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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 곡예사
곡예사의 삶이라면 그 세세한 사연을 굳이 꼽지 않아도 뭔가 아릿하다. 사는것 자체가 곡예일지도 모를 아슬한 삶의 줄을 걷는다는 다소
감상적인 공감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상승은 그런 곡예사의 이야기다. 실제로 쌍둥이 빌딩 사이를 줄 하나에 의지해 건넜던 실존인물에게 영감을 얻어서 쓰여진 글이라고
한다.

이런 모습이었을까? 걸어야 할 길은 정해져 있고, 건너지 못하면 추락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성공적으로 줄을 건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완벽하지 못한 채 비상의 꿈을 품는 것도 꼭 날아야 한다는 당위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 위에서, 땅이 아닌 곳에 놓여진 꿈을 꾸며 아름다운 하강을, 혹은 완벽한 추락을 이루어 내는 것이 그 목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떨어진다는건, 참혹한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발이 처음 힘을 주었던 가장 건강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일게다.
#2. 집시
곡예사..그 단어만으로도 아릿할진대..집시다.
늘 떠도는 외로운 별들의 노래처럼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집시로서 집시답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다.
가장 천대받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눈동자가 빛나는 건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물결같은 이야기들 때문일게다. 그들의 영혼을 이어주는
이야기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글 사이마다 나는 문득 헝가리 집시 아티스트 <Muzsikas>를 떠올린다.
완만한 구릉이 시작되는 곳에 작은 모닥불, 누군가의 바이올린이 연주되고, 모닥불의 빛을 온 얼굴로 받아낸 표정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낮고 천천히 시작된 노래는 어느 결에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어 구릉을 뒤덮는다.
이런 꿈을 꾸는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상승>

http://youtu.be/Gc-4Fb780Is
그들의 노래를 엿들어본다. 작년엔 내가 사는 곳에 온 적도 있는 팀이다.
# 3. 문득
먼 곳의 별을 보며 떠나고 싶어하던 때가 있었다. Annie Haslam의 Ocean gypsy를 귀에 꽂고 집시처럼 바람을 느끼고 별을
세던 시간말이다. 그 때, 아마 나는 내 자리의 위기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균형을 잃고 흔들리며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저
건너에 반드시 도착해야 하는 당위를 자신에게 설득하면서 말이다
단 한번도 아름다운 추락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시절,
떨어져 내리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못할것이라는 것이 더 두려운 나이가 되어서야 이 아슬한 줄의 건너편에 반드시 가닿을 당위를
내려놓는다. 물론 내려놓은 것들만큼 균형은 더 흐뜨러졌지만..괜찮다.
어차피 저 아래서부터 올라온 것이고, 저 아래에 내가 두고 온 이야기와 노래가 있으니 말이다.
태양의 자리와 나의 자리는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딱, 내 노래가 닿을만큼의 자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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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 |
p.415 |
셜보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멈춘 자세에서 목에 건 음료 병을 꺼내 아래로 떨어뜨리고 그것이 나비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는 균형장대를
내려 줄에 대고 두 다리를 공중으로 차올렸다. 얼굴에 피가 몰려 화끈거릴 때까지 물고나무 서기를 했다. 그러곤 다시 줄에 발을 내려놓고 똑바로
섰다.
셜보는 사방에 펼쳐진
사막을 보았다. 간간이 초록과 빨강이 섞인 백만 가지 색조의 갈색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사막을 보며 아래서 따뜻한 공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거기선 자신과 탁 트인 공간의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그의 뼈대는 튼튼하고 입은 촉촉하고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은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물러났다. 그는 줄 위에 서 있었고 그렇게 서 있는 한 영원히 살 것이었다.

상승
- 작가
- 스티븐 갤러웨이
- 출판
- 문학동네
- 발매
- 2012.06.30
-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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