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1 - 어느 만화가의 시코쿠 헨로 순례기
시마 타케히토 지음, 김부장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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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좌절을 겪는다. 어떤 인생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수없이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그 장애물을 모두 뛰어넘고 목표를 이룬다 해도 끝이 아니다. 힘들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라고 떠미는 손들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손에 밀려 떨어진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도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다. 인생은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스무 살의 나는 인생이란 그냥 남들처럼 살면 다 살아지는 줄 알았다. 젊은 시절 꿈도 목표도 없이 어영부영 살다 보니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서른이 넘어서야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좌절과 체념이 계속되었고 결국 먹고살기 위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커질 무렵,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제목의 만화를 발견했다. '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그때 그랬으면, 혹은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덧없는 후회가 밀려올 때마다 난 잘못 살아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다 털고 어딘가로 훌쩍 떠날 용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이 책이 내게 '넌 잘못 살아온 게 아냐'라고 말해주길 은근히 기대하며.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저 조금의 의욕을 얻고 싶었다. 코보대사 쿠가이의 수행 여정을 따라 88개 사찰을 도는 '헨로 순례'. 낭떠러지 끝에 내몰려 마지막 수단으로 그 힘든 길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았다. 특히 오랜 백수 생활을 하다가 할머니의 권유(라는 이름의 강요)로 헨로 순례에 나선 30대 여성 키누에게 마음이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헨로 순례를 마친 이들의 인생은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고, 이 책을 읽은 나의 인생도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앞으로 변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순례를 마친 후 안 팔리는 만화가는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만화를 찾았다. 키누도 분명 전에는 없었던 무언가를 마음에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좌절의 순간마다 떠올릴 수 있는 구절 하나를 얻었다. 

 

어떠한 일이든 인생이든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선생만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소이다. 커다란 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가족을 사랑하고, 태어난 고장의 활동에 공헌하고. 그것을 발견한다면 분명히 충실한 인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돌이킬 수도 없고 리셋할 수도 없다. 잘못 살아온 것 같아도 고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내일을 또 살아야 한다면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것 한 가지'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후회하고 넘어질지언정 마지막까지 '사람'으로 살기, 그리고 내 곁에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그것이 이 책을 통한 순례의 끝에서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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