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철학의 역사에서 필로소피아를 지혜 자체인 소피아와 확연히 구분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영향 때문이다. 그것은 지자를 자처하는 소피스트의 출현과 이에 대한 비판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로소피아라는 말은 그 이전에도 사용되었으며 ‘끊임없이 탐구한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애지자란 끊임없는 탐구로 세상의 사물과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포착해 자기 자신 및 타자와 소통하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애지의철학은 즉각적 결실은 없어도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필로소피아는 바로 과학적 탐구의 모체이다.
‘필로소피아와 에로스 사이의 이 모든 유사점 가운데서 그 어느것보다 중요한 것은 에로스의 활시위를 떠난 ‘사랑의 화살‘이 비가역적이듯이 애지의 과정 역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구 사상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어떻게정의하든, 그 본질은 필로소피아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넓은 의미의 철학은 균형 있는 삶의 지혜를 포함한다. 하지만에로스의 사랑처럼 지를 끊임없이 사랑할 때 필로소피아의 에너지 집중은 고조에 달한다. 그러므로 애인‘의 필요성을 망각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오늘날의 애지자인 과학자들에게 먼 조상이 쓴필로소피아의 문헌들은 ‘탈인간의 신화‘ 이다.
필로소피아의 정신적 유산은 이렇게 오늘날 과학-기술 행위에유전자처럼 스며들어 있다. 철학이 쓴 탈인간의 신화를 과학-기술이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영향력 있는 모든 학문이 이미 오래전에 에로스의 화살만큼이나 강력한 철학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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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방패 한가운데에 지식의 모든 대상을 매섭게 노려보며,
석상으로 바꾸어버리는 막강한 눈초리가 있는 것이다. 여신이 관장하는 일과 방패의 상징은 이렇게 의미적 합치를 이루게 된다. 신화가 전하는 은유에 따르면 과학적 지식은 태생적으로 메두사의 시선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통합은 과학의 지형 도처에서 발견된다. 현대물리학의 통일장이론도, 모든 지식을 연계 통합하려는 통섭(consilience)의 시도도 ‘메두사의 시선‘의 폭을 확장한 것일 뿐이다. 진리를 붙잡아두려는 욕망의 한계를 최대화한 것일 뿐이다. 과학의 탄생에서부터 진리의 빛을 향한 욕망은 메두사의 눈을 갖고자 하는 욕망과 일치한다. 메두사의 시선은 진리의 빛을 통합하고 고정한다.

 메두사의 시선 앞에서 ‘대통합‘ 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통합은 ‘모든 것을하나로‘ 라는 단순함과 모든 것이 함께 조화로운‘ 이라는 아름다움에 더해, ‘전체‘가 ‘여기 있다‘는 장엄함을 가져온다. 이 장엄함에대한 기대가 과학의 시선을 유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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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은 고대로브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현상에 대한 정량적인 기술(記述)의 유히성을 탐색하려는 물리학자들은 메두사의 눈으로 대상을 포착해와다고 본 것이다. 과학자의 매섭고 엄밀한 시선으로 자연을 ‘법치의 조형물로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수정 구슬 안에 명백한자태로 갇혀 있는 법칙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 시선은 시간조차 얼어붙게 한다.
메두사의 시선은 오랫동안 과학자의 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뉴턴의 역학으로 대표되는 고전물리학에서는 시간과 무관한 법칙들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과학적 패러다임은 메두사의 시선이 화석화한 법칙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과학에서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법칙들이 메두사의시선에 붙잡힌 조각상처럼 선호된다. 단순함과 아름다움. 이두 기지는 과학에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프리고진은, 현대의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기술하는 데에 진화적 패턴을 삽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학에 대한 다윈적 관점, 진화론작관점, 생물학적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즉 변화와 시간에 대한 인식이 현대 과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메두사의 시선으로석고화한 법칙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론적 편견에서 해방되는 것이아니라 올바른 편견을 갖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복잡성이지 단순성이 아니다. 환원주의는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환원주의 없이 복잡성을 추구하면 예술이 탄생하지만 환원주의로무장하고 복잡성을 탐구하면 그것은 과학이 된다. 멋진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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