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왔니 1
이윤희 지음 / 애니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라면 장르 안 가리고 좋아하는 잡식성인데 로맨스만큼은 가까이 하기 어렵다. 소년지에 실리는 연애만화는 물론이고, 예쁜 남자 캐릭터가 잔뜩 나오는 순정만화도 어딘가 불편했다. 그 모호한 불편함의 이유를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한없이 수동적이 되고, 소위 민폐캐릭터라서 남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인형처럼 존재하는 여자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SNS에 '더이상 설레지 않습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돌면서 여자들은 그동안 로맨스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모습이 사실은 폭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습 키스, 손목 잡아끌기, 벽치기 등이 남자들의 격정적인 애정 표현으로 그려지고, 그런 행동에 가슴 떨리는 연약한 여자들의 모습이 여성스러움으로 그려지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그렇다면 한쪽이 끌려다니지 않는 동등한 관계로서의 연애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만화가, 특히 여성 만화가들은 한발 앞서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집에 왜 왔니』는 어린 시절 인연을 가진 여자와 남자가 성인이 되어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스토리이다. 로맨스 만화에서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설정이다. 굳이 꼽자면 남자가 중국인이라는 것 정도일까 -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로맨틱한 중국 남자가 핫하다는 트렌드와도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상의 중국 남자 한 명이 모든 중국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니 주인공 연의 장점이 단순히 국적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이 작품의 가장 큰 메리트는 재희라는 캐릭터다. 재희는 '청순하다' '귀엽다' 혹은 '섹시하다' 등 만화 속 여성 캐릭터를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다. 그렇게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만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땀 범벅이 되도록 뛰고, 야근을 숨쉬듯이 하는 2년차 직장인이다. 덕분에 식사는 거의 인스턴트와 외식으로 해결하고 청소는 꿈도 못 꾼다. 집에서는 거의 잠옷 차림이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밀린 드라마를 본다. 오지랖이 넓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천둥번개를 무서워하고 매달 찾아오는 생리통에 괴로워한다. 아주 입체적으로 '평범'해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재희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던 연. 한국어를 공부하러 한국에 왔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재희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그는 잘생긴 얼굴을 부스스한 머리로 다 가리고 옷은 그야말로 아무거나 주워 입고 다녀 같이 다니는 사람까지 창피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맺고 끊음이 정확하고 힘을 과시하지 않으며 호텔집 아들이라 요리와 청소가 특기이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남녀의 역할을 구분짓지도 않는다. 재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감 100% 캐릭터라면 연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을 갖췄지만 실제로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다른 나라에서 자란 만큼 커다란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지닌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히고 오해를 일으킨다. 특히 한국말이 서툰 연의 의도를 재희가 오해하는 일이 잦다. 그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설레는지. 1권 말미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재희와 연이 어떤 관계로 발전할지 유독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동등한 연애'를 두 사람을 통해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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