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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1. 골리앗의
본질
커다란 덩치의 골리앗은 행정에 능한 행정병이었다. 보기엔 전장을 누빌 장수 같지만, 사실 그는
착하고 순한 행정병일 따름이었다.
블레셋 군대는 길고 지루한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했고, 골리앗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를 이스라엘군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하고자 한다. 군인이 군령을 위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드의 골리앗은 명령에 따를 뿐이다. 작은 돌멩이를 건네는 순한 골리앗이, 갑옷 조각 하나가
떨어진 것에 마음이 쓰이는 골리앗이 적군과 아군의 한 가운데에 서서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수행한다.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이..
그저 묵묵히 매일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말을 하며 그렇게 말이다.
결국, 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대치를 다윗이 끝내게 된다. 골리앗은 그렇게, 우리가 알다시피
작은 다윗의 돌팔매로 지루하고 재미없는 미션을 마무리한다.

#2. 쓰임과
평가
어릴 때 단짝친구의 이야기다. 또래에 비해 작고 여렸던 나와 달리 보통의 아이들보다 한뼘쯤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았던 친구가 있었다.
아래도 동생이 둘이나 있는 친구는 학교를 마치면 쪼르르 집으로 달려가 막내 동생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놀러오곤 했다. 엄마처럼 막내가 뭔가를 입에 넣으려하면..
"에이..지지.."하며 자연스레 다른 것으로 바꿔 쥐어주곤 했다. 막내가 울면 혹시 설탕이
있냐고 묻고 한 잔 타줄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수저로 한수저씩 떠서 막내를 먹였다.
언니..
그 친구는 언니였다.
어느 날엔가 학교에서 키 큰 아이들을 뽑기 시작했다. 학교 배구단을 만든다고..당연히 친구는
배구단에 뽑혔다.
배구단을 하면, 수업료를 얼마쯤 덜 내도 된다는 조건이 있었던 걸 나중에 알았다. 덩치는
컸지만 오래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친구는 어쨌든 배구단이 되었다.
훈련이 시작되고..친구는 훈련을 견디지 못해 자주 우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훈련 받는 친구를
뒤로 하고 혼자 하교하는 길은 재미가 없었다.
한 달..두 달..
친구는 여전히 힘들어했고, 소질도 보이지 않았다. 늘 기합을 받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구단을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어느 날엔가 기합을 받다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제서야 친구의 엄마와 아버지는 학교에 가서 항의를 했고, 그렇게 친구는 배구를
그만두었다.
그 후로 우리는 여전히 막내를 데리고 엄마처럼 흐뭇한 표정으로 놀 수 있었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 났다. 어쩐지 골리앗을 닮았던 친구. 그의 역량과 자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해 유리한대로 사용하려는,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들, 혹은 제도에 대한 부조리함을
말이다.
사람의 쓰임을 결정하는 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건가?생각이 많아졌다.
#3. 오해 또는
진실..그리고 시선
어릴 때부터 다윗과 골리앗(왜? 언제나 다윗이 먼저인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가나다 순으로
해도 골리앗이 먼전데..)의 이야기는 작은 다윗의 신앙으로 커다란 골리앗을 제압한 영웅의 서사로 듣고 컸다. 작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즉 선택된
자 다윗이 거대한 폭압과 물렛돌 하나만으로 맞서 이겨냈다는 이야기. 특히나 주일학교에서 듣는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위대했는지 모른다.
엄마의 기도에 "다윗과 같은 믿음과, 솔로몬의 지혜와.."라는 문장이 꼭꼭 들어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골리앗은, 다윗의 영웅적 행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지 않았을까? 이런 불순한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 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톰 골드의 골리앗은 어쩐지 뭉클했다.
너무 착하고 여린것이다.
길들여진 시선과 판단으로 오해 받고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쓰임 당하는 사람들이 비단 골리앗
뿐이겠는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지위가 만들어내는 오해와 부조리는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어떤이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대다수를 위한 공익, 또는 공공선을 위한 일일지라도 어떤 이의 희생이 강요되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말이다.
우리는..가끔 대다수라는 것에, 혹은 대의명분이란 것에 기대어, 너무도 당연하게 어떤 이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한 일이다.
블레셋의 골리앗.
아마 당분간은 "다윗과 골리앗"이 아닌 "골리앗과 다윗"이라고 부를것 같다.
가엾은...골리앗..
이 책은..그림이 너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