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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그림을 가끔 들여다보거나 펜 하나를 들고 꼼지락거리거나, 대뜸 이젤을 펴서 유화물감을 황칠을 하다 내던져두곤 한다.
좋아하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랄까? 몸부림이랄까? 그런 것이었다.
유난히 미술관련 서적들이나 화첩들을 좋아하고, 화첩기행 다섯권을 애지중지한다. 전문적인 언어로 낭만주의가 어떻고 고전주의가 어찌저찌하고 인상파가, 초현실주의가..주르륵 혀가 꼬일 화가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을 읽다보면 현기증이 나곤 한다.
그저 그림을 보는것이다. 화가의 의도나 메세지, 화풍따위는 감안하지 않고 내게 안겨오는 것들을 느끼고 꿈꾼다.
천박한 그림보기다.
하지만, 유독 애를 쓰며 읽어내려하고, 궁금해하는 것은 에피소드다. 뒷 이야기 같은 것. 일요일 서프라이즈의 소재가 될법한 그런 이야기들..
화가가 재능을 품은 선택받은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한 반발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사람이군..하는 결론을 확인하고 싶은 치기일지도..
어쨌든 '조선 미술'이라고 했다.
조국에서 버림받은 떠도는 이의 눈에 비친 조국의 미술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을까가 사뭇 궁금했다.
긍지 높은 촌놈/신경호
완고한 맏아들/ 정연두
우아한 미친년/ 윤석남
분열이라는 콘텍스트/이쾌대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신윤복
이름이 많은 아이/미희=나탈리 르무안
사람이 아름다웠다/홍성담
붓질/송현숙
그가 만난 사람과 그림들의 이야기다.
특히나 미희의 이야기는 그가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했다.
그가 꼭 쓰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꼭 읽어야한다.
벨기에로 입양된 그녀의 이야기는 먹먹하고 아팠다. 그녀의 그림에서 절절히 묻어나는 그리움에는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미희가 미희인 까닭은 그녀가 어느 날, 부산의 길가에 버려져 한국 정부가 추진한 입양 제도에 의해 벨게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아프고도 부끄러운 역사가 남김없이 투영되어 있다. 이름, 말, 문화, 급관, '한국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런 지표의 거의 대부분을 상실한 이유는 미희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민족이란 그러한 문맥까지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미희를 '우리'로 인정하고 그 미술을 '우리 미술'로 포함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쇠퇴가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 자체의 변혁과 확장을 의마한다.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과도 합치한다.
디아스포라는 결코 애처로움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안주하고 있는 '국민, 인종, 문화의 동일성'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으며 위험한가를 일깨워주는 존재일 따름이다. (p327)>
미희는 미희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했다. 버려진 이름이라서..아픈 한국의 과거를 고스란히 짊어진 그림들이 아플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국제 시장'의 시대상황을 떠올려본다.
물론 보지는 않았다.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고도 남는 그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까닭이다.
배타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악착같이 '다름'을 '틀림'으로 주장하며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않아야 살아남던 시절..그 자책을 '애국'이라는 것으로 치환하며 정당성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떤 젊은 평론가는 '토 나온다'는 표현까지 썼으리라.
그 시절을 고스란히 덮어쓴 그림들..
신윤복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듣고 보아서 사실 시큰둥할 줄 알았지만..그렇지만도 않다.
작가의 시선은 밖에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끼리의 이야기 우리끼리의 미술이 아닌 밖에서부터 들어온 시선으로 탐구하는 그의 시선은 신선했다.
미술이 다만 장식용이나 과시용이 아니라, 다만 힐링의 목적이 아니라..사람의 이야기이며 목소리이며 시간이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긴 시간을 써내려간 화가의 그림들.
많이 알려진 대중적인 화가들이 아닌, 역사의 고비고비에 고임돌처럼 역사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아낸 이들의 그림과 이야기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불을 덮어쓰고 읽어내리는 동안에도 손끝이 차가워진건..다만 날씨 탓은 아니었을게다.
봄에 다시 읽으면 조금 달리 읽힐지도 모르겠다.
미술순례라는 제목의 시간여행이었다. 그림보다 사람이 보이는..내가 아는 그림이라 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림이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조선'
이 맑은 이름이 가진 시린 역사가 자꾸 울컥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