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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1. 연애소설
여덟개의 단편이 빨간 표지 뒤에
숨어있다.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자니 붉은 이불을 덮어쓴
채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랑의 이야기. 누구나 한번 쯤은 상상해보거나
기대해 볼만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미친 사랑일 수도, 못된 사랑일 수도, 나쁘거나 아쉬운 사랑일 수도 있다.
어찌보면 한 여름 해변가에 누군가 차려놓은
화채가 그득한 식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박화채가 들어있는 붉고 둥근 그릇과 참외가
담겨있는 노란 그릇, 갈변이 시작되어버린 사과가 들어앉은 초록 그릇...
화채가 담긴 그릇이라는 공통점과 저마다 담고
있는 맛과 형태가 제각각인 다른점을 품은 달콤하고 시원한 한여름밤의 꿈같은 글들이다.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그녀의 등단작이라는 첫 작품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보다 오래 들여다 보았다.
치과의사의 자위장면을 글로 옮겨 적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나'의 이야기. 이 어이없는 사건을 들여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사랑이랄지, 애정이랄지, 욕망이랄지 하는 것의
근저에 깔린 것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오래 전, 그러니까 누구나 한번쯤 소설이라는
걸 써보고 싶어했을만큼 낭창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끄적거리던 소품 중에 키스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아무데도 발표한 적 없고, 발표할만큼의 뭣도 안되는 말 그대로 소설나부랭이였다.
내 글에서 '나'는 수많은 남자들과 밤을
보낸다. 다양한 남자들과 다양한 관계들을 겁없이 갖지만 결정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키스는 하지 않는다.
숨을 섞는것 까지 허락할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그 때 허락하겠노라 나름의 규칙을 품은 것이다.
사랑이란 육체적인 자극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자신의 입술과 혀를 단속하는 머저리같은 여자의 쓸쓸한 연애이야기였다.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쩐지 그의
자위를 글로 써내야하는 그녀.
한시간에 원고지 10매. 그의 마스터베이션이
끝날 때 같이 끝나는 기록.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서로의 빈 눈동자를
확인하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주시하는 것, 그의 동작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보고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암수 한쌍의 몸놀림같은 포르노동영상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묘사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실제로 해보진 않았지만 문득 해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눈 앞에 실제 이성이 있고 그의 마스터베이션을
본다. 눈도 깜짝이지 않고 글로 써낸다. 이 숨막히는 시간의 흐름과 절정으로 치닫는 남자를 바라보는 것에서 그녀는 어쩌면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지 되묻기도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사랑의 개별성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의 본질을 마주볼 수 있느냐는 물음과 어쩌면 저마다의 사랑은 저마다의 마스터베이션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절절한 편지로 나누는 사랑, 상대를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랑,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뒤엉키는 사랑, 이 모든 것이 사랑이며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미쳐버려야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사실
오해였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랑에 미쳐가고 중독되어가고 그렇게 쓸쓸한 마스터베이션을 공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마주하고 글로 적어내는 것. 거기에
연애소설의 씨앗이 있는지도 모를일이지 않는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형태로 활동을
하든, 사랑은 쓸쓸하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
내가 쓰다 버린 그 여자는 이제 키스를 나눌
상대를 찾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 한은형.
글을 잘 엮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면 응당 글을 잘 엮어내야하겠다마는..그것이 현실과 욕망의 접점일 때, 어려움은 시작된다.
적당히 눙치며 넘어가는 글이 될 수도 있고,
너무나 적나라해서 때로 역겹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뜨아해지기도 한다.
한은형은 적당히 눙치지 않으며 노골적인가
싶지만 사실 은밀하다. 이야기의 중간중간 고임돌처럼 괴어두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적절한 환기, 혹은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배치와 순서에 능하구나. 먼저 나올 이야기와
나중 나올 이야기의 짜임이 억지스럽지 않게 연결되어진다. 심지어 서로 다른 작품 사이에 나온 이야기가 마치 하나였던 듯 주거니 받거니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애정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뒷표지의 말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정말 그런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갖는 함의가
있을까? 말 그대로 세계의 움직임과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일까? 애정을 품는 순간 세계 밖으로 떨어져 나와 그 각박함과 파렴치함을 명확하게
보지 않게 된다는 말일까?
어쨌거나 상관없다. 기대야 할 무엇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기이거나 욕심이 아닌 애정이라면 손해본들 아깝지만은 않을것도 같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도 저마다의 세계를 세우고
부수기에도 바쁘지 않겠는가..
이 연애소설은..
어쩌면 끈적한 한여름의 사랑을 통과한 서늘한
가을같은 고독을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3.밑줄과
..
살려내면 뭐할까 싶은 게, 또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슬픈 일이지 않습니까? (p33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그래도 환자들은 소리를 질렀고,
그럴 때마다 움츠러 들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고통은 아주 잠시 동안만 정점에 머무른다는 것을. 물은 백도에서 끓지만 곧 식는다는 것을.(p60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개 같군' 이라는 말은
다르게 읽혀야 해. 그걸 '좆같다'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야. 시간이 흘러도 남는 작품은 운이 좋아야 하는거야. 다음 시대 사람들이 어떤
작품들을 좋아할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넌 알겠니?"
기원은 현재의 행복과 평안을
믿는 쪽이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작품보다는 물건이었고, 평가보다는 시장이었다. (p73 그레이하운드의 기원.)-표절사태를
바라보는 한마디처럼도 읽혔다.
하나씩. 그녀를 위해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싶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시차에 대해 생각한다. 세계지도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태평양을 단축시킨다.
샌프란시스코 만과 한국 사이에 있는 일본도 지도 안으로 접어 넣는다. 나는 그녀와 가까워진다. 나는 그녀의 지팡이를 녹여 먹는다. 먹고 싶다.
먹고 싶었다. 깨물지 않는다. 잃어버린 미래.(p.110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사막을 운전하는 일은, 비행기를
몰거나 배를 모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어디에도 있었으므로 어디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운전하는 사람의 손에서 길이
생겨났다. 내가 본 것은 바람이었다. 모래로 변한 바람이었다. 사막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경계를 알 수 없었고, 갈생이었다가 붉어졌다가 갈색이
되었다. (p134 붉은 펠트 모자)
그녀는 사회의 언어를 벗어나는
게 좋았다. 그 자유로움과 무질서 속에서 그녀는 최소한의 중력만을 느끼며 걸어다녔다. 연인들은 완강한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 액체 같은 세계로
그녀를 데려가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언어는 남아 있었다. (p163. 연인형 로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