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ㅣ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의 호위속에서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을 도륙했다. 이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바시르의 암살이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기독교 세력인 바시르를 레바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으나 취임 직전 살해당했다. 이에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당원들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색출을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양민 3000여명을 학살하였지만, 무장세력은 이미 2주전에 튀니지로 떠난 뒤였고 살육당한 사람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들이었다. 이것이 사브라 샤틸라 난민학살의 전모이다.
이 사실(무장세력이 이미 난민촌을 떠난 뒤라는)을 팔랑헤 당원들도 이스라엘 군수뇌부도 이미 인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책 화자들의 비극이자 망각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리 폴먼은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마리의“비열한”개가 자신을 물어뜯어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과 만난다. 스물여섯 마리라는 숫자는 20년 전 레바논에서의 일과 직결되어 있고, 이로 인해 아리는 자신이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아온 과거 20년 전의 기억이 파헤쳐 진 지점과 꼭지점을 그으며 직선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보아즈를 만나고 부옇게 이는 먼지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그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고 그 이미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친구 카미를 찾아 네덜란드로 간다. 카미는 누구나가 핵물리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도가 촉망되는 천재소년이었으나, 그는 팔라펠을 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핵물리학자를 포기한 이유를 묻는 아리에게 카미는 “하지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난 모든 게 끝나버렸어, 그 후로 난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살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 그 학살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는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 밖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세상을 버렸다. 그는 목숨을 버림으로써 망각하지 못한 과거가 아직까지 독기를 품어내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가래로 콱 막힌 답답한 목을 쏴한 맛으로 뻥 뚫어주는 박하사탕의 단맛처럼.
80년 광주에서 소녀를 죽인 군인 영호는 작전수행과정상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죽였고, 그 독한 기억은 여전히 20년이 지난 중년사내의 핏줄 깊숙이 퍼지는 현재진형행의 독극물이었다. 그는 가해자일까? 그는 피해자일까? 기억을 놓아버리지 못해 영호는 철교위에 서 절규해야 했고, 보아즈는 20년이 흐른 뒤 매일 개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카미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체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악몽과 도피 대신 망각이라는 방어기제 뒤로 숨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있었다.
영호가 소녀를 죽이던 그때 나는 10살 소녀였다. 내일부터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에 수지맞았다고 학교에서 돌아와 흙바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머리위로 분주히 비행기가 날았다. 벌써 며칠 전부터 어른들의 입에서는 유언비어, 데모, 전두환이라는 말이 숨죽인 듯 나왔고 평소답지 않은 잦은 비행기 출몰에 겁먹은 우리는 유언비어가 데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다 풀지 못한 조금은 공포스러운 수수께끼 인양 서둘러 귀가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5월 17일 이었을 테다.
광주사태와 폭도가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개벽하던 때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했다. 도청 지근거리에 살았던 당신은 중고등학생이던 아들딸이 행여나 의분에 뛰쳐나가 총에 칼에 찔려 주검이 되어,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를 횡사가 겁나 밤이면 빨래줄로 장성한 아들과 딸 손발을 묶어 당신 손과 발에 칭칭 동여맸던 이야기며, 밤이면 두두다다 콩볶아대는 소리에 귀를 막으며 옷에 오줌까지 절이던 나와 남동생을 부부 가운데로 놓고 솜이불을 이중삼중으로 덮어 밤을 나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5월26일 이었을 터- 확성기로 목놓아 “광주애국시민 여러분 마지막 항전입니다”라고 절규하던 여자의 목소리(어쩌면 영화 화려한 화가에서 박흥수의 딸로 분한 이요원이 역을 맡은 그녀일지도 모르겠다)를 들으며 양심의 가책과 절망의 눈물로 지새운 밤까지 소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남은 소주잔을 털어 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역사의 죄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라도 너희들을 지켜야 했다”고.
나의 충격은 사진속 살육당한 처참한 몰골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들이 폭도나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 열흘 동안의 그 밤을 그 낮을 그 총소리를 그 피비린내를 그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를 조금도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평소보다 빨리 학교에서 끝나 돌아왔고, 땅따먹기를 하던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분주히 날았고, 유언비어라는 뜻을 묻다가 간첩삐라를 만진 기분으로 우리들은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악을 쓰기도 전에 뿔뿔이 집으로 돌아간 사실뿐이다. 열흘간의 철저한 기억의 상실 기억의 부존재, 이것은 내가 입은 또 다른 상처일까?
아리는 프렌켈을 만난다. 파출리향수 애호가이자 주짓수 전국 챔피온 인 그는.
사브라 샤틸라 학살 직전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간의 교전시 마치 무아지경에 빠져 건물외벽에 커다랗게 내걸린 바시르의 얼굴 앞에서 마치 왈츠를 추듯 팔레스타인에 기관총을 난사하던 군인이었다. 그가 망각의 늪으로부터 아리를 핀셋으로 꼬집어 내었고, 그 자리에 아리가 있었음을 그리고 아리가 사브라 샤틸라 학살과 난도질당한 사체무더기와 가족을 잃은 양민들의 절규를 목도하였노라고 아리의 기억에 향불을 피워 그를 제단 앞에 앉혀놓았다.
지난 해 세밑, 팔레스타인에 또 다시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밤낮으로 신무기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점심을 싸들고 팔레스타인의 전쟁쇼를 망원경으로 구경하며 이를 드러내 웃는 동안, 이스라엘의 포탄이 난민촌에 유엔학교에 부상자치료 병원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져 노인을 죽어나자빠지게 하였고, 청소년의 팔다리를 떨어뜨렸으며, 죽은 어미 곁에 목이 쉬고 배가 고파 더 울 수조차 없는 젖먹이들을 쇳소리 나는 목으로 울부짖게 하였다.
유엔학교에 폭격을 가하고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스라엘 군대변인은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들(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때로 민간인을 이용하여 테러한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을 한 집에 가두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유엔에서 진상조사차 마을로 들어왔다. 유엔 조사자들은 죽은 어미 곁에서 며칠동안 먹지도 치료받지도 못한 젖먹이들의 비극과 시체무더기속 사람들은 여자와 노인과 어린아이였다고 밝혔다.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저주의 광시곡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 반복의 왈츠 가운데 무수한 기억들이 망각되고 상실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아리 보아즈 카미는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박하사탕 그 단맛과 같은 첫사랑의 아릿한 순수함으로 이제는 되돌아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교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영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유대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들을 깊이 연민한다. 그렇지만 샬롯 알데브론의 호소는 너무나 눈물겹다. 9.11사태로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13살 미국소년 알데브론은 찬찬히 오랫동안 저를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가해자의 망각이 다소간 불편하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바시르 살해와 무관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때 조명탄을 쏘며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며 팔랑헤당을 호위했던 이스라엘은 마치 용산참사때 불타는 망루에 물대포를 쏜 용역들은 혐의가 있고 그들을 방패로 막아 호위했던 경찰들은 무혐의라고 판단한 2009년 대한민국 검찰의 변론처럼 무참하다.
나는 전쟁에 그래서 반대한다.
전쟁에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사람을 살육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그들의 삶 밖으로 밀어내는 부도덕하고 잔인한 전쟁을 나는 반대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오토리버스 오디오처럼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존재없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망령난 그 전쟁을 깊이 혐오한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중략)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16일 바그다드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00명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순간 바그다드 어린이병원‘죽음의병실’에 있는 14살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겁니다. 알리는 91년 여러분이 터뜨린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중략)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중략)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간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빠를 가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중략)
이건 액션영화도 아니고, 공상영화도 아니고,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아라크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