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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ㅣ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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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의 호위속에서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을 도륙했다. 이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바시르의 암살이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기독교 세력인 바시르를 레바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으나 취임 직전 살해당했다. 이에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당원들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색출을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양민 3000여명을 학살하였지만, 무장세력은 이미 2주전에 튀니지로 떠난 뒤였고 살육당한 사람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들이었다. 이것이 사브라 샤틸라 난민학살의 전모이다.




이 사실(무장세력이 이미 난민촌을 떠난 뒤라는)을 팔랑헤 당원들도 이스라엘 군수뇌부도 이미 인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책 화자들의 비극이자 망각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리 폴먼은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마리의“비열한”개가 자신을 물어뜯어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과 만난다. 스물여섯 마리라는 숫자는 20년 전 레바논에서의 일과 직결되어 있고, 이로 인해 아리는 자신이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아온 과거 20년 전의 기억이 파헤쳐 진 지점과 꼭지점을 그으며 직선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보아즈를 만나고 부옇게 이는 먼지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그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고 그 이미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친구 카미를 찾아 네덜란드로 간다. 카미는 누구나가 핵물리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도가 촉망되는 천재소년이었으나, 그는 팔라펠을 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핵물리학자를 포기한 이유를 묻는 아리에게 카미는 “하지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난 모든 게 끝나버렸어, 그 후로 난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살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 그 학살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는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 밖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세상을 버렸다. 그는 목숨을 버림으로써 망각하지 못한 과거가 아직까지 독기를 품어내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가래로 콱 막힌 답답한 목을 쏴한 맛으로 뻥 뚫어주는 박하사탕의 단맛처럼.




80년 광주에서 소녀를 죽인 군인 영호는 작전수행과정상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죽였고, 그 독한 기억은 여전히 20년이 지난 중년사내의 핏줄 깊숙이 퍼지는 현재진형행의 독극물이었다. 그는 가해자일까? 그는 피해자일까? 기억을 놓아버리지 못해 영호는 철교위에 서 절규해야 했고, 보아즈는 20년이 흐른 뒤 매일 개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카미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체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악몽과 도피 대신 망각이라는 방어기제 뒤로 숨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있었다.




영호가 소녀를 죽이던 그때 나는 10살 소녀였다. 내일부터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에 수지맞았다고 학교에서 돌아와 흙바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머리위로 분주히 비행기가 날았다. 벌써 며칠 전부터 어른들의 입에서는 유언비어, 데모, 전두환이라는 말이 숨죽인 듯 나왔고 평소답지 않은 잦은 비행기 출몰에 겁먹은 우리는 유언비어가 데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다 풀지 못한 조금은 공포스러운 수수께끼 인양 서둘러 귀가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5월 17일 이었을 테다.




광주사태와 폭도가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개벽하던 때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했다. 도청 지근거리에 살았던 당신은 중고등학생이던 아들딸이 행여나 의분에 뛰쳐나가 총에 칼에 찔려 주검이 되어,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를 횡사가 겁나 밤이면 빨래줄로 장성한 아들과 딸 손발을 묶어 당신 손과 발에 칭칭 동여맸던 이야기며, 밤이면 두두다다 콩볶아대는 소리에 귀를 막으며 옷에 오줌까지 절이던 나와 남동생을 부부 가운데로 놓고 솜이불을 이중삼중으로 덮어 밤을 나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5월26일 이었을 터- 확성기로 목놓아 “광주애국시민 여러분 마지막 항전입니다”라고 절규하던 여자의 목소리(어쩌면 영화 화려한 화가에서 박흥수의 딸로 분한 이요원이 역을 맡은 그녀일지도 모르겠다)를 들으며 양심의 가책과 절망의 눈물로 지새운 밤까지 소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남은 소주잔을 털어 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역사의 죄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라도 너희들을 지켜야 했다”고.




