을 헤집고 다녔을 그놈의 글이 제법 단단하고 야무진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아직 한참 더 기대를 갖고 읽을 것들이 많이 나타날테니 말이다.
다음 해에도 개최 될 것이 분명한 축제를 잘 즐기고 돌아서는 느낌이다.
괜찮다. 축제는 또 열릴테니까. 좀 더 뜨겁고 세련되고 젊고 힘있는 모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