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동시..어제 내내 SNS를 비롯한 여러 지라시급 뉴스들의 먹잇감이 된 시집이다.
전량 회수라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고, 잔혹동시보다 잔혹하게 달린 댓글을 본 아이가 많이 울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어머니가 시인이라고..
어쨌든..시의 예술성을 진단하기 위해 사람들을 벌떼처럼 달려들어 물어 뜯고 분해하기 시작했다.
시를 쓴 아이와 삽화가, 출판사, 부모 아이가 다닌다는 학원까지..뜯을 수 있는 건 모두 뜯어댔다.
간혹 옹호하는 글들도 보였지만. 이 역시 자신의 시각이 범상치 않음을, 혹은 너그러움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심리가 눈에 뜨여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만큼 역겨웠다.
하나의 현상에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사람들..어제 우리나라에 동시를 염려하고 관심있어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실, 이보다 잔혹한 글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필자가 어리지 않았다..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자가 말야..어디서 그런.." 으로 시작하는 말을 꺼내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다면..지금의 양태는 무엇인가? "아이가 말야..순수하고 맑아야지 .."하는 식의 틀에 우겨넣으려는 건 아닌가?
이런걸 아이들이 보게 되면 악영향을 끼칠거라고..걱정하는 목소리.
이보다 더 험악하고 리얼하고 잔혹한 만화들을 아이들이 안볼꺼라고 생각하나?
티비에서 방송되는 만화들 중에도 피가 튀고 머리가 잘려나가고 장기를 꺼내버리거나 폭발하는 장면은 우습게 볼 수 있다.
늦은 시간 19금이라는 경고표시가 있는 것들은 아이들이 안볼까?
어릴 때
나는 뭔가 타는 냄새를 좋아했다. 종이를 태우고, 풀을 태우고, 벌레들과 머리카락, 엄마가 아끼는 스카프, 구두..
그 중 제일 흥미로운 건 곤충을 태울 때였다.
비슷한 듯 다른 냄새.
작은 곤충의 몸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부위들의 서로 다른 냄새들.
초를 켜고 어슬프게 쥔 핀셋으로 부분부분을 떼어내 태워보곤 했다.
그거 아나?
산 것과 죽은 것의 냄새가 다른거.
열두살의 딸아이가 기이하다면 기이하고 잔혹하다면 잔혹한 행동에 우리 엄마는 뭐라했냐면..
"너는 벌써 세상이 보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내보일 이유도 없고 그만하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그건 내 식의 세상 탐구법이었고 엄마는 다치지 않게 지켜봐주었다.
자라서 날이면 날마다 벽제 언저리를 배회하다 사람 태우는 냄새를 묻혀올 때도..
저마다 갖고 있는 잔혹하거나 기이한 구석이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건 아니다. 사람과 같이 자라는 것이다. 아직 덜 여문 탐색을 미리 드러낼 이유도 없고 이러쿵저러쿵 단죄할 필요도 없다.
그 역시 인간성 어딘가에 자리 잡은 요소인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겸사겸사..날이 날이니만큼..
-엄마, 어릴 때 나는 시 같은 거 안썼어? 어떤 애가 엄청 잔혹한 동시를 썼대.
-아이구 그랬대? 너는 그런 재주 없었어. 벌레만 쪼각쪼각 잘라서 태웠지
-아쉽네
-아쉽지..
그런 아이가 있었다.
그런 아이도 있다.
요 지점까지가 적정선이 아닐까? 더 얹는 말들은 사실 과하다.
"나는 생각보다 선한 사람이에요"를 인정받기 위해 던지는 혀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말도로르의 노래에 환호했던 기억..그 환호를 가능케 했던 것은 어느 한 순간 생겨난 것은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