나의 충격은 사진속 살육당한 처참한 몰골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들이 폭도나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 열흘 동안의 그 밤을 그 낮을 그 총소리를 그 피비린내를 그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를 조금도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평소보다 빨리 학교에서 끝나 돌아왔고, 땅따먹기를 하던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분주히 날았고, 유언비어라는 뜻을 묻다가 간첩삐라를 만진 기분으로 우리들은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악을 쓰기도 전에 뿔뿔이 집으로 돌아간 사실뿐이다. 열흘간의 철저한 기억의 상실 기억의 부존재, 이것은 내가 입은 또 다른 상처일까?




아리는 프렌켈을 만난다. 파출리향수 애호가이자 주짓수 전국 챔피온 인 그는.

사브라 샤틸라 학살 직전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간의 교전시 마치 무아지경에 빠져 건물외벽에 커다랗게 내걸린 바시르의 얼굴 앞에서 마치 왈츠를 추듯 팔레스타인에 기관총을 난사하던 군인이었다. 그가 망각의 늪으로부터 아리를 핀셋으로 꼬집어 내었고, 그 자리에 아리가 있었음을 그리고 아리가 사브라 샤틸라 학살과 난도질당한 사체무더기와 가족을 잃은 양민들의 절규를 목도하였노라고 아리의 기억에 향불을 피워 그를 제단 앞에 앉혀놓았다.




지난 해 세밑, 팔레스타인에 또 다시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밤낮으로 신무기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점심을 싸들고 팔레스타인의 전쟁쇼를 망원경으로 구경하며 이를 드러내 웃는 동안, 이스라엘의 포탄이 난민촌에 유엔학교에 부상자치료 병원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져 노인을 죽어나자빠지게 하였고, 청소년의 팔다리를 떨어뜨렸으며, 죽은 어미 곁에 목이 쉬고 배가 고파 더 울 수조차 없는 젖먹이들을 쇳소리 나는 목으로 울부짖게 하였다.




유엔학교에 폭격을 가하고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스라엘 군대변인은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들(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때로 민간인을 이용하여 테러한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을 한 집에 가두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유엔에서 진상조사차 마을로 들어왔다. 유엔 조사자들은 죽은 어미 곁에서 며칠동안 먹지도 치료받지도 못한 젖먹이들의 비극과 시체무더기속 사람들은 여자와 노인과 어린아이였다고 밝혔다.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저주의 광시곡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 반복의 왈츠 가운데 무수한 기억들이 망각되고 상실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아리 보아즈 카미는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박하사탕 그 단맛과 같은 첫사랑의 아릿한 순수함으로 이제는 되돌아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교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영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유대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들을 깊이 연민한다. 그렇지만 샬롯 알데브론의 호소는 너무나 눈물겹다. 9.11사태로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13살 미국소년 알데브론은 찬찬히 오랫동안 저를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가해자의 망각이 다소간 불편하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바시르 살해와 무관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때 조명탄을 쏘며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며 팔랑헤당을 호위했던 이스라엘은 마치 용산참사때 불타는 망루에 물대포를 쏜 용역들은 혐의가 있고 그들을 방패로 막아 호위했던 경찰들은 무혐의라고 판단한 2009년 대한민국 검찰의 변론처럼 무참하다.




나는 전쟁에 그래서 반대한다.

전쟁에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사람을 살육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그들의 삶 밖으로 밀어내는 부도덕하고 잔인한 전쟁을 나는 반대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오토리버스 오디오처럼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존재없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망령난 그 전쟁을 깊이 혐오한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중략)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16일 바그다드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00명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순간 바그다드 어린이병원‘죽음의병실’에 있는 14살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겁니다. 알리는 91년 여러분이 터뜨린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중략)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중략)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간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빠를 가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중략)    




이건 액션영화도 아니고, 공상영화도 아니고,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아라크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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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watches 2010-03-2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84 2010-05-1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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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숲
고은 지음 / 신원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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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란 17세부터 노(老) 시인의 북극성이었다고 고백한다.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

눈 부릅뜨고 주먹 그러쥐며 조국의 별을 우러르던 시어에 익숙해있던 터라

노 시인의 사유와 상념의 숲에서 피톤치드 가득 삼림욕이나 하자,

입산하였다가 잠시잠깐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포플러숲 나무 그 아래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시 향 그득한 산언저리 어디쯤에 두고 온 어떤 개념을 찾느라 헤매었는지도...

