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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왕녀 1
유키히로 우타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여장남자는 만화에서 사랑받는 소재이다. 여자처럼 고운 피부와 가는 팔다리, 무엇보다 아름다운 얼굴이 필수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차 성징을 거친 남자들은 골격부터 여자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 해도 '여장'한 것으로 보이지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장이 잘 어울리기로 유명한 몇몇 남자 연예인들도 얼굴을 제외한 부분은 착각하는 게 바보 같을 정도로 당연한 남자이다. 그렇다면 열살 전후의 남자아이들은 어떨까? 남녀의 특징이 분명하지 않은 '아이의 몸'을 가지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들은 여장이 훨씬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다 큰 남자에 비해 반전의 묘미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결국 여장남자의 판타지는 만화 속에서 가장 잘 표현될 수밖에 없다.
『소년왕녀』는 여장남자 판타지에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똑같이 생긴 왕자와 거지가 서로의 역할을 바꾼다는 왕자와 거지의 설정처럼 『소년왕녀』도 같은 얼굴을 가진 두 사람이 역할을 바꾸면서 시작된다. 차이점이라면 두 사람의 성별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소년왕녀'이다. 남자가 천대받는 모리안 왕국에 사는 가난한 고아 소년 알베르는 친구 테오와 함께 성탄제 구경을 갔다가 노예상인에게 납치를 당한다. 우연히 그를 본 왕녀의 시종 기에게 팔려 궁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왕녀 알렉시아를 만난다. 알베르는 친구 테오를 구하기 위해 성인식 때까지 왕녀의 대역을 하라는 명령을 받아들인다.
사랑스러운 외모와 당찬 성격을 지닌 알베르와 알렉시아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왕녀의 시종인 기의 캐릭터다. 왕녀의 교육담당 및 잡무를 담당하는 똑똑하고 냉철한 성격의 기는 사실 롤리타 콤플렉스이다. 심지어 남성혐오자이다. 그래서 왕녀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알베르를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척 기피한다. 왕녀 대신 알베르를 모셔야 하는 상황과 그의 롤리타 콤플렉스가 유발하는 갈등은 만화의 개그코드가 된다. 그러나 『소년왕녀』는 마냥 쾌활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작품이다.
... 그걸 알고 싶은 거야. 어마마마가 모르는 세상을 난 알고 싶어.
시간이나 때우며 대충 성인식 때까지 버티려던 알베르는 어머니의 냉정함과 혈육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살아온 왕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궁 밖의 세상을 알고 지키려고 하는 알렉시아의 진심에 감화된 알베르는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왕녀를 돕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알베르의 운명도 크게 뒤바뀌고 만다. 진짜 왕녀와 여장남자 대역, 롤리타 콤플렉스 시종이라는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진정성을 지니는 이유는 '지도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1권부터 충격적인 전개를 선보인 『소년왕녀』이지만 그저 그런 흔한 이야기로 흘러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뻔한 결말이라도 참신하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등장인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탄탄하고 기발한 스토리로 독자의 마음도 사로잡기를 기대해 본다.