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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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면 이보다 더 악의적인 우연은 없을 것이다. 리뷰를 쓰는 지금 온라인에는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 관련뉴스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들은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콜럼바인』을 읽고 나서 사건을 보는 나의 눈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둡고 거친 폭풍이 심장을 훑고 지나간 느낌이다. 콜럼바인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총기난사 사건은 변함없이 일어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브 컬런이 10년 간 취재하고 집필한 논픽션 『콜럼바인』은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일 사건만을 파헤쳤지만 결국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거대한 폭력의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 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브 컬런이 10년 간 취재하고 집필한 논픽션 『콜럼바인』은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일 사건만을 파헤쳤지만 결국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거대한 폭력의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 책이다. 


보통 콜럼바인 사건을 떠올릴 때면, 트렌치코트 마피아 출신의 부적응자 고스족 두 명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반목 때문에 고등학교에 난입하여 운동선수를 공격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라는 두 10대 소년이 일으킨 이 무서운 사건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뤘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의 복수극으로 알려졌던 걸로 기억난다. 나도 그 정도로 알고 있었고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참 안전하다며 안심했을 뿐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원서가 출간된 지 8년이나 지났고 평소 논픽션을 잘 읽지 않지만 『콜럼바인』은 꼭 읽고 싶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참담했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호기심.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 호기심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논픽션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이후로도 많은 비극의 기폭제가 된 사건을 다룬 책이었다. 그 무게감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을 짓눌렀다. 그럴수록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겨났다. 

리뷰를 쓰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콜럼바인 사건에 얼마나 참혹한 진실이 숨어있는지 이 책이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괴롭힘 당하던 아이들이 저지른 우발적 사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을 알면서부터 숨이 턱 막혔다. 에릭과 딜런은 똑똑하고 인기도 많고 학교생활도 무난하게 하던 학생이었다. 그런 두 아이가 약 2년 동안 "역겨운 세상 모두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인류말살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한 것이 이 사건의 진실이었다. 고작 10대 후반 아이들이 폭탄을 만들고 사격을 연습해서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던 학생과 교사들을 죽이며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대형 폭탄의 존재로 상황은 이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공격의 규모와 방법, 동기에 대해 새로 접근해야 했다. 이는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모두를 죽이려는 시도였다. (중략) 실패로 끝났지만 폭탄 테러사건이었다.


『콜럼바인』은 모든 페이지가 충격이고 반전이다. 모든 인간이 사라진 세상을 꿈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 모든 인류와 단절되었다고 느낀 우울증 환자가 만나 자행한 무차별적인 살육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온 그들의 부모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두번째로 큰 충격이었다.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비극의 전조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고, 사건이 터지자 자신들의 과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카운티의 행동은 충격을 넘어 배신감이 들었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경쟁적으로 이용하고 전시하려 든 언론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너무 닮아 씁쓸했다. 그래도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과 학살의 현장에서 탈출해 다시 삶을 꾸려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해 준 힘이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털어놓는 자백이다. 총격자의 81퍼센트가 자신의 의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중략) 모호하고 암시적이고 허황된 위협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반면 위협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동기와 실행 방법까지 거론하면 대단히 위험한 경우다.

『콜럼바인』을 읽으며 1980년 5월 18일과 2014년 4월 16일이 떠올랐다. 거대한 '폭력'의 기억이라서. 폭력의 양상과 배경은 다르지만 폭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서 늘 비슷하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는다. 사건이 끝난다고 끝이 아니다. 그래서 데이브 컬런의 집념과 세심함이 인상적이었다. 가해자, 피해자, 경찰과 보안관, 정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 학교 관계자, 언론까지 빠짐없이 취재하고, 객관적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끝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쓴 그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이 비극을 알아야 한다.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린다. 스페인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 현장에서 일어난 유혈사태도 떠오른다. 주체가 누구든 명분이 무엇이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콜럼바인』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은 '쉬운' 수단일 뿐 옳은 수단이 아니다. 폭력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눈을 기르는 데 『콜럼바인』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은 깨달음이 모여 더이상의 비극이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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