인간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

그래 어차피 정의도 개념화도 불가해한 인간이라는 이름을 두고

불가결하고 불가피하게 욕망을 두런거리지도 말자

어차피 천국은 없고, 지옥은 이 세계 안에 있을 뿐이니...

표지는 검은 나무 세 그루가 무수한 바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처럼 흔들린다. 그 아래 빨강색 굵은 직선들 나무의 존재적 근원인 뿌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흔들리는 나무 아래에서 군무를 추는 인간 군상들처럼 보이기도 하다

독특한 글씨체로 “개념의 숲”이라는 제목 아래 고은 글.그림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가슴 일렁이는 매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 가족, 욕망, 인간, 문학, 경제, 교육, 형이상학, 니힐리즘 등 시인의

심장속에서 갓 꺼낸 사유가 시인이 그려놓은 그림속에 녹아드는 듯 강렬하다.

지평선이라는 제목으로 몇 편의 에세이에서 말한다. 역사는 혼자가 아니다. 시골의 할머니와 토인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역사가이다. 하나는 구어口語로 역사를 살고 하나는 문자언어로 역사를 사는 차이뿐이다 (나는 열망한다, 경계없이 탁 트인 대지의 역사를 中)

구어로 역사를 살고

문어로 역사를 살고

우리는 이렇게 살고 개념 지어지는 영속성에서 시인이자 철학자를 만났다.  

그 만남속에서 잠깐 길을 헤맨들, 잠시 나무 밑둥에 기대 잠을 잔들, 휘몰아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후욱후욱 숨을 빨아들인들,   

 

얼마나 황홀했던가

얼마나 환멸이었던가

얼마나 숭고했던가

얼마나 공허했던가!

사상을 개념화한 시인의 표현처럼 말이다. 
 


조국의 별 <고은>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

  어둠 속에서

  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 
  내 가슴으로 
  한밤중 몇백 광년의 조국이자 
  아무리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지금 진리에 가장 가까운 건 젊음이다 
  땅 위의 모든 이들아 젊자 
  긴 밤 두 눈 두 눈물로 
  내 조국은 
  저 별과 나 사이의 가득 찬 기쁨 아니냐 
  별 우러러보며 젊자 
  결코 욕될 수 없는 
  내 조국의 뜨거운 별 하나로 
  네 자식 내 자식의 그날을 삼자 
  그렇다 이 아름다움의 끝 
  항상 끝에서 태어난다 아침이자 
  내 아침 햇빛 떨리는 조국 
  오늘 여기 부여안을 일체 결합의 젊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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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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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노처녀(^^;) 영어선생님이 가끔씩 위대한 개츠비의 어떤 대목을 연극적으로 읽어주곤 했다. 그 해 교지에 선생님은 느낌표가 수도없이 빵빵빵 찍힌 독후감으로 개츠비를 다시 한번 찬양했더랬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반쯤 감은 듯 아련한 눈으로 개츠비와 데이지의 열렬한 사랑과 파멸을 이야기하던 혼 나간 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해 개츠비를 펴들었다. 쓰개치마 덮어쓰고 인당수로 빠져죽지는 못할망정, 자기를 그토록 사랑했던 개츠비를 결국 죽음으로 내몬 데이지는 도통 내 상식속에 포함시킬 지고지순녀가 아니었다.




십수년의 세월이 흘러, 삶도 알만큼 알았다는 결혼 생활도 할만큼 했다는 사랑도 뉜내 나도록 해봤다는 삼십대 중반에 참신하고 깔끔한 표지를 단 양장본 개츠비를 보고 위대한에 방점을 찍으며 다시 개츠비에게 되돌아갔다.




