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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의 세계사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녀사냥들
정찬일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1.
역사를 말 할 때, 특히나 인간의 역사를 말할 때 다양한 수식어들이 달라붙곤 한다.
문명의 세계사, 진보의 세계사, 계급투쟁의 역사, 권력의 역사, 기타등등
그만큼 역사라는 것은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의 기록같은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보느냐에 따라서 공이 되기도 과가 되기도 하는 그런..
이 다양한 역사의 축은 무엇일까? 아마도 권력투쟁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사회와 걔층의 형성, 인간의 사회구조의 변화는 빠르고 단호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 기폭제 역할을 하거나, 혹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자행된 사건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
비이성의 세계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녀사냥들.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들여다 볼 만 하다.
#2.
1. 소크라테스 재판 - 마녀를 자처한 철학자
2.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 편견 때문에 누명을 쓴 사람들
3. 병자호란과 환향녀 - 살아 돌아온 죄
4. 중세 마녀사냥 -사회위기에서 탄생한 마녀들
5. 드레퓌스 사건 -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6.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 조작된 유언비어가 낳은 집단 광기
7. 매카시즘 - 빨갱이 사냥에 눈먼 미국
8. 홍위병과 문화대혁명 - 권력자의 사냥개가 된 십대들
9. 캄보디아 킬링필드 - 야수가 된 이념의 노예들
10. 르완다 대학살 -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최악의 비극
열 개의 사건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희생되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리되어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며 여러 이야기에 인용되는 드레퓌스 사건과 매카시즘. 이 대목에 가장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과거에 우리는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실제로 보아왔으니 말이다.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 위정자들이 내미는 카드는 권력유지와 연관되어질 수 밖에 없다. 여론을
하나로 모아 모두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계략.
이성적으로 따지고 드는 것이 반역이 되어질만큼 광기와 선동으로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야만이
자행되는 것이다.
그렇게 공동의 목표를 제압하고 나면 남는 것은 권력자들의 공고한 기반과 살아남은 자들의 자책과
자기 연민이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하며 재갈을 물리고 공동의 적을 만드는 과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잔인해진다.
집단 히스테리.
강제된 彼我관계 속에 두려움은 타겟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하고, 점점 커지는 두려움은 분노로
왜곡되어 공동의 적이라 규정되어진 것에 강력한 거부를, 잔인한 댓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정과 혼란으로 위기에 몰린 위정자가 택하기에 참 좋은 먹잇감이며 관심을 돌려 버리게 하는 좋은
묘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조작되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에 연루되는 희생자들은 시간이 지나 그 누명이 벗겨지기도
하지만, 이미 어디에도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의 소모품이 되어지는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이단이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근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발화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사를 잠시만 들추어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거나 불이익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분단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오랜 시간 숨죽여 살아온 습관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승리의 기억보다 패배의 기억, 굴욕과 침탈의 기억이 많은 사람들은 칼자루를 쥔 사람들 편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고..그런 사람들의 움직임을 활용한 이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틀을 들고 무고하거나 말거나 잡아들이고 조작하곤 했다.
수십년이 지나서 무죄가 되고, 석방이 되고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돌을 던졌던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 이성을 이야기하고, 본질을 탐구했다.
이론과 기술이 발달하고 좀 더 편리한 세상, 좀 더 발달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인류가
걸어온 그 길목마다 놓여진 공범의 역사, 비이성의 마녀사냥은 오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자행될 마녀사냥은 어쩌면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 대상이 사회로부터 점점 타자화되어지는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며, 진행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공동의 선. 공동의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건 어쩌면 허무한 메아리이거나 뜬구름같은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정의'라는 것이 힘을 믿고 싶다.
마녀사냥의 광풍에서 이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버리고 싶진 않다.
가장 가까이..우리는 세월호 가족들을 몰아세우는 광기를 본다.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거라는 신탁을 듣기도 했다.
위기의 시간을 살고 있는 분명한 증거일게다.
반복되어지는 역사.
온통 제자리 걸음인것 같은 역사는 그래도 발전중이라고..인간의 정의도 진화중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아직은 이성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