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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평점 :
※ 본 도서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 1. 먹을 거리를 믿을 수 없다.
색소를 넣은 고춧가루, 숙성이 아닌 썩은 젓갈, 향신료로 범벅이 된 불량식품,한동안 떠들썩했던 쓰레기 만두, 공업용우지를 넣었다던 라면..심하게는 다른 나라의 일이지만 멜라민 분유파동까지..
조금만 되짚어보면 참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대처방법은, 불매. 그것으로 마무리되곤한다. 하지만 늘상 식탁을 고정으로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대체식품을 찾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유기농으로, 혹은 국내산으로 친환경으로 그렇게 조금씩 주류를 벗어나보기도 한다.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농약이 없는, 지렁이가 사는 밭의 것을 고르려고 애쓰게 되고, 그것이 마치 현명한 주부의 선택인양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나..그 모든 노력들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어떨까?
애써 평온을 찾아가는 식탁에 슬쩍 미소를 띤 채로 수류탄 하나를 던져넣는 손이 있다면 말이다.
# 2.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할 진실
2004년부터 시작된 언론인 마리 모니크 로뱅의 추적(?)은 충격적인 실태를 보여준다.
이미 파괴되어진 토양이 생태계가 어떻게 그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녀는 피해자들의 실례와 기업과 국가의 유착, 기업과 학자들과의 거래, 기업과 기타세력과의 야합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 어느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 앞에 망연자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이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며 실천의 대안을 내놓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총 4부로 구성된 내용들의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커다란 틀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1부 농약은 독이다.
2부 의구심을 생산하는 공장
3부 기업을 섬기는 규제
4부 내분비계 교란물질 스캔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문제제기들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매체들이 이야기를 했었고 적당한 결론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방 작은 동네의 아주머니들도 '무농약 사과'를 이야기하고 '환경호르몬의 피해'를 이야기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그런 피해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몰라도 말이다. 이렇게 많이 퍼져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피해들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주 쉽다.
농약의 피해가 생겼을 때, 그 피해의 근원이 '농약'임을 밝혀내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합적으로 사용된 여러 농약들 중 어떤 것에서 기인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은 '농약'이라는 표현대신 '식물약제'라는 표현을 쓴다.
<농약이라고도 불리는 식물약제>, <식물약제라고도 불리는 농약>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기업과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피해자들..
자, 이제 이 피해자들이 농부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움찔하게 해보자.
농약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이들은 농부가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농약을 쓴 식물을 초식동물들의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그렇게 생태계 상위자리까지 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초식동물들이 먹는 식물의 양은 얼만큼인지, 육식동물이 먹는 초식동물의 양은 얼만큼인지, 내게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농약들이 희석되거나 배출되지 않은 채 그들의 지방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전달되는지를 깨닫는다면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다.
# 3. 수많은 화학물질의 위협속에서 살아남기.
화학물질이 우리들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시행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보면 이는 매우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대량생산과 개발을 위해 제초제가 보편화되고,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가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DDT같은 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에게 사용되었는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휴전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혹은 장티푸스등의 병원균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에게 직접 DDT를 뿌리곤 했었다.
심지어..전쟁과 가난으로 힘겨운 이들은 이렇게라도 병균을 없앨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을 고마워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미 교란이 시작된 생태계와 그 결과로 환경호르몬들이 중세의 흑사병보다 참혹하게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방법은 찾아질 것이다.
더 이상 피해갈 곳이 없는 식탁의 안전을 개인의 노력과 방비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독을 먹고 있다>는 사실과, 그 독들이 해소되거나 희석되지 않고 몸 속에 쌓이며 다음 세대에게 태중에서부터 전달되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4. 빨리 온 만큼 천천히
해충을 빨리 박멸하고 순식간에 대량생산을 해내고, 빠른 농지를 개발한 댓가는 죽음의 식탁이라는 결과를 내어놓았다.
다른 종들을 죽이고 올라온 생태계의 끝자리에서 인간은 자신의 종이 변이를 일으키거나 단종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것이다.
그렇다면..이제 돌려놓아야 한다. 이익과 지배와 통제가 아닌 공유할 수 있는 자연으로 말이다.
국가가, 기업이, 과학이, 그리고 인간이 공동의 책임을 지고 이 과오를 수습해가야만 한다.
무너뜨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되돌리는 시간은 아주 오래걸릴 것이다.
1000조각 퍼즐을 흩어놓고 다시 맞추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 다시 조급증과 탐욕이 편리성이 틈탈 수 없는 규제와 원칙, 견제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누가 해야할 것인가.
감히..
몸 속에 0.000001마이크로그램이라도 농약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자이며 가해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본다.
이 틀에서 자유로울 인류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지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바람을 타고 물을 타고 퍼져 온 지구에 속속들이 배어있는 화학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막연히 조심해야지..이러면 안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연한 의지로 끝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도서다.
전문용어들이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리 어렵지않게 읽어낼 수 있다. 시리즈물로 나온 다큐멘터리처럼말이다.
식사는, 가장 존엄한 일이며, 식탁은 가장 고결한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삶의 기초적인 것이 보장되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웰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길어진 평균수명..건강하게 살아남고 싶다는 건..과한 욕심인건가..책을 덮으며 고민이 시작된다.
결과가 없다는 사실이 위헙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위험을 분명히 밝힐 수 없다는 의미일 때가 많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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