사실은 나에겐 아직도 개츠비와 데이지의 사랑은 위대하다기 보다는 얼음조각에 부딪혀 조각난 타이타닉호의 파편일 뿐이다. 그런 탓에서였는지 벤자민 버튼의 흐름이 너무 빨라 갑자기 불안해졌다. 장편소설이라고 마음대로 오해해버렸던 것이다. (단편으로 영화를?) 실록에 덜렁 한 줄짜리 광대를 모티브로 왕의남자가 태어났는데, 38쪽 짜리 단편소설 정도면 해리포터 시리즈라고 못 만들쏘냐. 여튼!




80 노인으로 태어나 0세 아이로 죽은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시계

도금시대의 풍요로부터 저만큼 벗어나 있던 젤리빈

마치 로맹가리의 단편을 떠올리게 했던 낙타엉덩이와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판타지소설 형식으로 인간의 탐욕을 벌거숭이로 묘사하지 않았나 싶은 다이아몬드이야기

전쟁직후 생각의 혼류 부유함과 환멸이 뒤섞여 혼란과 참담함으로 점철된 메이데이




재즈시대는 도금시대의 끝자락과 맞물리며 대공황시대로 이어지는 그 언저리쯤 되나보다. 그 미국의 시간을, 그 시간 미국의 젊음들을 다큐멘터리 리포터처럼 설명한다. 리츠칼튼호텔만한 다이아몬드로 대변되는 욕망을 모던걸, 플래퍼를 등장시켜서 추상화로 그리며 말이다. 물론 로맹가리나 로얄드 달의 단편처럼 폭주기관차 같은 속도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비록 작가로 비전이 없어 젤다로부터 파혼당하고, 출판성공으로 젤다와 결혼하고,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과 부를 거머쥐었으나 끝없이 나락하고 만 피츠제랄드의 고백록 같아 읽는 내내 불편도 했지만, 피츠제럴드가 가고 근 7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독자들이 피츠제럴드에 열광하는지 충분히 공감하게 해준 미덕을 가진 소설임에 틀림없다.




『낙타엉덩이』『메이데이』『오, 적갈색 머리카력 마녀!』가 특히 좋았지만, 이 단편집의 백미를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제목으로 선정된 작품이 아니라 미안하지만^^;)『행복의 잔해』를 뽑겠다. 아름다운 여배우 록산 밀뱅크과 단편소설가 제프리 커튼 부부의 이야기와 제프리가 간 뒤 록산과 해리의 장면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페인트가 벗겨지고 낱낱이 들고 일어난 쇠락해가는 대저택과 대비되며 제프리가 남긴 열두개의 못자국을 바라보는 록산의 마음이 잔잔한 물결같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빈 잔에 오래도록 향이 머무는 아라비카 커피처럼.




독서진행이 매우 느려 하품이 나다가 중반을 넘으면 강하게 잡아매는 책이 더러 있다. 내겐 피츠제럴드가 그렇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나 영국의 자존심 세익스피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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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그림 친구들 ㅣ 작은 곰자리 7
크리스 투가스 지음, 박수현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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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런 시끌이 녀석 무슨 장난을 몽땅 치려고 빨강 혀를 낼름 내놓고 입을 귀까지 찢어놓고 화벌쩍 웃고있는걸까요



엄마랑 아빠가 말예요
동네 반상회 가신 걸까요?
집을 비운 잠깐 사이에 말예요
그림이 녀석이


크레파스 친구들
그림물감 친국들
가위랑 테이프 친구들
게다가 잉크 녀석들까지
죄다 우르르 몰려 나와
그림이 방이고 거실이고 엄마아빠방까지
오색찬란한 그림난장을 펼쳤던 모양예요
팔레트 칼로 물감을 휘휘 뒤섞구요
손바닥 발바닥에 묻어 도장도 찍구요


