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1
마유즈키 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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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을 읽다가 이 질문이 떠올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흔하게 보고 듣던 질문이다. SNS에도, TV 프로그램에도 클리셰처럼 등장하던 이 질문이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새벽녘 감성에 젖은 이들이 적어올리는 사랑에 대한 글들도 통 보이지 않는다. 모 에어컨 CF에서 '청춘이 사랑을 멈출 수 있'냐고 할 때마다 탄식 섞인 헛웃음이 나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 시대가 사랑을 가치없게 만들어서일까. 무엇보다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슬펐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하라 히데노리가 떠올랐다. 『겨울 이야기』 『내 집으로 와요』 등 현실적인 커플의 일상사를 그린 연애물로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이다. 너무 남성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를 떠올린 이유는 멋지지 않은 45세 아저씨를 좋아하는 17세 여자아이라는 설정이 남성의 판타지를 반영한 것으로 느껴져서다. 어딘지 고전적인 그림체도 그런 느낌에 한몫을 했다. 


 

시작부터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묘한 사랑 이야기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사랑이 '오글오글한 사치'나 쟁취해서 전시하는 전리품 정도로 여겨지는 세상에 사람들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코다마 유키의 『백조 액추얼리』를 보면서 순수한 사랑이란 이제 픽션에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씁쓸해졌다. 인간이 가진 가장 평등하고 소중한 감정인 사랑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 닿기 부끄러운 감정이 되었을까.



비슷한 교육과 경제 수준을 지닌 사람을 찾아 남들 다 하는 데이트를 하며 적당한 때 적당한 조건을 골라 결혼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로지 '사람' 하나만 보고 끌리는 마음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랑도 비정상일 수는 없다. 남들이 다 싫어하는 조건을 가졌어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그게 사랑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깔끔하고 스타일 좋은 비슷한 나이대의 훈남이 아니라 '머리가 좀 떴거나, 가끔씩 바지 지퍼가 열려 있거나, 스트레스로 머리에 10엔 동전만한 땜빵이 있거나, 큰 소리로 재채기하고 그러는 사람'을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타치바나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그런 사랑이 당연한 세상이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고 삶이 힘들고 연애가 사치여도 '사랑'은 그런 것이면 좋겠다. 비처럼 젖어들어 햇살처럼 퍼지는 사랑에 공감하며 살고 싶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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