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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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격ㅇ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마지막연>

 

문득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라는 제목을 듣고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와 비슷하려나? 하는 짐작을 했다. 하지만 송경동은 뼛 속까지 한국인이며 노동자이며 시인이며 노래이다. 캄보디아에 입주한 한국업체들이 한국 노동자들에게 하듯 그들의 시위를 진압하고 억압하였다. 기업의 편에 선 한국 정부가 캄보디아 정부를 압박했고, 아니 경제적 손실 운운하며 겁박했고 총기가 발사되고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언론은 귀에 딱지가 앉고 저절로 결말까지 그려지는 빤하고 뻔한 일부 외부세력..어쩌구 저쩌구..

캄보디아의 노동자들이 소리친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의 시는 현장이다. 기륭이고, 쌍용이고,가리봉이고, 캄보디아며 방글라데시이고 베트남이며 세월호이고 경찰서이다.

송경동의 시는 사람이다. 동료이고, 동지이고, 사랑하는 아내이며 어머니이고 청년이며 결국 노동자다.

현장의 한 가운데서 울려나오는 외침이 주변의 어줍잖은 진동보다 힘이 있는 까닭은 여기 있다.

김지하와 김남주의 차이 같은 것.

텍스트화 된 화석같은 노동에 억지로 끼워 넣은 감상의 나열이 아닌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울분과 살아내겠다는 결기가 그려내는 파동. 그것이 힘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념이다.

꿈이다.

꿈이란 것이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겠다는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이것은 송경동의 꿈이다.

도저히 포기가 안되는 현장의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사람답게 살겠다고 몸부림치며 연대하고 투쟁하는 삶.

그 삶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아직은..아직도.

 

그래서 그가 필요하다.

내가 사서 읽는 시집 한 권이 그 어떤 연대의 흔적이 되겠는가마는..그의 시를 읽는다.

그를 기억하며 건강한 노동의 현장을 기억한다. 불의와 가장 첨예하게 모든 것을 내어두고 싸우는 참 싸움.

적당히 재고 따지는 소리만 거창한 싸움이 아닌 진심의 투쟁과 연대를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이었다는 징표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다.

 

 

<문장강화>

 

트럭을 아랫말에 세워두고

어두운 눈길 오리를 헤쳐 올라온 옆방 사내는

 

오늘도 날일로 하우스 아치 세우는 일 마치고 돌아와

아랫목에 언 몸을 젖은 김 굽듯 뒤집으며 끙끙 앓는 옆방 사내는

 

며칠 전엔 고구마밭에 숨은 붉은 말들을 캐내고

배추밭에 남겨둔 얼갈이 말들도 마저 솎아낸 옆방 사내는

 

콩대를 탈탈 털어 한해의 마침표들을 찍고

하루는 볕에 덜 익은 고추표들을 바짝 널어 말린 옆방 사내는

 

쉴 틈이면 처마 아래 줄줄이 곶감 문단을 걸고

일 없으면 뒷마당 빨랫둘에 장문의 무시래기를 널던 옆방 사내는

 

그렇게 날마다 세상의 빈칸 하나씩을 야무지게 쓰고 들어와

밤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자는 옆방 사내는

 

얼마나 단단한 문장인지

얼마나 싱싱하고 유려한 문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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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25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봤습니다..그의 시집을 들면 떨리더군요....

나타샤 2016-02-25 19:17   좋아요 1 | URL
살아있는 시,현장의 울림이어서일까요?^^ ˝나는 아픔이며 고통이며 투쟁이며 연대다˝라고 말해 줄 시인이 또 어디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