스포이드로 잉크를 죽죽 빨기도 북북 내밷기도 하구요
그러는 동안에 녀석 고 귀엽고 자그만 혀를 낼름하는게
밉지만은 않은걸요

이크 엄마아빠가 오셨나봐요
대문을 열고 들어오신 엄마아빠
입이 말이죠. 그 대문만큼 떡~~벌어진 거예요
히히 그림이 녀석이
얼마나 개구쟁이 귀염둥인줄 아세요?
"보시다시피, 너무 바빠서 청소는 엄두도 못 냈어요"

이러니 어떻게 콩 쥐어박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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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외 지음, 최재혁 옮김 / 돌베개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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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기다란 화면. 왼쪽으로 창문임을 알아나 보라는 듯 일부만 그려놓은 창. 유리창을 맞바라보고 서(앉아) 창으로 비어져 들어오는 햇빛을 옴팡 받고있는 혹은 오른쪽 측면으로만 그 광을 받고있는 여인. 빛 하면 긴 그림자가 떠오르듯 베르메르의 이미지는 빛과 창이 아닐까?




창이 있으나 창이 없으나 베르메르의 그림엔 빛이 있다.

베르메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 [진주귀걸이 소녀]에는 창도 어떠한 소품도 없이 단지 그림을 들여다보는 관람자에게 왼쪽 눈으로 오물거리려 수줍은 입을 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지만 있잖아요...” 라는 듯한 소녀만 있지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소녀를 부드럽게 에두르는 것, 그것은 빛이다. (다만, 이야기 그림이라는 예수 그림들에서는 빛??? 글쎄!!!)




빛의 거장 베르메르를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세상과 그다지 소통하지 못했던 괴벽한 천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43세 요절, 서른너댓 작품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점, 약 150년 전 화가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과 더불어 반 메르한의 위작사건 그리고 미술테러리즘이라고 하는 도난사건과 유독 빈번한 인연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화가로써는 치욕스럽게 여길만한 카메라 옵스큐라 또한 베르메르를 현실을 외면한 괴짜로 인식하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미술계의 오해를 저자 고바야시 요리코는 이 책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네덜란드 스승의 이론까지‘죄송하지만’반론하면서.




카메라 옵스큐라란 카메라로 비친 상을 그대로 본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즉, 화가가 원근법 빛의크기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여러 화법을 동원하여 때로는 원근도 왜곡하고 빛도 왜곡함으로써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기법으로 승화시키는 천재성을 정면으로 뒤엎는 일이다. 예술가에게‘소질’없는 환쟁이라고 말하는 셈이니 우울하기 그지없는 일일테다. 저자가 풀어놓은 베르메르의 매혹의 비밀이란 이런 것들이로구나 이해하면 되려는지...




그림에 대한 심도 깊은 설명이 부족했던 것은 주어진 지면이 부족해서였는지 아니면 베르메르가 남겨놓은 작품이 원체 소수여서였는지 옮긴이의 말까지 해도 200페이지에 불과했기에(삽입된 그림이 많아 아주 착한 책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진주 목걸이 하는 여인]의 수려한 옆얼굴과 우아한 손가락, [연애편지]에서 편지를 건네는 하녀를 곁눈질로 돌아보는 류트를 든 여인의 당황스럽기도 하고 뭔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 몹시 매혹적이다. [두 신사와 여인]에서 옆으로 주욱 벌려진 여인의 입은 욕망과 염려가 뒤섞인 애매한 표정이 생생했고 [편지쓰는 여인과 하녀]에서 연정에 사로잡힌(?) 마님이 부지런히 편지 쓰는 뒤에 서있는 하녀가 열린 창밖을 바라보며 오히려 여유로운 혹은 나는 네 비밀을 잘 알지라고 말하는 것같은 의뭉스러움이 아주 좋다. 나에겐 [진주귀걸이 소녀]의 작가로만 남을 뻔한 베르메르가 빛, 풍성한 거장으로 성큼 다가왔으니 이것이 가히 책읽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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