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에게 바친다 1
야마모토 사호 지음, 정은서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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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등학교 때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부모들이 꺼리는 친구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고물상이었다. 어머니는 없었고 내 기억으로는 형제도 없었다. 친구의 집은 어마어마한 양의 고물이 널려있는 고물상 구석의 한 칸짜리 방이었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물의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장소였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 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우리집은 고물상과 가까웠다. 엄마는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매일같이 고물상에 놀러갔다. 나는 그곳이 좋았다. 비록 낡았지만 장난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좋아했던 것은 누군가 버린 마론인형이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머리카락도 군데군데 잘려있었지만 내게는 로망이었다. 전학을 가게 되면서 그 친구와도 더이상 만날 수 없었지만 그때의 마론인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의 얼굴도, 고물상의 위치도 이제는 떠올릴 수 없는데 말이다. 오카자키에게 바친다를 읽으며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야마모토가 좋아했던 오카자키의 집처럼 마론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친구네 고물상은 내게 특별한 장소였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많고 아픈 일도 많았겠지만 기억 속 과거는 모두 필터를 씌운 사진처럼 흐릿하다. 그저 마론인형처럼 단편적인 사물이나 장면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또렷하게 떠올려(가공되거나 상상력을 첨가한 부분도 있겠지만) 만화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기억력이 새삼 부러웠다.


 

요즘처럼 과거를 그리워하고 되살려내려고 모두가 안간힘을 쓴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80~90년대를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지, 아름다웠지, 따뜻했지,라고 할 만큼 우리는 힘들고, 추하고, 차가운 시대를 살고 있나보다. 작품의 재미나 의미와는 별개로 자꾸만 과거를,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를 끄집어내어 공감을 얻는 현상 자체는 조금 슬프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나이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계획보다는 과거에 대한 환상과 향수가 더 큰 기쁨이 된다니 말이다.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가 이제는 돌아가고픈 고향이 되었다.


 

하지만 환상일지라도 과거는 소중하다. 과거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살벌한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함께 했던 친구들과 즐거웠던 기억들이 무거운 한 발을 내일로 내디딜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과거를 돌아보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시간의 에너지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오카자키도 작가에게 그런 의미의 친구일 것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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